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꿈을 안고
(중략)
아기돼지 삼형제
82세의 노인이 52세 된 아들과 거실에 마주 앉아 있었다. 그때 우연히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의 나무에 날아와 앉았다. 노인이 아들에게 물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다정하게 말했다. “까마귀예요, 아버지.” 아버지는 그런데 조금 후 다시 물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다시 “까마귀라니까요.” 대답했다. 노인은 조금 뒤 또 물었다. 세 번째였다. “저게 뭐냐?” 아들은 짜증이 났다. “글쎄 까마귀라고요.” 아들의 음성엔 아버지가 느낄 만큼 분명하게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조금 뒤 아버지는 다시 물었다. 네 번째였다. “저게 뭐냐?” 아들은 그만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외쳤다. “까마귀, 까마귀라고요. 그 말도 이해가 안 돼요? 왜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하세요?” 조금 뒤였다.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때가 묻고 찢어진 일기장을 들고 나왔다. 그 일기장을 펴서 아들에게 주며 읽어보라고 말했다. 아들은 일기장을 읽었다. 거기엔 자기가 세 살짜리 아기였을 때의 이야기였다.
오늘은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은 “저게 뭐야?” 하고 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푸 23번을 똑같이 물었다.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대답해주었다. 까마귀라고 똑같은 대답을 23번을 하면서도 즐거웠다. 아들이 새로운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했고, 아들에게 사랑을 준다는 게 즐거웠다.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난 아들은 조금 전 아버지에게 한 말이 후회스러웠다. 아들이 어린 시절 받았던 사랑을 이제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아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자녀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부모는 행복을 느낀다. 자기 자식이 좋아하는 모습은 부모의 기쁨이다. 하지만 자녀들은 이 점을 모른다.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생각이 난다. 밤마다 잠자리에 들 때면 아들은 나의 팔베개를 베고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매일 밤 이야기를 해줘야 잠이 든다. 그중 가장 많이 해준 이야기가 영국의 민담인 ‘아기돼지 삼형제’다. 이야기의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엄마 돼지와 삼 형제 돼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엄마 돼지가 삼 형제를 불러놓고 “이제는 너희들도 독립해서 따로따로 살아가야 한다” 말하며 집에서 내보냈다. 집을 나온 삼 형제는 각자 집을 지었다. 게으른 첫째는 볏짚으로 된 집을 지었고, 놀기만 좋아하는 둘째는 나무로 된 집을 지었고, 부지런한 셋째는 벽돌로 된 집을 지었다. 어느 날 늑대가 첫째네 집에 나타나서 잡아먹으려고 볏짚으로 지은 집을 입으로 “후”하고 날려버렸다. 첫째는 둘째네 집으로 피신했다.
늑대는 다시 둘째네 집으로 가서 나무로 지은 집도 “후”하고 한방에 날려버렸다. 첫째와 둘째는 막내인 셋째네 집으로 또 피신했다. 늑대 또한 셋째네 집으로 가서 “잘 되었네. 세 마리를 한꺼번에 잡아먹어야지” 하고 한방에 날려버리겠다고 “후”하고 불었다. 하지만 벽돌로 된 집은 무너지지 않았다. 다시 “후”하고, “후”했지만 집은 끄떡도 하지 않아 아기 돼지 삼 형제는 막내 덕분에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하룻저녁에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해야 했다. 끝나면 또 해달라고 조르는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아들이 잠들 때까지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늑대가” 하면 아들은 “후”하는 역할을 해가며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하다 내가 잠이 들려고 하면 아들은 내 얼굴을 잡고 흔들어 깨워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했다. 나는 똑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 해주면서 아들이 깔깔대고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행복했고 사랑을 준다는 게 즐거웠다.
(중략)
제5장
‘때문에’와 ‘덕분에’
「때문에」와 「덕분에」
우리말에 ‘때문에’라는 말과 ‘덕분에’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 말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때문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고, 덕분에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어떤 사람은 때문에란 말을 자주 사용하고 어떤 사람은 덕분에란 말을 자주사용한다.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은 때문에라고 하고, 마음이 너그럽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은 덕분에라고 한다. 나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때문에’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첫째,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를 원망하며 대학 진학도 못 했다고 늘 생각해 왔다. 오죽하면 조상님께 제사를 지낼 때 ‘우리 집 부자 되게 해 주세요’라고 소원을 빌은 적도 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며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학교에서 무료급식을 제공해 주는 제도가 있었다. 한동네에 사는 친구가 급식대상으로 나를 추천한 일이 있었다. 나는 창피하고 화가 나서 하굣길에 나를 추천했던 그 친구를 때린 일도 있었다.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되었으면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둘째, ‘배운 것이 적었기 때문에’ 요직부서에도 못 가고 여러 가지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많은 동료 직원들이 여주대학 야간부를 다녀도 나는 그것마저 다니지 않았다. 왜냐하면 실질적인 공부를 하지 않고 간판을 따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수들 술이나 사주고 적당히 학점이나 따서 졸업장을 받을 바에야 차라리 고등학교 졸업장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군수라는 분이 “고등학교밖에 안 나온 사람이 어떻게 사무관, 서기관을 하려고 하느냐”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에는 대부분 대학을 다니지 못하고 고등학교만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무원 생활하는 데 학벌 좋은 사람이 일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셋째, ‘술을 못 먹기 때문에’ 사무관 승진도 늦었고 여러 가지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해 왔다. 술이 체질에 맞지 않아 회식 시간이 괴로웠고 고통스러웠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나는 먹으면 먹을수록 고통의 연속이었다. 한때는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술 잘 마시는 체질을 물려주셨더라면 좋았을 것인데 하고 말이다. 부모님 모두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술을 강제로 권하는 사람들이 가장 미웠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나는 위와 같은 ‘때문에’란 3가지를 ‘덕분에’로 생각을 바꾸었다.
첫째,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릴 때부터 결코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근검절약하면서 열심히 노력했고, 그 결과 지금은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집사람과 맞벌이를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공직생활 하면서 부정한 돈의 유혹을 떨쳐낼 수 있었고 세상살이에 필요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제일 잘하신 것 중에 하나가 자식들에게 재산 한 푼 안 물려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형제자매들끼리 더 갖겠다고 재산싸움 할 필요가 없었기에 말이다. 아버지의 재산이 아예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둘째, ‘배운 것이 적었던 덕분에’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묻고 배우는 자세로 임했다. 부하 직원들도 어떤 때는 내 스승이 되었고 그것이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승진이 늦어져도 내가 부족해서 그렇지 하고 생각했더니 마음이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우리 마을에 또래 친구가 남녀 합해서 23명이었는데 여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이 나와 여자애 한 명, 단 둘뿐이었다. 부모님들은 학비가 걱정되어 입학시험에 제발 떨어지길 바랐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 당시 정식 인가가 나지 않아 학비가 싼 지우고등학교에 가라고 하셨을까. 다른 친구들은 공부하기가 싫어서 진학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부모님이 고등학교까지 보내준 덕분에 이렇게 공무원을 할 수 있었다.
셋째, ‘술을 못 먹는 덕분에’ 남들 술 먹는 시간에 운동하여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고, 따라서 건강한 몸으로 열심히 직무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항상 맑은 정신에 근무할 수 있어서 공무수행에 한 번도 지장을 주지 않았다. 술 잘 못 먹어도 일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열정과 진정성을 가지고 일을 하였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도 받았다. 당시 시장님이 술 못 먹는 면장 내보내서 주민들에게 원성을 듣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더 열심히 잘하고 있더라는 소식을 들으셨던 모양이다. 술문화가 옛날보다 많이 달라졌다. 술 한 잔 나눌 수 있는 친구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더 소중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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