경년 更年
(중략)
나는 내가 열려 있는 엄마라고 생각했다. 이성 교제도 허락할 수 있고, 그 시기의 성관계도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은 해왔다. 다만 실제로 벌어질 일이라고는, 더더군다나 이런 경우는 예상 범위에 없던 상황이었다.
집에 들어서는 아들아이를 곧장 불러 세웠다. 직접 듣고 싶다고 다그쳤다.
“다 듣고 왔으면서 뭘 더 확인해.”
“내가 듣고 온 게 다 사실이야?”
“응.”
“아니,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나 지금 혼나는 분위기야?”
“그럼 네가 잘했다는 거니?”
“잘못한 건 뭔데? 콘돔 썼어. 하고 싶은 거 맞는지 확인했고, 합의해서 했다고.”
“사귀는 애가 아니라며.”
“사귀는 사람하고만 하란 법 있어?”
저 주둥아리를 콱 쥐어뜯어버리고 싶었다.
“네가 어른이야? 넌 중딩이라고!”
“중딩은 하면 안 돼?”
안 된다고 단언하기 힘들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면, 만에 하나라도 하게 된다면, 이라는 전제로 합의와 피임에 대해 강조해왔던 터였다. 관계만을 위한 관계에 대한 전제는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사귀는 애랑 했으면 내가 이렇게 화가 안 나. 그것만 한다는 것이 정상이니?”
“나도 스트레스 풀 데가 있어야 하잖아!”
더 이상 말이 이어지질 않았다. 스트레스 해소였다니. 차라리 자위를 해!
“그걸로 풀 수 있는 거였으면 그랬지! 아씨, 쪽팔리게.”
그럼 하다못해 술, 담배를 하든가! 미쳤어, 왜 내 몸을 학대해. 단 한마디도 지지 않고 꼬박꼬박 대꾸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아들아이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엄마. 나 엄마가 바라는 만큼 성적 내고 있잖아. 공부도 잘하고 있고. 피시방이나 노래방도 안 다녀. 애들이랑 몰려다니면서 어른들 거슬리게도 안 해. 그게 엄마가 원하는 모범생 아냐? 내가 알아서 다 관리하고 있다고.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엄마가 소원하는 데로 가줄게. 대신 나 스트레스 풀 데 하나는 좀 둬. 나도 해소할 구멍은 있어야 하잖아. 애들이 피시방 다니면서 게임하는 걸로 스트레스 푸는 거나, 나나. 그냥 똑같은 거야.”
“여자애는? 걔들도 너랑 똑같아?”
“그걸 왜 내가 신경 써. 각자 알아서 자기 사는 거지.”
“네가 동물이니? 어떻게 그짓만 하려고…… 좋아, 너는 엔조이였다고 쳐. 상대방도 분명히 엔조이라고 한 게 맞느냔 말이야. 여자애 기분을 제대로 파악했느냐고. 여자애가 널 좋아하는데 너 혼자 엔조이라고 위악 부리는 거 아니냐고!”
“그럼 엄만 내가 여자친구 만들어서 제대로 사귀었으면 좋겠어? 지금도 학원 숙제에 영재원 프로젝트에, 할 일이 산더미야. 엄마가 과외 안 붙여줘서 소논문은 아직 시작도 못 했잖아! 놀 시간은커녕 쉴 시간도 없어. 나 숨통 트일 데는 남겨두라고!”
왜 나는 그 말에 곧바로 응수하지 못했을까. 그건 네 책임이라고. 사람은 누구나 바쁘고 할 일 많지만, 그걸 조율하고 배분해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연애로 뭘 못한다는 핑계는 대지 말아야 한다고. 꽂고 다닐 정신 있으면 그런 책임에 대해 고민도 해야 한다고! 이렇게 말해야 했는데 차마 입이 안 떨어졌다. 사랑 없는 섹스에 대해 중2짜리 아들아이와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해서가 아니었다. 정말 아들아이의 말처럼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이라면…… 이라는 타협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던 탓이었다.
“아빠도 알아?”
“왜? 아빠 알까봐 무서워?”
“아니. 아빠라면 엄마처럼 답답하게 생각 안 할걸? 이렇게 난리 칠 일도 아니라는 걸 더 잘 알 거고. 나 더 얘기해야 돼? 영어 학원 숙제 아직 다 못 했는데. 참, 간식은 됐어.”
그러고 제 방으로 들어가버린 아들아이의 뒷모습에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아직 말 다 안 끝났다고 소리쳐봤자 똑같은 소리만 하게 될 것이었다. 아들아이에게 들을 말도 똑같을 것이 분명했다. 내가 아들아이에게 한 말은 고작 네 동생은 모르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건 마치 나를 향한 변명 같아서 화가 더 치밀었지만, 그 화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뭐가 문젠데?”
남편의 반응에 내가 더 놀라 되물었다. 뭐라고?
“어떤 년들이길래 그 나이에 몸뚱이를 맘대로 굴려. 뭐 뻔해. 다 공부 못하는 것들이겠지. 아무튼 괜히 애 기죽이지 말고 적당히 넘어가. 호들갑 떨 일 아니야.”
“이제 열다섯 살들이야.”
“난 더 어릴 때도 했어.”
“자위를 한 게 아니잖아! 여자애랑 진짜로 했다고.”
“그게 뭐. 억지로 했대? 서로 합의해서 했다며. 강간 아니잖아. 그냥 스트레스 풀었다며. 그게 이렇게 난리 칠 일이야?”
“바로 그 스트레스 해소였다는 것이, 잘못이 아냐?”
“그럼 연애하라고 떠밀어? 콘돔도 썼다며. 똑똑한 자식.”
“웃음이 나?”
“그럼 울까? 여보, 뭐 그리 심각해. 애가 아직 어리니까 잘했다곤 못해도 다리몽둥이 부러뜨릴 일도 아니야. 서로 합의했다, 콘돔 썼다, 그럼 됐지. 부모가 더 이상 뭘? 까놓고 말해서 세훈이가 뭘 잘못했는데? 남자 앞에서 다리 벌린 것들이 문제지, 우리 아들이 무슨 문제냐고.”
“여보!”
“안 그래? 엄마들이 다 알 정도면 학교 쪽에서도 모르지 않을 거고, 문제가 될 사항이면 학교에서 먼저 연락이 왔겠지. 시간 지나면 다 조용해지는 일이야. 남자애니까 그런 건 허물도 아니고. 지들 사이에서는 난놈 된 거야. 자기 놀 거 다 해가면서 공부도 잘하는데 누가 뭐라 할 거냐고.”
“세훈이가 아니라 세은이한테 벌어진 일이라면? 세은이가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남자애들이랑 그런 짓을 하고 다녔다면? 그때도 당신은 공부 잘하는 애가 그랬으니 괜찮다 할 거야?”
“어디 끔찍하게 세은이한테 갖다붙여! 여자랑 남자랑 같아?”
“다를 게 뭐 있어?”
“어깃장 부리지 마. 계집애가 무슨. 여자들은 태생적으로 그런 짓 안 해.”
“세훈이랑 한 애들은?”
“그것들이 미친년이지. 세훈이 때 남자애들은 여자라면 정신 못 차리니까 어떻게든 몸으로 꼬셔보려고. 그럼 내가 가만 안 두지. 우리 애 공부 방해한 것들이면 가만두면 안 된다고. 싸가지 없는 년들. 어린것들이 발랑 까져서 밝히기나 하고.”
싸가지 없이 밝힌 건 그 여자애들이 아니라 아들아이가 아닌가. 그러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 또한 아들아이가 그런 아이라고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우리 애만 생각해. 괜히 그 여자애들이 불쌍하니 마니 그런 거 함부로 표 내지도 말고. 엄마들한테 꿀릴 것도 없어. 세훈이가 잘못한 게 있어야 말이지. 그러고 보니 당신한테 우르르 달려온 여자들이 더 이상하네. 씹을 거 하나 생겨서 신났다고 덤벼든 거지. 아, 그러니 당신도 신경 꺼.”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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