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좋다
외부 업체와 협력하여 전시 도록을 출판할 때는 사전에 업체 관계자들과 만나 기본 방향을 논의한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예외 없이 작업과 관련해 이런 질문들을 한다. “박물관 나름의 특성이 있을 텐데, 대체로 어떤 방향으로 하면 좋을까요?” “저희가 박물관 일을 처음 해서요. 원하시는 방향이 있나요?” 상대방의 관점에 맞춰 일을 잘해보겠다는 결의에 찬 질문들이다. 당연히 고맙다. 또한 그래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관계자들의 질문에 가차 없이 “제발 디자인 좀 하지 마세요.”라고 일축한다. 그들은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무슨 뜻인지 되묻는다. 그러면 나는 내 진의眞意를 밝히는 대답을 결론 삼아 내민다. “그냥 정확히, 있는 그대로 보여주세요. 박물관 소장품은 대부분 그 자체로 이미 미적 가치가 있으니 특별한 수식을 가하지 말고 물건이 잘 드러나도록 보여주면 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디자인이라고 하면 어떤 물품이나 공간의 모습을 보기 좋게 꾸미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는 TV나 인쇄물 등에 소개되는 광고나 영상을 조금 더 멋스럽게 만드는 일까지 포함된다. 디자인은 역사적으로 미술에서 분화했다. 미술이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창조 활동이라면 디자인은 그에 더해 삶의 편의를 제공하는 창조 활동이다. 즉 디자인은 심미적·정서적 측면은 물론 사용 편의와 합리적인 비용 등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디자인은 외형만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제대로 아름답게나 하고 있는가? 진실로 아름답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는 있다. 아름다움은 고귀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가 접하는 사물과 현상의 이상적인 단계다. 하지만 피상적인 아름다움만을 지향한다면 생각지도 못했던 낭패에 빠질 수도 있다. 성형수술의 부작용은 얼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서울 시내 곳곳이 아름다워지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실 여기에서는 아름다움이란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다짜고짜 폼 나고 싶어하는 행위로만 보일 뿐이다. 도시 미관을 책임지는 이들이 서울을 그렇게 가꾸는 것이 도시 디자인이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다보니 어느새 도시를 폼 나게 하는 것이 공공 디자인으로 통용되는 시절이다. “세계 속의 서울” 같은 슬로건은 세계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 ‘폼 나는 도시’ ‘보기 좋은 도시’가 되고 싶다는 욕망일 뿐이다. 그래서 시가지 가운데로 물이 흐르고, 역사의 거리라 이름 붙이고, 길쭉한 광장과 분수대가 설치되었다. 정작 이렇게 만든 공간을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폼 나는 디자인을 위해 모두가 기존의 것을 엎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가져다 놓는다는 데 있다. 비어 있는 곳을 그대로 놔두지 못하고 무엇인가로 채운다는 말이다. 최근 새로 등장한 서울시의 브랜드 역시 기존에 사용되던 것이 제대로 정착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또 새로 만들었다는 인상이 강하다. 명확한 의미 전달이나 시민적 공감대 조성에 앞서 화려한 언어로 해설하기에 급급하니 소음만 무성하다. 오래된 경기장을 헐어 디자인플라자를 만들고, 은행나무를 뽑은 뒤 광장을 만들고, 고가를 무너뜨려 천변을 연출했듯이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이 기존의 것을 무시하고 새로운 것을 구축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그렇게 구축한 건축물에는 랜드마크라는 개념을 내세운다. 랜드마크란 눈에 잘 띄는 것을 말할 뿐이다. 그렇다면 눈에 잘 띄고 색다르고 특출나면 디자인이라고 하는 걸까?
새로 지은 서울시청은 한옥의 처마와 전통 건축물의 곡선미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다양한 첨단 기술을 도입해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었다고 한다. 각종 첨단 장치, 공조 시스템, 에너지 손실 최소화, 사무자동화 등을 통해 스마트한 건축물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신 청사는 구 청사를 뒤에서 짓누르는 모양새다. 새것이 옛것을 겁박하고 있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첨단으로 무장한 랜드마크임에는 틀림없겠지만 이것이 과연 디자인의 목표일까 하는 의구심은 가시지 않는다. 서울시청은 본래 일제강점기의 경성부 청사여서 일제의 잔재를 소거해야 한다는 명분이 앞섰지만, 그렇다 해도 신 청사와 구 청사가 보여주는 풍광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최근 미학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세계적인 도시에서는 필요 이상의 것들을 도시에 늘어놓지 않고 비교적 간결하게 하는 추세다. 파리가 그렇고 헬싱키가 그렇다. 도시의 상징이 될 만한 것들을 빛내기 위해서 도시는 간소한 배경이 되어야 한다. 얼음이 담긴 위스키가 눈부신 호박색을 드러내려면 아무런 특색이 없는 투명한 유리잔에 담겨 있어야 하듯이. 이미 그곳에 있는 역사적·문화적인 어떤 것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배경을 간소하게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도시가 디자인되는 것은 아닐까.
지난 몇 년 동안 서울 시내는 너무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해서 특정하게 고정된 이미지로 떠오르지 않는다. 가변성과 변화무쌍함이 시대의 트렌드라고는 하지만, 가변성은 결코 기억이 쌓일 여지를 주지 못한다. 기억이란 경험과 이미지 그리고 정서의 복합이다. 그렇다면 변화무쌍함은 뒷날을 위한 어떠한 기억이나 역사도 축적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론 불변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언제까지나 불변한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심심하고 밋밋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변화와 불변은 늘 공존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품격을 고양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 이곳을 지나칠 때면 기분 좋은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빨간 기와에 붉은 벽돌, 화강암으로 지은 아기자기한 건물 때문이다. 바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건물이다. 서울 시민조차 대부분 이 성당이 있는지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성당 앞에 있던 국세청 별관 건물이 헐리면서 성당의 자태가 온전히 드러나게 된 것이다. 마치 성당이 하나 새로 생긴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사진 · 박영채 / 건축환경연구소광장 제공
성당 앞에 있던 건물은 약 80여 년 전 일제가 조선체신사업회관이란 이름으로 지은 것이다. 서울시가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철거해버려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소식을 접하고 이곳을 찾았다. 마침 성당 관계가 한 분이 매우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셔서 성당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성당이 완성되기까지는 약 100여 년이 걸렸다고 한다. 1914년 건립 계획을 세웠지만 십자가 모양으로 설계되었던 건물이 건축비 부족으로 일자 모양으로 지어진 채 ‘예비대성당’이란 이름으로 1926년 축성식을 가졌다. 그 상태로 70여 년이 지난 뒤 1995년이 되어 당초 설계대로 지금의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20여 년이 지나 성당을 가리고 있던 건물마저 철거되어 멀리서도 성당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래저래 도합 100년에 걸쳐 완성된 디자인이라고 하겠다.
빨간 기와지붕의 이 성당은 정겹고 포근한 인상이다. 당시 서구에서는 기념비적이라고 할 만한 건물을 지을 때 대부분 고딕 건축 양식gothic architecture을 선택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이나 쾰른 대성당Cathédrale de Cologne에서부터 20세기에 지은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Empire State Building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양식에 속한다. 그런데 이 성당은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romanesque architecture이다. 성당 옆에 한옥 건물 몇 채가 있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성당과 한옥의 전혀 다른 두 양식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요인은 이 성당의 ‘지붕’에 있다. 지붕을 자세히 보면 빨간 기와가 아닌 한옥의 모임지붕 형식에 얹은 짙은 회색 기와를 볼 수 있다. 이 기와가 바로 로마네스크와 한옥을 연결해주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안내인의 설명에 따르면 1917년 이 성당을 지을 당시, 제3대 주교인 마크 트롤럽Mark Napier Trollope이 건축가 아서 딕슨Arthur Dixon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일제 치하에 있는 이 땅의 기독교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건물을 지어주십시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조선인·영국인·일본인이 함께 어울려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십시오. 교회 건물이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되 한국 교회 건축의 모범이 되게 해주십시오.” 이 주교님 참 멋진 양반이다.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이든 영국이든 일본인이든 그리스도의 집 안에서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는데, 그것이 그리스도의 정신이기도 하다. 또한 성당 건물이 그 지역의 문화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 즉 성공회가 한국에 자리 잡으려면 토착 문화와 어울릴 수 있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여기 어디에서도 눈에 띄는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의도는 찾을 수 없다. 편지를 읽은 딕슨은 고딕 양식으로 지으려던 최초의 계획을 수정했고 트롤럽 주교의 생각을 설계에 반영했다.
우선 각기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예배를 볼 수 있도록 세 구역으로 공간을 나누어 조선인, 영국인, 일본인 각각의 예배공간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도록’ 건축 설계를 했다. 당시 주변 공간이 어떠했을까? 이 성당을 지을 당시에는 덕수궁을 비롯해 주변이 온통 한옥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한옥의 풍광과 스카이라인을 거스르는 고딕 양식을 포기하고 로마네스크 양식을 취했으며, 돌과 벽돌로 건물을 짓되 지붕에 한국 전통 기와를 얹고, 건물의 창을 한국의 창호 모양으로 연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옥 창살을 닮은 창틀에 사용된 스테인드글라스에도 한국의 전통색인 오방색을 사용했다. 그러나 동·서양 건축 기법이 어우러진 이 고풍스러운 건축물은 일제가 1937년에 맥락 없이 지은 조선체신사업회관 건물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1996년 미완성인 채로 있는 이 성당의 완공을 위해 한국의 건축가 김원이 선정되었다. 그는 명동성당 근처 부속 건물 등 여러 종교 건축을 설계했던 경험으로, 철과 유리로 된 하이테크 건물을 덧붙여 서로 다른 건물이 대비되면서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계획했다. 그런데 그 즈음 딕슨의 최초 설계도를 찾게 된 것이다. 건축가는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도 고민에 빠지게 된다. 본래의 디자인을 따를 것인가, 자신만의 현대적 디자인으로 새로운 부분을 덧붙일 것인가, 딜레마였다. 그라고 해서 옛 디자인과 새 디자인의 결합이라는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싶다는 욕심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김원은 결국 최초 설계자였던 딕슨의 뜻을 따랐다. 자신의 디자인을 포기하고 본래의 취지를 따르기로 한 것이다.
한국 땅에 성당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건축가를 물색했던 트롤럽 주교, 이를 위해 머나먼 영국에서 이곳까지 왔던 딕슨, 그리고 딕슨의 설계도를 놓고 고민에 빠졌던 김원에 의해 이 성당이 완성되었다. 그야말로 폼 나고 싶어 하는 욕심 없이 본래의 의도대로 오랜 세월 지극하게 기다리고 숙성시켜온 이 성당의 역사가 아니겠는가. 때문에 이 성당은 건물의 생김새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최초 성당을 지으려 할 때의 콘셉트, 처음부터 다 짓지 못하여 세월이 흘러 또 한 건축가의 고민이 보태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앞의 거치적거리던 건물이 철거되고서야 진정한 완성에 이른 것이다. 그러한 종합적인 맥락에서 이 성당을 봐야 한다.
앞쪽의 건물이 헐려 나간 공터가 혹시 성당의 땅인가를 물어봤더니, 아니란다. 만약 성당의 소유라면 그 공간을 그대로 비워 두면 좋겠다고 말을 했더니, 성공회는 돈이 없단다. 나중에 서울시가 그곳을 문화시설로 조성하기로 했다던데, 과연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진다. 서울시는 이곳의 지상부에는 광장, 지하부에는 덕수궁 지하보도와 연결되는 시민 문화 공간 조성을 위해 현상설계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솔직히 새 청사를 지은 정도의 실력이라면 별로 미덥지는 않다. 다만 트롤럽 주교와 최초 설계자 딕슨과 완공 작업을 진행한 건축가 김원의 마음을 잘 헤아려 그 공간에 문화라는 이름 아래 또 다른 기념비적인 시설물이 세어져 성당을 가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만 이 성당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 게다. 그러니 또 새로운 무엇을 만들고 세우느니,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을 걷어버리는 정도만으로 좋다고 할 수밖에. 다시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마이너스 디자인’이든 ‘그대로의 디자인’이든 뭐라고 이름 붙이든 간에…….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