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도보고행승
깊은 산에 깃든 암자는 새가 알을 품은 자세였다. 예로부터 이 산은 숲을 품었고 숲은 절을 품었고 절은 새를 품어 왔다. 그래서 절 뒷산의 이름도 부화산孵化山이었는지 몰랐다. 낡은 절의 검푸른 기와지붕 위로 초록색 이끼가 자욱하게 피어 있었다. 오후로 접어들자 숲 속에서는 매미 우는 소리가 더욱 요란했고, 법당에서는 여승의 청아한 독경소리 사이로 목탁소리가 울렸다. 요사채의 댓돌 위에는 백구두 한 짝이 햇빛에 반짝이고, 샘터 옆의 배롱나무에는 백일홍이 한창 피는 중이었다. 철북이는 하얀 런닝구 바람으로 등나무 그늘의 평상에 드러누워 책을 보고 있었다. 철북이 옆에는 하얀 진돗개 한 마리가 조는 듯 앉아 있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풍경소리도 잠든 바람 한 점 없는 오후였다.
“어이, 거기 까까머리 광장!”
“예? 저, 저 말입니꺼?”
“니가 광장이가? 허허.”
철북이는 뒤쪽에서 누가 부르는 것 같아 벌떡 일어나 앉으며 대답했다. 밀짚모자를 쓴 스님이 툇마루에 앉아 백구두 끈을 묶으며 빙긋이 웃고 있었다. 철북이는 읽고 있던 최인훈의 소설 《광장》 표지를 힐끗 보았다.
“니 그동안 내 밥 갖다준다꼬 억수로 고생 많았제?”
“아, 아입니더.”
“아이긴, 방학인데 새벽잠도 설치고.”
“그건 쪼께…….”
“하하하, 그래 니 이름은 뭐꼬?”
“양철북이라고 합니더.”
“뭐? 양, 철, 북? 이름이 와 그리 시끄럽노?”
“안 두드리면 안 시끄럽심더.”
“뭐? 안 두드리면 안 시끄럽다고? 푸하하하핫!”
“…….”
스님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절간이 떠나갈 듯이 웃었다. 철북이는 그게 당연한 이치인데도 파안대소하는 스님이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웃음을 그친 스님이 벌떡 일어나더니 천천히 철북이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철북이 눈을 빤히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니 말투가 깡다구가 좀 있어 보이구마. 근데, 누가 만약 북을 두드리믄 우찌 되노?”
“그래도 해는 다시 떠오를 겁니더.”
“아, 헤밍웨이 팔지 말고 니가 우짤끼고 이 말이다.”
“그래도 해는 동쪽에 떠서 서쪽으로 질 겁니더.”
“변함없다 이 말이가?”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똑같이 낮은 목소리였다. 그렇지만 스님은 다소 장난스러운 표정이었고 철북이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기 아이고 다른 해가 뜬다는 말이라예.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아입니꺼?”
“어쭈, 이번엔 그리스 철학자도 팔아 묵네. 우야튼 북이 찢어지도록 두드려도 딴 해가 뜰 거니까 니는 괜찮다 이 말이제?”
“그럴 리가요. 그노마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손목 하나는 놔두고 가야 될 겁니더.”
“손모가지를 자르겠다는 말이가?”
“그래도 응징인데 그 정도는 대접하는 게 예의지 않겠십니꺼.”
“니 생각보다 억수로 예의 바르구마.”
“고맙심더.”
“허 참…….”
철북이가 말끝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대답하자 스님은 기가 차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스님이 갑자기 밀짚모자로 거칠게 부채질을 하며 소리쳤다.
“아, 근데 이놈아. 거 씰데없이 손모가지는 말라꼬 짜르노. 그냥 살짝 담가 쪼매 저어주면 되지. 안 글나?”
“뭘 살짝 담가 저어준다는 겁니꺼?”
“칼로 배때기를 살살 애무해준다는…….”
“에이, 그래봤자 뱃가죽밖에 더 벗기겠습니꺼. 푹 담가서 빡세게 휘저어삐리야…….”
“허허~ 이 녀석이 알고보이 시라소니와 이화룡이보다도 더 악질이구마!”
“…….”
“어이!”
“아까 이름까지 물어놓고……. 전 어이가 아니고 철북입니더. 근데 와요?”
30대 중반쯤의 건장한 스님은 말과 행동이 호탕하고 거침없었다. 또 소설가나 시인을 꿈꾸는 철북이 역시 스님한테 제법 눙치며 응수하는 걸 보면, 당돌한 구석도 만만찮은 아이 같았다. 키 큰 중과 고등학생의 대화는 때로 흥분해 충돌할 법도 했지만, 거의가 삼촌과 조카처럼 화기애애했다.
“니가 서북청년단이가?”
“예? 서북청년단?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어허, 이 녀석이 우리 현대사는 말짱 꽝이구마.”
“아, 맞다! 소설에서 얼핏 봤구나. 이문구의 《관촌수필》이랑 현기영의 《순이삼촌》에서…….”
“거기는 삐아리 눈물만큼밖에 안 나오구마. 야튼 해방 후 피양의 김일성이가 36년 동안 일본한테 아부하고 지랄 떨던 새끼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장마에 먼지 펄펄 나도록 작살내삔 다음, 그놈들 모가지를 하나씩 똑똑똑똑똑똑똑똑…….”
“아따, 지금 목탁 치는 것도 아이고 언제까지 딸 낀데예?”
“따인 놈이 어디 한두 놈이라 말이제, 하하.”
“에휴~ 스님들은 살생을 금한다더니 완전 개뿔…….”
“이기 뭐라고 궁시렁거리노? 니 내 욕했제?”
철북이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스님이 대뜸 눈에 불을 켰다. 당황해 얼른 수습할 묘안을 찾는 철북이의 눈에 진돗개가 들어왔다.
“아, 그, 그런 뜻이 아이고예…….”
“뭐가 아이고?”
철북이가 갑자기 책을 탁 접고 하늘과 진돗개를 번갈아보더니 한숨을 폭폭 쉬며 말했다.
“에휴~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스님도 잘 아는 요 착한 진돗개가 살생 같은 건 아예 모른다 아입니꺼.”
“그,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뿔따구가 나올라카니까 제 심정이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하겠십니꺼? 마, 그런 취지에서 완전 개뿔이라는 뜻이고요.”
“이기 지금 헷갈리게 뭐라카노? 그라고 개새끼가 우찌 뿔따구가 나노?”
“그러게요, 소도 염소도 스님도 다 뿔이 나는데…….”
“뭐? 거기 스님이 와 끼노?”
“아, 중뿔나잖아요. 스님도 잘 아시면서…….”
“아~ 이 자슥 진짜 골 때리는 놈이네!”
스님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더 세게 밀짚모자를 부채질했다. 그때에야 철북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진돗개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마워. 니가 일등 공신이야” 하고 속삭였다.
“아, 내가 잠깐 삼천포로 빠졌는데 인제 각설하고, 하여튼 한참 빡시게 목을 따버리자 그때 쥐새끼들처럼 몰래 서울로 토낀 놈들이 이승만이한테 찰싹 달라붙어 빨갱이 잡는다고 만든 단체가 바로 서북청년단이다 이 말이다. 알겠나?”
“그니까 간단하게 시라소니와 이화룡이 같은 깡패들도 그 단체 조직원이었다, 이 말입니꺼?”
“하모.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 그놈도 한패고. 그 깡패 새끼들이 일본 깡패들이 도망가고 텅 빈 명동을 주름잡았다 아이가. 이화룡이가 오야붕이고 그 가랑이 밑에 정팔이와 시라소니 이성순, 장천용 같은 놈들이 똥구멍을 핥아먹었고.”
“아따, 거 스님께서 별 걸 다 아시네요. 말투도 살짝 거시기하고, 진짜 스님이 맞는지 모르겠네.”
“이기 은근슬쩍 말 까네. 그라고 이 백구 친 대머리 보고도 모리겠나?”
“아이고~ 대머리야 천지삐까린데, 내 친구는 백구에다 눈썹까지 홀랑 밀었심더.”
“거 문디 새끼도 아이고 죄 없는 눈썹은 와 미노?”
“허 참, 지금 핵심은 눈썹까지 밀어도 중놈이 아이다 이 말입이더. 은근슬쩍 논점을 회피하시네요.”
스님은 좀 민망했는지 허허, 웃으며 먼 산을 한 번 본 다음 물었다.
“근데 그노마는 와 눈썹까지 싹 밀었삣노?”
“혼자 교련 반대 시위한다고…….”
“어이구~ 그 괴등학교에 인간 같은 놈도 있구마. 근데 니는 와 안 밀었노?”
“그 사건 다음 날부터 샘들이 앞으로 눈썹 미는 새끼들은 무조건 퇴학시킨다고 협박하고 공갈치는 바람에…….”
“그 공갈에 니 쫄았구나.”
스님이 빙긋이 웃으며 말하자 철북이도 스님을 빤히 쳐다보며 슬쩍 말을 돌렸다.
“근데 고매한 스님께서 체통 없이 그게 뭡니꺼.”
“뭐가?”
철북이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스님의 신발을 손가락을 가리켰다.
“아, 뭐기 그 백구두 말이지예. 자갈치 시장 카바레 제비도 아이고 남사시럽게…….”
“아니, 이놈아. 신발하고 중하고 무신 상관이고? 와, 까만 고무신 신고 다니면 진짜 중이고 하얀 구두면 가짜 중이가?”
“뭐 꼭 그런 건 아이지만 제 평생 백구두 신은 스님은 처음 본다 아입니꺼.”
“평생? 아이고~ 꼴랑 열아홉 살 주제에. 고것도 기저귀에 똥 싸고, 엄마, 이모, 고모 젖 빨아묵고, 아부지 지게 타고 학교 가고, 학교 가다 논두렁에 엎어져 디비 자는 거 다 빼버리면 암만 잘 봐줘도 겨우 4년 정도밖에 안 되는 기라. 근데 평생이락꼬? 에라이 자슥아, 저 3년째 변비 걸린 뻐꾸기도 가소롭다고 물똥 싸겠다. 고것도 암놈이…….”
스님이 숨도 안 쉬고 정말 배탈 난 새가 설사하듯이 좔좔 쏟아냈다. 조용히 듣던 철북이도 뭔가 수긍 가는 점이 있는지 한풀 꺾인 음성으로 말했다.
“허 참, 뻐꾸기 변비와 그게 무신 상관이 있다고……. 하여튼 평생이란 말은 좀 과하긴 했네예. 글치만 이모 젖은 묵었어도 고모 젖은 한 번도 묵은 적이 없심더. 그라고 학교 가다 논두렁에 자빠져 땡땡이 친 적도 없고요.”
“그게 아이면 막걸리 새참 나르다가 지가 처묵고 취해서 논두렁에 자빠져 잤겠지.”
“아니, 그걸 스님이 우찌 아십니꺼? 신통하네.”
“신통하긴, 시골 촌놈들이란 게 다 그렇지. 허허.”
“하긴 머슴 부리는 부잣집 빼곤……. 그라고 우짜지예?”
“뭘 우째?”
“암만 그래도 지 의심이 안 풀린다 아입니꺼.”
“이 자슥이……. 그라머 내가 승려 신분증이라도 까야 믿을 끼가?”
“뭐, 위조지폐도 판치는 세상에 그런 거야 가라로 만들면 되는 기고…….”
“허허~ 철북이 이노마 이거 진짜 안 되겠구마. 오늘부터 내 니 끌고 다니며 두 눈으로 직접 확인시켜야겠네. 내가 땡중인지 돌중인지, 하하. 지금 주지 스님과 차 한잔 하고 올 때까지 니 떠날 준비하거라.”
스님이 껄껄 웃으며 철북이의 까까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다음 주지 스님 처소 쪽으로 사라졌다. 서로 초면이나 마찬가진데도 스님이 오랜만에 만난 삼촌처럼 소탈하게 대해 철북이도 반 농담조로 얘기했다. 어쩌면 일주일 동안 하루 세 끼 식사 당번을 하는 사이에 서로 살가운 정이라도 들었는지 모른다.
그나저나 철북이는 고민이었다. 가벼운 농담 같았지만 스님이 진짜 자기를 데리고 떠날 기세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까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느끼고 오라는 주지 스님의 말도 심상찮았다. 이래저래 마음이 싱숭생숭한 철북이의 눈에 법당 마당에 떨어진 꽃잎 하나가 들어왔다. 스님이 아침 일찍 쓴 마당으로 바람에 날려 온 모양이었다. 철북이는 얼른 다가가 “에이~ 쓸려면 좀 제대로 쓸지” 하고 투덜거리며 꽃잎을 주웠다. 그러고는 조금 전 스님이 사라진 쪽으로 휙 던져버렸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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