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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희망이 허락된 종교적 열망, 과학의 성배였다. 우리의 야망은 높고 낮게 흘렀다―창조신화의 실현을 위해서, 기괴한 자기애적 행위를 향해서. 그것이 실현 가능해지자 우리는 결과야 어떻든 욕망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가장 고결하게 표현하자면, 우리의 목표는 완벽한 자신을 통해 필멸성에서 벗어나 신에게 맞서거나 심지어 신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보다 실용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개선된 형태의 더 현대적인 자신을 고안하여 발명의 기쁨, 지배의 전율을 만끽할 작정이었다. 20세기의 가을에 마침내 그 일이 일어났다. 해묵은 꿈의 실현을 향한 첫 발짝. 우리가 아무리 복잡하다 해도, 우리의 가장 단순한 행동과 존재방식에 대한 설명조차 아무리 불완전하고 어렵다 해도 우리가 모방과 개선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될 긴 가르침의 서막. 그리고 나는 그 쌀쌀한 새벽에 한 청년으로, 열성적인 얼리어답터로 거기 있었다.
하지만 인조인간은 세상에 나오기 오래전부터 하나의 클리셰였기에 정작 실제로 출현했을 때 실망한 이들도 있었다. 역사나 기술발전보다 빠른 상상력이 책에서, 그다음엔 영화와 TV 드라마에서 이미 미래를 연습시켜준 것이다. 흐리멍덩한 눈빛과 수상쩍은 머리 움직임, 등허리가 좀 경직된 모습으로 걷는 인간배우가 미래에서 온 우리의 사촌들과 함께 사는 삶을 준비시켜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낙관주의자에 속했고, 마침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땅값이 비싼 개발지역에 있던 집을 팔아 뜻밖의 거금을 손에 쥐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포클랜드전쟁의 기동대가 그 가망 없는 임무에 착수하기 한 주 전에 그럴듯한 지능과 용모를 갖추고 믿을 만한 동작과 표정 변화가 가능한, 상용할 수 있는 최초의 제조인간이 시판에 들어갔다. 아담의 가격은 8만 6천 파운드였다. 나는 밴을 빌려서 그를 싣고 클래펌 북부에 있는 나의 누추한 아파트로 왔다. 내가 그런 무모한 결정을 내린 건 전쟁영웅이자 디지털 시대를 이끌어가는 천재 앨런 튜링 경이 똑같은 모델을 인도받았다는 소식에 고무되어서였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연구소에서 그걸 분해하여 작동방식을 철저히 점검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첫 발매분에서 열두 개는 아담, 열세 개는 이브로 불렸다. 진부하지만 상업성이 있는 발상이라는 데 누구나 동의했다. 생물학적 인종 개념은 과학적으로 신빙성을 잃어가고 있기에 이 스물다섯 개의 모델은 각기 다른 민족적 특징을 지니도록 고안되었다. 아랍인이 유대인과 구별이 안 된다는 소문이 있었고 그것은 후에 불만으로 이어졌다. 모든 모델은 삶의 체험뿐 아니라 무작위적 프로그래밍에 따라 성적 취향에서 완전한 재량권을 갖게 될 터였다. 발매 첫 주가 끝나갈 무렵 이브는 모두 팔렸다. 나의 아담은 얼핏 보면 터키인이나 그리스인 같았다. 몸무게는 80킬로그램에 가까워 함께 딸려온 일회용 들것으로 그를 내 아파트까지 운반하기 위해서는 위층에 사는 미란다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의 배터리가 충전되는 동안 나는 미란다와 함께 마실 커피를 준비한 다음 470페이지 분량의 온라인 사용설명서를 훑어보았다. 설명은 대체로 분명하고 정확했다. 하지만 아담의 제작에 참여한 기관이 여러 곳이다보니 무의미시詩의 매력을 지닌 설명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태평한 이모티콘과 함께 감정기복 반음영을 흐릿하게 하는 머더보드 출력을 얻으려면 B347K 조끼 상부를 덮을 것.’
마침내 그는 나의 작은 식탁에 알몸으로 눈을 감고 앉아 있었고, 그의 배꼽에서 뻗어나온 검은 전선이 벽의 13암페어 소켓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의 발치에는 판지와 폴리스티렌 포장재가 발치에 흩어진 채였다. 그를 작동시키려면 열여섯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다음엔 업데이트와 개인적인 선호 사항을 다운로드하는 과정이 이어질 터였다. 나는 당장 그를 원했고 미란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열성적인 젊은 부모처럼 그의 입에서 첫말이 나오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는 가슴에 싸구려 스피커가 내장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격앙된 홍보를 통해 그가 호흡, 혀, 치아, 구개로 소리를 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진짜 같은 피부는 이미 따뜻하고 아이처럼 매끄러웠다. 미란다는 그의 눈꺼풀이 깜작이는 걸 보았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것이 수십 미터 지하에서 달려가는 지하철이 일으킨 진동임을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담은 섹스토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섹스를 할 수 있었고, 실제로 기능하는 점막을 갖추고 있어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물을 반 리터씩 소비했다. 그가 식탁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그가 포경수술을 받지 않았고 성기가 꽤 크며 풍성한 검은 음모가 돋아 있는 걸 확인했다. 이 고도로 발전된 형태의 인조인간은 젊은 코드 크리에이터들의 욕구를 반영했을 가능성이 컸다. 아담들과 이브들은 활기가 넘칠 것으로 보였다.
광고에서는 그가 설거지도 하고 침대 정돈도 하고 ‘생각’도 할 수 있는 동반자이자 지적인 논쟁 상대, 친구이자 잡역부라고 했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순간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저장하고 검색할 수 있었다. 아직 운전은 할 수 없었고 수영이나 샤워,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돌아다니거나 사람의 관리감독 없이 전기톱을 사용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작동 범위로 말할 것 같으면, 전기에너지 저장 분야의 혁신 덕에 충전 없이 두 시간에 17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었고 같은 양의 에너지로 십이 일 동안 쉬지 않고 대화할 수 있었다. 수명은 이십 년이었다. 그는 탄탄한 체구에 각진 어깨, 거무스름한 피부, 뒤로 넘긴 숱 많은 검은 머리의 소유자였고, 조붓한 얼굴에는 맹렬한 지성을 암시하는 약간 매부리코 같은 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반쯤 내리깐 눈,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주검의 누르스름한 창백함이 가시면서 인간의 풍성한 색깔을 찾아가며 어쩌면 양끝의 긴장이 조금 풀려가는 것도 같은 꾹 다문 입이 자리하고 있었다. 미란다는 그가 ‘보스포루스해협의 어느 부두노동자’를 닮았다고 말했다.
우리 앞에 궁극의 장난감, 모든 시대의 꿈, 인본주의의 승리―혹은 그 죽음의 천사―가 앉아 있었다. 말할 수 없이 흥분되면서도 한편으로 좌절감이 들었다. 잠자코 기다리며 지켜보기에 열여섯 시간은 너무 길었다. 점심을 먹은 후, 나는 아담을 사는 데 지불한 액수라면 이미 그가 충전을 마치고 작동 준비가 되어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쌀쌀한 늦은 오후였다. 내가 토스트를 만들었고 우리는 커피를 더 마셨다. 사회사 박사과정에 있는 미란다는 십대 시절의 메리 셸리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쓴 영국 작가.가 우리 옆에 와서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이 아닌 이 잘생긴 짙은 피부의 청년이 생명을 얻는 과정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두 피조물의 공통점이라면 전기라는 생명의 힘을 갈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그렇죠.” 그녀는 전기화학적으로 충전되는 모든 인간이 아닌 우리 둘만을 가리키는 것처럼 말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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