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한국인들은 자기들이 백인인 줄 알아요
─ 주현숙 감독
(중략)
외국에서 일하면 본국 가족들은 이들(외국인 이주노동자)을 마치 통장처럼 여기는데요. 그러니까 은행 계좌인 건데. 자신이 그런 존재인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돈을 고향 가족에게 부치거든요. 왜 이들은 자국을 떠나서 외국으로 온 걸까. 왜 떠나왔을까. 이 사람들은 생존도 중요하지만 제 삶의 고리를 더 중요시하는 사람들인데. 그런데도 자신이 살던 생활 기반을 전부 내려놓고 타국으로 온 이유가 도대체 뭘까. 그 이유가 무척 궁금했어요. 한국인들이 매번 왜 떠나왔어요? 왜 왔어요? 물을 때마다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그런데 사실 저도 똑같이 물었죠.
〈계속된다-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에서 한 이주노동자는 감독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남의 나라에서 고생하는 게 뭐가 좋겠냐.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내 나라에서 사는 게 좋지.” 이 말에 현숙은 “나는 그동안 이주노동자를 편협하게 이해하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맺는다. “이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도 또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다”고.
“한국인들은 자기들이
백인인 줄 알아요”
사실 이들이 타국으로 이주를 하거나 이민을 떠나는 것은 돈을 벌거나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다시 말해 빈곤 하나 때문만은 아니란 것이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욕구가, 다시 말해 살아 있고자 하는 갈망이 그를 다른 세계로 이끄는 것이다.
떠나온 이들은 모두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사람들이거든요. 바로 그런 사람들이 본국을 떠나와요. 저뿐이 아니라 한국인 대부분은 이주노동자들이 자기 나라에서 먹고살기 힘들어서 오는 거다라고만 단순하게 생각하는데, 사실 그런 생존의 문제보다는요 이 혈기 왕성한 젊은 청년들이 뭔가 하고 싶다는 에너지가 넘치는데 그 사회에서는 일할 기회도 할 일도 없어서 이주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래서 반복해서 일자리를 찾아 다른 나라로 떠나고 이주를 감행하죠. 그러니까 이주는 자신이 선택한 게 맞긴 한데,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선택하는 거예요. 사실 생각해 보면 이게 본인에게 가장 행복한 선택은 아니잖아요.알다시피 전 지구적인 세계화 때문에 자본의 흐름에 따라 여기 한국까지 오게 된 건데요. 이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자본은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텐데 노동 즉 사람은 계속 국경에 가로막혀 불법이라는 상황에 놓여야 하니까. 결국 사람만 노동자만 힘들 수밖에 없죠.
이주란 살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을 뜻한다. 이주, 이민은 한국인 우리에게도 낯선 말이 아니다. 잠깐만 우리 역사를 돌아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현숙의 아버지는 80년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한 경험이 있다. 내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이북 출신인 아버지는 젊은 날 베트남으로, 머나먼 사우디로 이주 노동을 떠났던 이주노동자였다. 부모 세대뿐 아니라 그 윗세대 분들에게도 이주 역사가 있다.
일제 치하에서 농토를 빼앗기고 일자리를 잃어 살길이 막막해진 조선인들은 유랑민으로 떠돌고, 만주로 시베리아로 이주했다. 그들의 후손이 현재 조선족이다. 배를 타고 바다 건너 먼 미국 하와이로 떠난 조선인들도 있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했던 이들 모두 이주노동자였다. 계약 이주노동자로 멕시코, 브라질로 떠나 ‘애니깽’이라 불리며 멸시와 천대 속에서 일했던 조선인들도 있다. 이들이 모두 한인 이민 1세대다. 일본 본토로 징용, 징병된 조선인들과 사할린 등지로 이주와 이산을 겪은 조선인들도 빼놓을 수 없다. 러시아령의 만주에 살던 조선인들은 스탈린 치하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하기도 했다.
이주 노동의 역사는 현대로도 이어졌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인 60년대에는 베트남전에 용병과 기술자로, 70년대에는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파견됐다. 80년대에 중동 건설 붐이 일었을 때는 건설노동자로 이주했다. 이렇듯 한국 근현대사의 한 축은 이주 노동의 역사기도 하다. 식민지 조국의 해방을 위해서든,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든, 더 나은 기회를 잡고 싶어서든, 세계 최빈국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든, 외화벌이에 나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든, 자신의 욕망에 의해서든, 사회가 요구해서든 간에 그렇게 많은 한국인이 여기가 아닌 저기 어딘가에서 살기 위해서 이주를 감행했다. 그리고 이를 국가 차원에서 장려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구한말부터 시작된 한국인의 이주와 이민 역사는 20세기 내내 계속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이런 역사를 잊고 있는 듯하다.
망각했다기보다는 한국의 극우 보수가 주입한 단일민족 이데올로기 때문은 아닐까요? 사실 기득권을 쥔 자들은 민중을 자기와 다른 신분, 개돼지로 표현하잖아요. 일반 국민을, 서민들을 자기와 같다고는 절대 생각 안 할걸요. 계급이 다르니까. 그런데도 왜 계속 단일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심화하고 유포하느냐. 그걸로 얻는 이득이 훨씬 많으니까. 그 이데올로기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 끊임없이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단일민족이 세상에 어딨어요? 우린 그냥 다 노동자지. 철도 한참 지난 옛날이야기나 하고. 이미 다문화 다인종이 현실이다, 그걸 사실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말이죠.단일민족이라는 건 사실이 아니라 신화에 불과해요. 일제 식민지에 저항하려고 민족주의를 고취하고자 한민족이라는 걸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근현대로 넘어와서는 박정희 군사정권 때부터 단일민족이라는 논리를 전 국민에게 교육으로 세뇌한 게 아닐까. 그러니까 우린 하나고 핏줄이 같으니까 내가 잘못해도 너는 좀 봐줘 우리가 남이가 이런 식으로. 난 여기 귀속되어 있는데 쟤는 나랑 다르니까, 내가 쟤보다 더 우월해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과거 나치즘을 경험한 독일은 이런 이데올로기를 경계하고 법으로 강제하는데요. 그런 인식 자체가 극도로 편협하고 인간을 인간으로서 해석하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라는 걸 인식해서죠. 이런 식으로 반성할 기회가, 돌아볼 기회가 한국은 전혀 없었던 거죠.
이 세상에 과연 순수한 민족이 있을까. 대체 피가 순수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유전자 검사를 해 보면 나올까. 그런데 정말 순혈 단일민족 유전자를 지닌 한국인이 있기나 할까. 무엇을 기준으로 순수한 혈통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일까.
단일민족이란 말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현숙의 지적처럼 ‘단일민족’이란 말은 굳게 믿고 싶은 상상계, 즉 ‘신화’다. 실제로 ‘한민족’이란 관념은 일제 치하에서 일제와 차별되는 단일한 민족 동일성을 구축할 필요가 있어 생긴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부산물이다. 그런데도 단일민족이라는 관념에 젖어 있는 한국인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순혈’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혼혈’ 또는 외국인을 차별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모든 이주민을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건 아니다. 통일을 염원한다면서 탈북민은 멸시하고, 한민족이라면서 미국·서유럽 교포는 환대해도 중국·러시아 교포는 차별하는 게 우리다. 부유한 선진국에서 온 사람은 비굴하게 추종하면서 열등감을 느끼고, 가난한 개발도상국에서 온 사람은 깔보고 경멸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 우리다. 피부가 하얀 백인보다 피부가 어두운 동남아시아인, 흑인을 혐오하는 것이 우리다. 우월감과 열등감은 다르지 않다. 이중성이다. 주체성과 균형감각을 상실한 사람이 보이는 태도다. 집권 정당의 대표가 자원봉사 나온 흑인 유학생에게 “얼굴이 연탄색”이라며 대놓고 농담하는 게 한국 사회다. 더 큰 문제는 그 말이 모욕적이고 인종 차별적이라는 것 자체를 그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서구 백인 중심의 촌스럽고 천박한 차별 의식인 거죠. 한국 사람은 국적,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해요. 예를 들어 우리는 같은 아시아인인데도 동남아에서 온 사람과 일본인을 구별해요. 피부색이 희면 이 사람 뭐 있나 보다며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러러보고 더 잘 대해 주고. 얼굴이 까맣다면 깔보고 막 대하고 함부로 하고. 그러니까 우리는 자기가 백인인 줄 알아요. 서양인인 줄 착각하는 거예요. OECD 가입했다 경제 발전 했다는 우월감에 우리가 제1세계 사람인 줄로 아는 거죠.
가장 모욕적인 말
“너희 나라로 가!”
대한민국은 단일민족 국가인가. 아니 그런 질문 자체는 이제 의미가 없다. 한국 사회는 이미 나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다문화, 다인종 사회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여정〉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집회 현장에서 한 이주노동자가 마이크를 잡고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말한다. “한국 사람 피도 빨갛고 미국인 노동자 피도 빨갛다. 이 세상 모든 사람 피는 똑같다. 모두 빨갛다.”
한국인이란 과연 누구인가. 실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뭔가요. 전 한국인이란 한국이라는 환경 조건 안에서 살면 다 한국인이 아닌가, 정치·경제 심지어 물가 하나에도 영향을 받으면서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이면 모두 한국인이 아닌가 생각해요. 핏줄이 하나인 단일민족 그런 의미가 아니라요. 예를 들면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는 엄연히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삶의 조건이 모두 한국에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아주 불평등한 조건에 놓여 있었다는 거예요.다큐에 나온 이주노동자 산티에게 동생이 있는데요. 동생은 한국에서 자랐는데 미등록 이주노동자라서 학교를 못 다녀요. 학교에 안 가려고 안 간 게 아니에요. 여기서 공부를 하고 싶어도 법적으로 인정도 안 되고 대학도 갈 수 없어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미래가 없는 거죠. 생활 기반이 전부 한국에 있는데도 여기서는 미래를 꿈꿀 수가 없는 거예요. 자기 이름으로는 뭐든 불가능해서 명의를 빌려야 하고. 이주민도 공부도 해야 하고 살려면 집도 필요하고 일하려면 차도 필요하고 그런 건데, 인정해 주지 않는 거죠. 이들은 여기서 엄연히 일하면서 살고 있는데 없는 존재라는 거죠. 얼굴 생김새와 피부색만 조금 다를 뿐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서 한국말 하고 사는데 나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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