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박제하다
_ 사진가 구본창
진중권 반갑습니다. 오늘을 준비하며 이전 인터뷰를 읽어보니 기본적으로 밖으로 돌아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사진가가 밖으로 안 돌아다니면… (웃음) 인상파 이전의 화가들처럼 바깥을 돌아다니면서 스케치를 하다가 정작 작업 자체는 아뜰리에에서 하시는 거군요.
구본창 사진가가 바깥에 안 나간다니 앞뒤가 안 맞죠? (웃음) 저는 다른 일로 여행을 할 때도 항상 작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닙니다. 그렇게 스케치를 해서 아이디어를 얻은 후에 나가지, ‘이제부터 촬영을 다녀야겠다’ 하고 스케줄을 잡아서 무작정 돌아다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영화, 신문, 잡지에 나오는 스토리나 정보성 사진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영감을 받을 때가 많이 있어요. 심심할 때 보는 「인간극장」 같은 데서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때가 있고요.
진중권 돌아다니는 걸 싫어하시지만 또 이런저런 일로 어쩔 수 없이 해외를 많이 다니시게 되지 않습니까? 사진가의 여행은 저희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합니다. 우리처럼 기념사진도 찍고 그러시나요?
구본창 저도 당연히 낯설고 새로운 곳이면 박물관도 들르고 시장도 들르고, 한바퀴 돌 시간을 만듭니다. 스냅사진도 찍고요. 사진이란 한순간을 포착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재현할 수가 없잖아요. 스냅사진이 작품의 실마리가 될 때가 있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는 도구가 될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진중권 작품사진이 아닌 스냅사진을 찍으실 때 무엇을 포착하시는지요. 남들도 다 가는 똑같은 시장에 가더라도 사진가에겐 어떤 것이 말을 걸어오는지 궁금합니다.
구본창 어떤 대상이든지 제 마음을 흔들어야 해요. 지나가다 본 사물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어요. 유일하여 다시 재현할 수 없는 상황이나 물건, 사람의 모습을 담으려고 합니다. 두 번 다시 재현할 수 없는 어떤 유일한 매력, 놓치고 싶지 않은 매력, 가지고 싶은 매력이 있어야 셔터를 누르는 것 같아요. 저도 당연히 아름다운 풍광에는 현혹되고 감동하죠. 하지만 누구나 똑같이 감동하는 것은 어차피 제가 찍지 않아도 대한항공 카탈로그 같은 곳에서 많이 볼 수 있잖아요. (웃음) 결국은 남이 발견하지 않은 곳에서 내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됩니다.
진중권 한번은 『하늘 위에서 본 지구』라는 사진집으로 유명한 얀 아르뛰스베르트랑Yann Arthus-Bertrand, 1946~ 이라는 작가와 UH-60이라는 헬리콥터를 타고 휴전선 위를 비행한 적이 있었거든요. 연신 셔터를 누르는데, 도대체 뭘 찍는지 궁금해서 찍을 때마다 내려다봤더니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작품을 보니 제가 보고도 보지 못한 이미지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때 ‘사진가는 아예 보는 눈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웃음)
구본창 찍는 것도 중요하고 고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결국은 시각과 경험, 그리고 자기가 뭘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를 분명히 아는 훈련이 필요하겠죠. 저보다 많이, 더 열심히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 분들도 있습니다. 새벽 네시에 일출을 찍으려고 무거운 장비들을 짊어지고 산을 올라가는데, 저는 그렇게 못하거든요. 그분들의 사진에는 정말 좋은 사진도 있습니다. 문제는 ‘한번에 그치느냐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수 있느냐’죠. 다시 말해 어쩌다 한번 좋은 사진을 찍느냐 아니면 계속 그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차이인 것 같습니다.
진중권 디지털 카메라가 생긴 이후 사진만큼 대중화된 예술은 없을 겁니다. 인터넷 보면 사진 동호회도 많고 커다란 렌즈로 나름대로 멋을 내서 찍은 사진들 많잖아요. 이런 것 보실 때 어떤 느낌이 드세요?
구본창 그분들은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겠지만 아쉬울 때도 있죠. 본인이 감동을 해야 하는데 ‘누가 어디서 뭘 찍었더라’ 아니면 ‘어떤 사진이 좋더라’라는 말에 휘둘려 그냥 따라했을 때는 감동을 줄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본인이 살아온 경험에서 뭘 표현하고 싶은지를 우선 찾아야 하죠. 또 아까 말씀드렸듯이 대상이 사진가에게 말을 걸어와야 하는데, 사람들과 떠들다보면 사물이 말을 걸어오는 걸 들을 수가 없거든요. 같이 촬영을 나가더라도 한꺼번에 몰려다니기보다는 따로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바라봐야 대상의 개성이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진중권 보통 사진에 입문하는 분들이 제일 먼저 관심을 갖는 게 기자재들이고 두 번째는 기법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보니 정작 더 중요한 것, 즉 내가 뭘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훈련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솔직히 대가가 쓰는 도구가 무엇인지도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흔히 대가는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요. 카메라는 어떤 걸 쓰십니까?
구본창 종류가 다양합니다. 예전부터 쓰던 아날로그 카메라도 있고, 디지털 카메라도 중형도 있고, 소형도 있어요. 테마에 따라 간편하게 들고 다니면서 스냅을 해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삼각대를 놓고 천천히 찍어야 더 깊은 것이 담기는 게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다른 장비를 사용하지요.
진중권 카메라마다 성능 차이가 있고 특성이 있겠지만, 아날로그 사진과 디지털 사진의 느낌은 어떻게 차이가 날지 궁금합니다.
구본창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카메라의 크기가 중요해요. 악기도 크기에 따라 공명이 달라지고 음의 높이가 다라지듯이, 사진도 대형 카메라나 옛날에 결혼식에서 찍던 큰 필름이 확실히 더 깊은 맛이 나요. 찍히는 시간도 더 길어 천천히 찍히고 우리가 바라보는 시간도 더 차분해지고요. 그래서 그런지 큰 카메라와 작은 카메라의 차이가 우선이고, 디지털하고 아날로그의 차이는 기술의 발달로 크게 줄었어요. 다만 필름의 입자에서 오는 묘한 분위기와 아우라는 아직 디지털이 따라오지 못합니다. 물론 일반인이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지만요.
진중권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 1892~1940도 그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초창기 사진에는 아우라, 즉 뭔가 범접하기 힘든 ‘분위기’가 있었다고. 그때만 해도 일단 노출 시간이 굉장히 길었고, 그 결과 피사체와 오랜 시선의 마주침이 있었죠. LP판도 비슷한 것 같아요. LP도 옛날에는 복제로 여겨졌는데, 요즘은 LP에도 원작처럼 아우라가 있잖아요. 복제 매체 자체가 이미 오랜 역사를 갖게 된 거죠.
선생님의 작품을 보다보면 수집벽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수집품을 망라한 ‘컬렉션’이라는 전시회도 열었죠. 발터 베냐민이 쓴 글 중 「수집가이자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Eduard Fuchs, der Sammler und der Historiker」가 떠오릅니다. 거기서 베냐민은 공식적 박물관이 수집품의 독창성이라는 면에서는 수집가들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하죠. 수집에 따로 원칙이 있나요?
구본창 제가 버리지를 못해요. 수집벽이라기보다는 버리지 못하다보니까 수집이 된 것 같아요. (웃음) 원칙이라기보다는 수집품 하나하나가 생명을 가져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죠. 이야기를 간직한 물건이나 사람의 얼굴에서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앤티크, 골동품이라는 것도 긴 세월에 여러사람의 손을 거쳐서 이야기와 함께 남은 거죠. 몇백년이 지나도 버려지지 않고 세월의 흐름과 상처를 안고 있는 것들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옆에서 그런 사물을 보다보면 어느 순간 나한테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생각이 들고, 촬영을 하게 되죠. 혼자의 상상이지만,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그럴 것 같아요. 저는 작가의 해석 능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진중권 사람은 아니지만 사물도 개인사個人史처럼 개물사個物史가 있는 것 같습니다. (웃음) 원래 카메라라는 매체는 냉정한 기계의 눈이기에 ‘1인칭의 시각과 3인칭 피사체’의 관계를 내포하는데,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 카메라가 사물과 ‘1인칭-2인칭’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눈에 보이지 않고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는 없지만, 켜켜이 쌓인 기억, 상처, 얘기를 들으시는 것 같습니다. 똑 떨어지는 대답을 기대하고 묻는 것은 아니지만, 작업을 하실 때 영감은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구본창 글쎄요. 공식처럼 어떻게 했냐고 질문하시면 할 말이 없어요. 어떤 때는 ‘어떻게 내가 이 테마에 접근을 했지?’ ‘내가 어떻게 이걸 하게 됐지?’ 하고 자신한테 물어볼 때도 있습니다. 사소한 일이 작품이 될 때도 있지만, 연작을 할 때면 며칠 동안 고민의 시간을 가집니다. 이제까지 했던 메모를 들춰본다든가, 저를 아주 한가롭게 만들어 방안을 뒹굴 때, 엉뚱한 데서 아이디어가 불현듯 번뜩일 때가 있어요.
진중권 아마도 꿈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꿈에서 보는 이미지를 자세히 분석해보면 옛날에 겪었던 체험이 조금씩 섞여서 등장한 경우가 많으니까요. 마녀의 냄비 속에서 끓다가 불쑥 솟아오른 마법의 약 같은 거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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