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폭군 도마뱀, 티라노사우루스
거대한 목긴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가 높은 나무 위의 잎사귀를 뜯는다.
과학자들은 놀란 표정으로 공룡을 바라본다.
“녀석들은 얼마나 빠르죠?”
하얀 옷을 입은 안경 쓴 할아버지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다가왔다.
“티-렉스의 속도를 측정했더니, 시속 50킬로미터가 나왔소만.”
새틀러 박사는 깜짝 놀라며 뒤돌아보았다.
“티-렉스? 방금 티-렉스라고 하셨나요?”
할아버지는 웃었다.
“그렇소.”
그랜트 박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다시 말해보시오.”
“우리에게는 티-렉스가 있소.”
─ 영화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1993) 중에서
이 장면은 “비용을 아끼지 않은” 한 테마공원에서 일어나는 재난을 다룬 영화의 한 장면이다. 물론 이는 공상과학영화이며, 제목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영화에서는 호박(화석이 된 송진)에 갇힌 흡혈모기에게서 공룡의 유전정보를 추출하여 공룡들을 복제한다. 정말 현실에서 이렇게 공룡을 복제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택시 대신 트리케라톱스를 타고 출근할 수 있을 것이며, 퇴근 후에는 작은 벨로키랍토르와 함께 산책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물론 밟히거나 잡아먹히지만 않는다면). 필자는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가끔 보도되는 매머드 복제사업을 보며 가까운 미래에 살아 있는 공룡들을 볼 수 있는 공원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그저 공상과학영화(혹은 소설)의 재미난 이야깃거리일 뿐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등에 골판이 있는 스테고사우루스나 목이 긴 브라키오사우루스와 같이 폼나는 공룡들은 가장 오래된 모기 종류로 알려진 부르마쿠렉스 안티쿠우스보다 약 6000만 년 이전에 살았다. 그래서 많은 공룡들은 모기에게 피가 빨릴 일이 없었다. 게다가 모기들과 함께 살았던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조차도 약 6600만 년 전에 살았기 때문에 100만 년 이상 보존되기 힘든 유전정보가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을 리 없다. 진짜 운이 좋아 유전정보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모기가 온갖 공룡의 피를 빨아먹었을 가능성, 그리고 공룡의 피가 아닐 가능성(공룡시대인 중생대에는 공룡만 살았던 게 아니다!)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대부분의 모기는 피만 빠는 게 아니라 꿀과 과즙도 먹기 때문에 모기의 뱃속에서 공룡의 유전정보를 추출할 수 있는 확률은 몹시 희박해진다. 임신한 암컷 모기들만 피를 빤다는 사실까지 더해보면 더욱더 답이 없다. 결국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호박 속 모기를 이용해 복제사업을 한다 해도, 귀여운 아기 공룡의 탄생을 목격하는 게 아니라 방 한가득 모기를 키우거나 오래된 나무를 재배하고 있을 확률이 크다(그리고 뒷목 잡고 쓰러진 투자자들이 병실을 한가득 채울지도 모르겠다).
비록 우리가 원하는 멋진 중생대 공룡을 복제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굳이 한 종류를 복제할 수만 있다면 아마 99퍼센트의 사람들은 티라노사우루스를 외칠 것이다. 사실 티라노사우루스는 공룡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생물체를 통틀어 가장 인기가 많은 종種이다. 어린 시절에 우리는 그림책에서 처음으로 티라노사우루스를 만났고, 과학책이나 소설, 그리고 영화를 통해 계속 접해왔다. 살아 있는 티라노사우루스를 본 적은 없지만 미디어를 통해 너무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우리는 마치 실제로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거나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티라노사우루스와 얼마나 잘 아는 사이일까? 고생물학자들은 이 오래된 연예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번 장에서는 어린 시절 우리들의 슈퍼스타 티라노사우루스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슈퍼스타 티라노
1990년대 초, 한 연습실에서 전설적인 댄스그룹 ‘태지보이스’가 탄생했다. 하지만 한 매니저가 ‘태지보이스’를 한국말로 풀어버리는 바람에 결국 이 그룹의 이름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되었다. 만약 그때의 직역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태지보이스’라는 매우 아날로그적인 이름에 익숙해져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세상이 바뀌고 세대가 변하더라도 한번 알려진 이름은 영원히 남는다. 그래서 이름이란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름은 공룡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사실 새로운 공룡에게 학명을 지어주는 일은 모든 고생물학자들의 꿈이다. 그래서 기왕이면 기억에 남는 멋진 학명을 붙여주기 위해 너도나도 애를 쓴다. 현재는 남극을 포함한 모든 대륙에서 해마다 새로운 공룡 화석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며, 달마다 새로운 종류의 공룡이 발표되고 있는 추세다. 이렇듯 수없이 보고되는 수많은 종류들 사이에서 자신이 연구한 공룡이 다른 사람들에게 잘 기억되게 하려면 멋진 학명을 지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고생물학자들은 학명 때문에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고생물학자들의 이러한 고민은 아마 공룡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19세기 초부터였을 것이다. 그 후 200년간 약 1000종류 이상의 공룡이 학계에 보고되었는데, 이 중 가장 멋진 학명을 얻은 공룡을 뽑으라면 대부분의 학자들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Tyrannosaurus rex를 고를 것이다. 라틴어로 ‘폭군 도마뱀의 왕’이란 뜻의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이 공룡을 가장 잘 묘사한 이름일 것이다. 이 공룡의 학명은 워낙 잘 알려져 있어서 세 살배기 어린아이까지 알고 있다. 실제로 “사람의 학명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티라노사우루스라는 학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참고로 사람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다). 지금은 대단히 친숙한 이름이지만 티라노사우루스가 티라노사우루스로 불리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은 19세기 말부터 보고되기 시작했지만, 당시에 발견된 화석들은 모두 작은 뼛조각들이어서 고생물학자들은 이 폭군 도마뱀의 존재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당시 미국 예일대학교의 가장 잘 나가던 고생물학자 오스니엘 마시는 티라노사우루스의 골반과 다리뼈 일부를 보고는 새로운 종류의 타조공룡(말 그대로 타조처럼 생긴 공룡)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 다리뼈와 골반의 주인에게 ‘타조를 닮은 힘센 동물’이란 뜻의 “오르니토미무스 그란디스Ornithomimus grandis”라는 학명을 지어주었다. 어째서 마시처럼 유명한 사람이 티라노사우루스의 다리뼈를 보고는 타조공룡이라 착각했을까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티라노사우루스의 다리뼈는 매우 크다는 것만 제외하면 타조공룡과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에 당시 그의 착각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법하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전체 모습에 대한 최초의 단서는 1902년이 되어서야 발견되었다. 당시 미국자연사박물관의 큐레이터였던 바넘 브라운은 1902년에 미국 몬태나 주에서 티라노사우루스의 온전한 골격화석을 발견했다. 화석을 직접 발굴한 그는 땅 위로 노출된 뼈들을 보자마자 “분명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종류의 거대한 육식공룡일 거야”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티라노사우루스는 당시까지 보고된 육식공룡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당시에 알려진 육식공룡으로는 영국의 메갈로사우루스, 미국의 알로사우루스와 케라토사우루스가 있었다. 이들 육식공룡은 돈가스를 썰 때 사용하는 칼처럼 납작하고 삐죽삐죽한 형태의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브라운이 발견한 티라노사우루스는 마치 거대한 바나나처럼 굵은 형태의 이빨이었다. 이 이빨은 단순히 살점을 뜯을 뿐만 아니라 뼈까지 으스러뜨릴 수 있었다. 게다가 다른 육식공룡들과 확연하게 다른 또 하나의 차이는 티라노사우루스의 엄청난 몸집이었다. 비교적 호리호리했던 알로사우루스나 다른 육식공룡들과는 달리, 티라노사우루스는 적어도 이들보다 두세 배는 더 무거운 녀석이었다.
거대한 공룡을 발견했다는 기쁨은 잠깐이었고, 티라노사우루스의 엄청난 몸집 때문에 브라운은 이 공룡을 땅속에서 꺼내는 데에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만 했다. 굴삭기나 전기드릴이 없던 시절이다 보니 그는 삽을 이용해 발굴해야만 했는데, 시내버스만 한 공룡을 삽으로 퍼내는 일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간혹 그는 편의를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 결과 적지 않은 뼈들이 가루가 되어버렸다. 발굴된 뼈들은 하나당 100킬로그램 정도의 무게였다. 이렇게 발굴된 뼈들은 마차에 실려 대륙을 횡단해 박물관이 위치한 뉴욕으로 옮겨졌다.
박물관으로 이사 온 뼈들은 헨리 오즈번의 환영을 받았다. 박물관 연구실로 운반된 뼈화석들을 보자마자 오즈번은 그 크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비록 브라운이 현장에서 고생을 도맡았지만(물론 말들도 고생했지만),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을 연구하고 논문을 쓴 것은 당시 그의 상사인 오즈번이었다. 오즈번은 이 공룡의 골격을 전시하면 박물관의 방문객 수가 급증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오즈번이 초스피드로 논문을 써내려갈 동안, 그의 연구 파트너인 브라운은 이 공룡을 홍보하기로 했다.
유명한 서커스 쇼맨 출신이었던 아버지 피니어스 바넘의 영향을 많이 받은 브라운은 홍보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내였다. 이름을 한번 잘 지어주기만 하면 홍보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던 그는 오즈번과 함께 고심 끝에 멋진 학명을 만들게 되는데, 이때 탄생한 학명이 바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다. 발음하기도 쉽고 기억하기도 쉬운, 모두가 만족할 만한 이름이었다.
1905년 12월, 미국자연사박물관의 티라노사우루스 골격이 마침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이 슈퍼스타에 대한 기사는 그해 12월 3일에 『뉴욕 타임스』 1면을 장식했다. 브라운의 예상대로 티라노사우루스는 곧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하지만 오즈번은 이 폭군 도마뱀의 왕을 세상에 너무 빨리 알리고 싶은 나머지 티라노사우루스를 발표할 당시 작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브라운이 1902년 몬태나 주에서 티라노사우루스를 발굴하기 2년 전에 와이오밍 주에서 또 다른 티라노사우루스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와이오밍 주에서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 또한 미국자연사박물관으로 보내졌지만 오즈번은 몬태나 주와 와이오밍 주의 두 공룡이 같은 종류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와이오밍 주에서 먼저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에서는 갑옷공룡 안킬로사우루스의 골편들이 함께 나왔는데, 이 사실을 전혀 몰랐던 오즈번은 와이오밍 주의 공룡을 티라노사우루스가 아닌 갑옷을 두른 새로운 종류의 육식공룡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 와이오밍 주 공룡에게 ‘엄청난 도마뱀의 황제’란 뜻의 “디나모사우루스 임페리오수스Dynamosaurus imperiosus”란 학명을 지어주었고, 티라노사우루스와 함께 자신의 논문에 소개했다. 다행히 그는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지만 이미 논문은 출간된 이후였다. 결국 이 폭군 도마뱀에게는 티라노사우루스와 디나모사우루스라는 두 가지 학명이 붙은 것이다. 같은 명태를 두고 북어와 황태 두 가지 이름으로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먼저 발견된 공룡의 이름인 디나모사우루스가 아니라 2년 후에 발견된 공룡의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것일까? 과학자들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많이 저지른다(계속 소개하겠지만, 정말 실수를 많이 저지른다.) 오즈번처럼 같은 동물에게 여러 학명을 지어주는가 하면 서로 다른 동물에게 같은 학명을 지어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러한 실수들은 다른 과학자들의 연구에 혼동을 주기 일쑤였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세계 공통의 학명을 부여하기 위한 국제적인 규약을 18세기에 만들었는데, 이것을 〈국제동물명명규약〉ICZN, International Code of Zoological Nomenclature이라 한다.
〈국제동물명명규약〉에 따르면 먼저 발표된 학명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한다. 이것을 ‘선취권의 법칙’이라 한다. 비록 디나모사우루스가 먼저 발견된 화석에게 붙여준 학명이지만, 오즈번의 논문에서는 불행하게도 티라노사우루스보다 1쪽 뒤에 등장한다. 이렇게 디나모사우루스란 학명이 나중에 보고된 것이다 보니 우리에게는 디나모사우루스가 아닌 티라노사우루스라는 학명이 남게 된 것이다.
티라노사우루스라는 이름은 ‘디나모사우루스 사건’ 이후에도 또 한 번 말썽이 난 적이 있었다. 2000년 6월, 브라운이 티라노사우루스를 발견하기 훨씬 이전에 다른 누군가가 같은 공룡에게 다른 학명을 지어주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1892년, 미국의 고생물학자 에드워드 코프는 사우스다코타 주의 한 언덕에서 풍화작용에 의해 훼손된 목뼈 두 조각을 발견했다. 이 목뼈에 구멍이 송송 나 있다 해서 그는 목뼈 주인에게 ‘거대한 공기로 채워진 척추’란 뜻의 “마노스폰딜루스 기가스Manospondylus gigas”란 학명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약 100년이 지나서야 마노스폰딜루스 기가스가 사실 티라노사우루스였다는 게 밝혀졌다. 티라노사우루스란 학명이 바뀔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놀랍게도’ 티라노사우루스의 편이었다. 이는 2000년 1월(이 사실이 알려지기 약 다섯 달 전)부터 시행된 〈국제동물명명규약〉 네 번째 개정 덕분이었다. “지난 50년간 최소 25건의 연구에서 10인 이상의 저자들에 의해 사용되었다면 널리 사용되는 학명이 유지될 수 있다”라는 새로운 약속이 규약에 추가된 것이다. 운 좋게도 티라노사우루스는 이 조건에 딱 맞아떨어졌다. 비록 나중에 부여된 학명이긴 하지만 티라노사우루스는 이제 〈국제동물명명규약〉으로부터 철저히 ‘보호받는 학명nomen protectum’이 되었다. 학자들이 조금만 더 부지런했더라면 수많은 박물관 직원들과 출판사 사람들이 큰 고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티라노사우루스란 학명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행운의 이름이다. 그래서일까, 2012년 미국 네브래스카 주의 한 기업가가 자신의 이름을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로 개명한 일이 있었다. “왜 이름을 바꾸셨나요?”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가 당당하게 “이름이 멋있잖아요. 멋진 이름은 기억하기 쉽습니다. 기업가로서 중요한 것이기도 하고요. 하하하”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죽어서도 이름을 남기는 것은 사람만의 특혜는 아닌 것 같다. 물론 티라노사우루스가 살아생전에 자기 자신을 티라노사우루스라고 소개하지는 않았겠지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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