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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으로 가는 길
첫눈에 반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말이 사기라는 것을 나는 파도에서 배웠다. 그 말은 열 살 전에 파도에 입문하지 않은 이에게는 서퍼가 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서핑 영화의 대사처럼 터무니없다는 걸 이제 나는 안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 너무 늦은 때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거기가 라인업이기 때문이다. 양미 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파도를 타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라인업에 가는지 아나? 다른 방법은 모르겠고, 내가 아는 방법은 오로지 이것뿐이다.
패들, 패들, 또 패들! 계속해서 나아간다. 양팔을 움직여서 쉴 새 없이 패들해야 한다. 처음에는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하면 빠르게. 피아노 에 포르테.
서핑에서 나는 그렇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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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020년 12월 23일이고, 수요일이고,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이고, 나는 7번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코로나가 스페인 독감 이후 최악의 질병으로 인정된 이래 일 년쯤 되는 날이었다. 경제 활황기의 코스피 주가만큼이나 확진자 수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3차 대유행의 나날을 지나고 있었고, 오늘부터 거리두기 3단계가 될 거라는 암울한 예측이 있었지만 3단계가 되지는 않았다.
서울의 거리 분위기는 충분히 3단계였다. 캐럴도 거의 들리지 않았고, 테헤란로의 한 백화점으로부터 시작해 백화점과 이어지는 거리까지, 또 거리 위의 허공까지 나무와 초록 들로 채워 자연의 융단으로 뒤덮은 듯 꾸며두었던 작년과 너무 달랐다. 나는 7번 국도를 달리는 중이었고, 막 강문해변을 지나고 있었다.
시대착오적이지 않아? 이 목소리를 들은 날이기도 했다. 저런 거 말고 코로나 확진자 수 나와야 하는 거 아냐?라고 말하는, 수염을 5밀리미터쯤으로 다듬은 남자는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했다. 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시작한 삼 년 동안 열 번은 보지 않았을까 싶은 정도의 친숙함.
나도 고개를 들어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엘리베이터 왼쪽에 있는 LED 현황판이었다. 날짜와 온습도, 날씨, 베스트셀러 순위, 그리고 그날의 코스피 지수와 나스닥 지수를 보다가 오늘이 12월 23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올해가 가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내게 있다는 것을, 그 일을 아직까지 미뤄왔다는 것도 떠올랐다. 그래서 급행 휴가라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던 다국적 기업 복지 제도의 혜택을 입어 오전 근무까지 하고 퇴근했던 것이다.
도시에서 혼자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와 연말과 연초를 보내는 일을 면했다. 이 콰트로 콤보를 또 어떻게 보내느냐며 마음이 움츠러들지 않아도 됐다.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위해 지금 여기 이러고 있었지만, 인생에 있어 나쁜 일만은 없다고 생각하려 애쓰고 있었다.
하나가 나쁘면, 하나는 좋다. 세상은 그렇게 시소처럼 양쪽으로 기울게 만들어져 있다고. 그렇게 만들어져 있지 않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려는 게 나라고. 가벼워졌다 무거워졌다, 다시 가벼워졌다가 하면서. 발이 땅에 떨어졌다 다시 닿았다가 하면서. 또 한번 날아오를 시간을 기다리면 되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평소에는 혼자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데 크리스마스이브나 설날 같은 날에는 혼자 있기가 어렵다. 냉장고는 텅텅 비어 있고,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다. 컵을 쥐는 손동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든가 살성이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든가 하는 상대에 대한 불만은 잠시 접어놓고, 어떻게든 짝을 이루고 있는 이들 앞에서 이런 날 밥 먹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줄 만큼 꿋꿋하지도 못해서.
마늘과 올리브 오일, 파스타 면만 있으면 알리오올리오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냉장고에 마늘이 있을 리 없다. 켜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가스레인지라 작동이 되는지도 모르겠고, 침대맡에 있는 책꽂이에는 도나 헤이의 파스타부터 알랭 뒤카스의 그리너리, 풍산 류씨 종가 맏며느리의 제철 음식, 그저 큰절의 말사末寺였을 뿐인 절을 사찰 요리로 유명하게 만든 스님의 약선 요리, 파리 페이스트리 부티크의 베이킹까지 오프라인 서점의 매대에서 직접 고르고 고른 열 권 정도의 요리책이 있었지만 실제로 해본 적은 없다. 하나도.
눈까지 내려주기라도 하면 기분이 더 그렇다. 호르몬과 날씨와 절기에 좌우되는, 깃털처럼 취약한 사람은 아니라고 자부해오던 신념이 바르르 떨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약하기 그지없는 사람, 그게 나다. 내가 믿는 신도 아닌 그냥 어떤 신의 아들의 탄신일일 뿐이라는 건 이론상의 문제, 참을 수 없이 어색해진다는 건 내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
이때가 되면 나는 떠나곤 했다. 해변 앞에 있는 펜션으로, 지방 소도시의 호텔로, 어떨 때는 절로, 그러니까 템플 스테이로. 24시 옥돌 사우나에서 입을 법한 누리끼리한 단체복으로 환복하고 명상과 예불을 함께 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템플 스테이는 사양해왔다.
지금 말하고 있는 템플 스테이란, 오로지 휴식형이다. 짐을 내려놓고 그저 잔다. 24시간을 잔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다. 밥을 먹고 싶지 않으면 먹지 않아도 되지만 시간만 맞춰 간다면 괜찮은 밥을 준다.
템플 스테이는 나처럼 ‘홀로 연말족’을 위해서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한다. 템플 스테이를 이 땅에 만들어준 한국의 사찰 관계자에게 감사하고 있다. 욜로가 아니라 홀로다. 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 번뿐인 게 맞는데, 욜로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한번뿐이니까 그렇게 살면 안 되지 않나 싶고, 욜로라는 단어는 내장파괴버거만큼이나 사람 몸에 나쁘다고 생각한다. 자기 파괴적이라고.
거기 오는 사람들도 마음에 든다. 본인의 얼굴과 핫한 스팟이라고 생각되는 인스타그래머블한 곳을 계속해서 찍는 이들은 최소한 템플 스테이에는 없지 않을까 싶다. 욜로의 방식이라며, 그게 시간이든 돈이든 누린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템플 스테이에서는 누리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 여기에는 홀로증후군을 겪는 나 같은 사람만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 가성비라는 것은 환상일 뿐이라는 게 내 입장이다. 환상은 환상에 빠지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때 태어나는 법. 아니면 ‘가성비’라는 말이 아닌 다른 말을 동원하기에는 어휘력이 부족하거나. 가성비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돈의 효용 가치에 합당한 것이 주어지고, 그게 자본주의의 합리성이라고 생각하지만 템플 스테이는 좀 다르다. 이 시대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낭만적인 도피처랄까.
혼자 있기 쓸쓸한 연말이라는 이유로 급행 휴가를 낸다고 해서 받아줄 회사는 없다는 걸 미리 말하고 싶다. 내게는 올해가 가기 전에 처리해야 할 개인적인 일이 있었다. 지금까지 미뤄왔다는 말이기도 했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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