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강: 인생 내비게이션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우리 모두는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멋지게 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류 인생’을 살아 보자고 화두를 던집니다. 일류 인생을 살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저는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꿈입니다. 내 꿈을 찾아야 됩니다. 잘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의미 있는 것 중에서 찾으면 됩니다.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고 하루하루를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살다 보면 자기만의 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꿈을 정할 때는 나 혼자만 잘살기 위한 꿈보다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꿈을 꾸어야죠.
두 번째 키워드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겁니다. 꿈은 있는데 잠만 자면서 정말 꿈만 꾼다면 꿈으로 끝납니다. 자기의 꿈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실력을 키우기 위해 일류대 진학을 목표로 할 수도 있지만 꼭 일류 대학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 머릿속에 일류 대학은 이미 SKY로 정해져 있지요.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들을 쭉 살펴보면 일류 스승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습니다. 다행히 선생님들은 전국 평준화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실력을 키우는 과정은 필요한데, 그것을 꼭 일류 대학 진학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일류 대학에 가도 좋은 선생님 있고 나쁜 선생님 있고, 일류 대학 아니어도 얼마든지 좋은 선생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실력을 키울 필요는 있습니다.
세 번째 키워드는 꿈에 맞게 실력을 키운 다음 사회 헌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보다는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실력을 이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도록 써볼까 고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마을 이장을 했는데, 지금까지 배우고 나름대로 세상을 알아온 지식이나 기술, 경험을 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지키는 데 써보자는 생각이었지요. 그런 마음으로 임했기 때문에 5년 동안 힘들어도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 5년간의 이장 생활에 대한 것은 『나부터 마을 혁명』(산지니, 2010)이라는 책으로 엮여 나왔지요. 이장을 한다고 무슨 떡고물이 크게 나온 것도 아니에요. 이장에게 주어지는 한 달 20만 원의 수고비 같은 게 있는데, 그것 노리고 이장했던 게 아니라는 거죠. 실은 주민들 경조사비나 식사비로 더 많이 나갔지요.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꿈을 꾸고 실력을 쌓고 사회 헌신을 하는 인생을 어떤 생각과 철학으로 꾸려가야 멋진 인생이 될까 하는 고민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우리가 어려서부터 공부하고 어른이 되어 열심히 일하는 이유도 잘 따져서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이유가 뭘까요? 그렇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키워드는 행복인데, 행복과 경제적 풍요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어떻게 살아야 좀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현실을 어떻게 고쳐야 제대로 갈까, 이런 고민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인생 내비게이션’이 분명해지거든요.
행복의 조건
우리가 ‘잘 산다’라고 할 때,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나요? 그렇지요. 돈입니다. 돈이 떠오르는 것을 부정할 순 없어요. 그러나 돈만 있으면 잘 살아질까요? 어떻습니까? 뭘 보면 아닌 걸 알까요? 드라마를 보면 또 뉴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특히 TV 드라마를 보면 어때요? 주인공들 다 잘생겼죠? 부자죠? 부모님 빵빵하죠? 집 멋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많죠? 돈 많고 집 좋아도 불행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수많은 작가들이 엄청 노력하고 있어요. 핵심은 뭘까요?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행복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그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이는 것 아닐까요? 맞나요?
그렇다고 돈이 전혀 필요 없다는 말은아닙니다. 당장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도 차비와 용돈이 있어야 합니다. 다만 돈이 몇백 억 몇십 억이 필요할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데 당연히 돈이 필요하지만, 행복하게 살려면 적당한 돈 외에 다른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잘 산다는 것’을 달리 말하면 갑부로 사는 게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행복한 삶에 필요한 것이 돈 외에 또 뭐가 있을까요? 사랑과 건강. 그래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평생 앓다가 죽는다면, 그런 삶은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겁니다. 또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해야지요. 나름 삶의 목표도 있어야 합니다. 또 친구는 어때요? 좋은 친구, 슬픔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가족과 배우자, 연인도 친구에 포함시킬 수 있겠네요. 또 일을 통해 보람이나 가치를 느끼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학자의 길을 택한 건 약 30년 전입니다. 1984년, 대학 4학년 때입니다. 대학을 1년 늦게 들어갔어요. 당시엔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재수가 좋았어요. 왜냐, 재수 생활을 하던 그 1년간이 제 삶의 숙성 과정이자 제대로 철이 드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저는 재수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전에는 실패를 몰랐어요. 언제나 시험도 잘 보고 승승장구했는데 대학 입시에 낙방하니 처음엔 절망감이 컸지요.
그런데 긴 인생을 보았을 때 인생에는 실패와 실수가 연속으로 이어집니다. 늘 성공하는 게 아니라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계기가 되는구나, 또 누군가 성공하면 누구는 탈락의 쓴맛을 보는구나, 경쟁이란 게 이토록 무서운 것이구나, 이런 것들을 체득했습니다. 그런 걸 비교적 일찍 깨달은 거죠. 그 과정이 마치 장독에서 된장 익듯 숙성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한 삶에는 이 모든 요소들이 다 필요합니다.
돈벌이 경제와 살림살이 경제
그런데 돈벌이 경제는 돈만 많이 벌면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TV 광고를 보세요. 돈만 많이 벌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배우자도 사고… 온갖 가지 다 사서 최고 멋있는 인생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정말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핵심을 이야기하면, 자기 내면이 평화롭고 안정되어 있으면 외형, 즉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내면이 공허할수록 외양에 더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인간 사회에서 하나의 법칙이죠.
이제 돈벌이 경제와 살림살이 경제를 대비해서 봅시다. 원래 경제란 말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약자입니다. 경세제민은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을 구제한다는 말이고요. 그런데 백성을 구제한다는 건 결국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행복해지도록 만든다는 것이죠.
그런데 잘 생각해 보세요. 직장에 가서 돈을 많이 버는 것까지는 좋은데, 바로 그것 때문에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오면 가족끼리 대화할 시간도 없고 같이 밥 먹기도 힘듭니다. 심한 경우 건강을 잃기도 하지요. 여기서 건강은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까지 포함해요. 한국 사람들은 몸 건강에는 제법 신경을 쓰는데 정신 건강에는 신경을 잘 못 씁니다. 마음이 우울하거나 뒤틀려 있거나 분노로 충만해 있으면 모두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거예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어떤 모습을 많이 보일까요? 웃음이죠. 표정이 밝아요.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환합니다.
사실 돈벌이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늘 시간이 없고 가족들과도 대화를 나눌 수가 없어 마음이 병들기 쉽습니다. 여유가 없어요. 가족 공동체, 이웃 공동체를 제대로 만날 시간이 없으니 공동체가 깨지기 쉽습니다. 또 다른 경우엔,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나오는 오폐수가 우리 마을 지하수를 오염시키거나 공기를 오염시킬 수도 있습니다. 돈벌이 경제의 산물입니다.
반면 살림살이 경제라는 관점은 우리의 몸과 마음의 건강,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동체적 관계나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운 생태적 관계까지 챙기는 입장입니다. 살리는 겁니다. 살림살이라는 게 단순히 집안 일만 뜻하는 게 아니죠. 진짜로 가족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자연을 살려내는 일을 해야 올바른 경제가 된다는 뜻이 ‘살림살이’라는 말 안에 숨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일반적인 돈벌이 경제에만 몰두하면, 살림이 아니라 죽임의 경제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명심해야 합니다. 이 진리를 우리가 공유해야 해요. 앞으로 경영이나 경제가 대안적으로 가려면 죽임의 경제를 경계하면서도 사람과 자연을 제대로 살려내는 살림의 경제를 해야 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하면 디자인을 해서 최고 연봉을 받을까를 고민하며 미래를 꿈꾸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도시를 제대로 디자인해서 한 아이가 태어나 노인이 될 때까지 걸어 다니거나 유모차를 밀고 다니거나 아무 불편함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꿈을 꾸는 게 살림살이 경제의 꿈입니다. 또 학자가 된다고 하면, 정치인들의 잘못된 사업계획에 엉터리 자문이라도 해주고 떡고물을 받아먹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학자가 되어 우리 사회에 희망의 빛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겠지요.
우리 사회엔 좋은 점도 많지만 고쳐야 할 점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 양극화 해소와 자연 보존, 공동체 발전, 원자력 대신 자연 에너지 개발 문제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고쳐서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미래를 만들어 볼까, 이런 연구를 하는 학자가 되는 것이 살림살이 경제에 도움이 되겠지요. 그리고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적 꿈’입니다.
경제적인 풍요와 소득의 관계
다음으로 경제적인 풍요와 소득의 관계입니다. 대체로 우리는 돈을 많이 벌수록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그게 맞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어느 시점을 지나면 더 이상 행복감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거죠. 바로 이걸 약 40년 전인 1974년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A. Easterlin이라는 미국 교수가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라고 합니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행복감도 증가하지만, 일정한 소득 수준을 지나면 더 이상 행복감이 증가하지 않는 역설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한 나라만 조사한 게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를 모두 포함해, 흥미롭게도 경제 체제를 막론하고 소득 수준과 행복도가 쭉 같이 올라가다가 어느 시점 다음부터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수평으로 달리는 그런 모양을 보인다는 걸 이스털린 교수는 발견했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발견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이게 ‘왜’ 그렇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고민을 해보았어요. 결국 ‘삶의 질’ 때문에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제 가설인데, 즉 소득으로 표현되는 삶의 양이 증가할수록 행복감이 올라가지만, 그건 먹고사는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만 그렇고, 그 이상은 삶의 양이 올라가더라도 삶의 질이 떨어지면 행복감이 정체하거나 오히려 하락할 수 있다는 얘기죠.
그러면 여기서 ‘삶의 질’은 무엇을 말할까요? 예를 들어, 돈은 많이 버는데 가족과 대화할 시간도 없고 건강을 망치면 어떻게 될까요? 불행합니다. 또 동료나 친구와 심하게 갈등하고 싸워 보세요. 얼마나 속이 상해요. ‘어려운 상황에 빠져도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아.’ 이렇게 생각되면 인생이 허무해지죠. 그래서 이제 진짜 행복하려면 소득과 같은 삶의 양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 특히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탐욕의 경제
이제 은행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요? 은행은 참 신기하게도 우리에게 이자를 줍니다. 은행은 사업체입니까, 자선단체입니까? 사업체죠. 그런데 이자를 주다니 신기하지 않아요? 제가 1968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5원, 10원, 50원… 이렇게 잔돈을 꾸준히 저축해서 나중에 졸업할 때 한꺼번에 몇만 원을 찾은 기억이 있어요. 그때 정말 신기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랬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 수많은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저축을 해야 그 돈이 모여서 나라 경제 발전에 쓰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은행은 뭔가요? 돈을 모아서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한 자금만 모아주고 끝인가요? 아니죠. 은행도 사업체이니 뭔가 수익을 얻어야죠.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수익이 나오기에 우리에게 이자까지 줄까요? 은행이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줄 때 더 많은 이자를 받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은행이 저축을 한 우리에게 주는 것도 이자고, 대출을 해준 기업에게 받는 것도 이자죠. 이자를 영어로 인터레스트interest라고 하는데, 돈에 인터레스트가 붙는다는 게 정말 인터레스팅interesting하죠.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이 이자란 게 왜 붙을까요? 그건 은행이 우리가 저축한 돈을 활용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일부를 이자로 주는 것입니다. 돈벌이 사업입니다. 얼핏 보면 은행도 좋고 우리도 좋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은행은 돈을 빌려줄 때 모두 현찰로 주지 않고 통장에 숫자만 기입하거나 수표 같은 걸로 줍니다. 그래서 은행은 보유한 돈보다 열 배 이상을 빌려줄 수 있어요. 원래 은행의 기원은 황금 보관소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가진 황금을 보관해 주는 대신 영수증을 주었는데, 이게 달러 내지 수표의 기원인 거죠.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황금을 다 찾아갈 일이 별로 없으니 보관소 주인이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에게 종이돈을 빌려주기 시작합니다. 은행 대출의 기원이죠. 종이에 숫자만 기록한 걸 빌려간 사람은 월 얼마씩 실제 돈으로 갚아야 해요. 그렇게 은행은 황금을 1만 달러치만 갖고 있어도 그 열 배가 넘는 10만 달러 이상의 화폐를 발행해 여기저기 이자 놀이를 하게 되었어요. 이걸 그럴듯하게 ‘신용창조’라고 하죠. 그러니 은행은 가만히 앉아 돈을 법니다.
또 은행은 다른 걸로도 돈을 벌어요. 예를 들면 가정이나 기업에 돈을 빌려주되, 혹시 못 받을 경우를 대비해 담보라는 걸 잡습니다. 일종의 보증이죠. 대체로 건물이나 땅 같은 걸 담보로 잡는데, 만일 돈을 빌려간 사람이 갚지 못하면 은행은 그 건물이나 땅을 자기 것으로 만들거나 경매로 넘겨 돈을 와장창 챙깁니다.
은행은 자체적으로도 여러 사업에 투자해 직접 이윤을 얻거나 배당금을 받기도 합니다. 물론 은행이 좋은 일에 안전하게 투자하면 좋은데, 위험성이 높거나 투기성이 강한 것에 투자하는 일도 많지요. 아파트를 지어서는 안 되는 곳에 함부로 사업을 추진하거나 거기에 투자하기도 합니다. 또 전쟁 무기를 만드는 공장에 투자하거나 아프리카에서 원주민을 쫓아내고 광산을 개발하는 데 투자하기도 해요. 우리가 쓰는 휴대폰에도 콜탄이라는 광물이 들어가는데, 그 콜탄을 캐는 사업에 전자 기업들이 투자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기업도 투자를 해요. 그런데 개발을 하면서 현지 주민들과 평화롭게 계약을 해서 잘 하면 좋은데, 사람들을 마구 쫓아내고 저항하면 죽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온 대안적인 개념이 윤리적인 투자, 사회책임 투자입니다. 투자를 해서 돈을 벌더라도 인간 존중과 자연 보호를 생각하며 하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저축한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막상 우리는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은행이 스스로 잘 하거나 아니면 은행을 제대로 모니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도 잘 안 되는 게 현실입니다.
여기서 은행 및 기업과 관련해 하나만 더 이야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대개 건강한 경제라면 실물경제와 화폐경제가 서로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교환하는 데 쓰이는 만큼 화폐가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날 경제는 이 둘이 따로 놀아요. 지금도 온 세상에는 하루에만 약 5조 달러의 엄청난 돈이 돌아다니는데, 그중 정작 실물경제, 즉 수출이나 수입과 같은 물품의 거래에 쓰이는 것은 5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머지 95퍼센트 이상은 ‘돈 놓고 돈 먹는’ 투기성 경제라는 것이죠. 이런 걸 ‘카지노 자본주의’라고도 합니다. 바로 이게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와 같은 세계금융위기를 낳은 장본인입니다. 쉽게 말해 필요의 경제가 아니라 탐욕의 경제 때문에 이 세상이 이상해지는 것입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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