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영역
다영은 여주에 있다고 했다.
여주라면 명덕이 공을 친 클럽에서 고속도로로 십 분 남짓 걸리는 곳이었다. 그는 새벽에 시작한 라운딩을 마치고 일행과 늦은 점심을 먹은 뒤 곧바로 집에 돌아가 쉴 생각이었지만 밥을 먹다 누군가가 가져온 보드카를 몇 잔 마시게 됐고 또 누군가에게 이상한 혐오가 일어 혼자 클럽하우스를 빠져나왔다. 근처 카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야외 테라스에 앉아 얼음을 채운 콜라를 마시며 술이 깨기를 기다리다 아무 이유 없이 다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주엔 왜?”
다영은 말이 없었다. 우리가 서로 그런 걸 일일이 묻고 답해야 하는 사이인가 회의하는 침묵 같았는데, 설사 그렇다 해도 할 수 없었다. 다영은 짧게 한숨을 쉬더니, 도자비엔날레 때문입니다, 했다. 도자…… 비엔날레……? 그가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는 사이, 지금 촬영중이라서요, 하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그는 뚝 끊긴 전화보다 때문입니다, 하는 정중한 말투가 더 신경이 쓰여 담배를 피우다 말고, 녀석하고는, 혼잣말을 했다.
담배 연기는 하늘로 올라갔고 연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초승달 모양의 낮달이 크림 빛깔로 떠 있었다. 낮달의 바깥 호는 가늘고 선명한 데 비해 안의 호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톱니무늬로 하늘빛에 묽게 섞여들고 있었다. 운동 후의 식사, 낮술의 취기, 봄날의 나른함이 겹쳐 그는 선잠에 빠지면서도 이게 어쩐지 저 은은한 낮달 때문이지 싶었고. 이게 죄다 저 뜯긴 솜 같은 낮달 때문입니다…… 낮달 때문입니다…… 하다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한 시간쯤 지나 있었다. 그는 얼음이 녹은 밍밍한 콜라를 마시고 하늘을 보았는데 낮달의 위치가 생각보다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다. 낮달을 오래 보고 있자니 최면에 걸린 듯했고 문득 자신의 페인팅에서도 색과 기운을 조금씩 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세지지 말자 그런 생각. 조금 연해도 된다고, 묽어도 된다고, 빛나지 않아도, 선연하지 않아도, 쨍하지 않아도, 지워질 듯 아슬해도 괜찮다고, 겨우 간신해도…… 그런 생각 끝에 그는 마치 그 생각의 자연스러운 결론이기라도 한 듯 여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가서 도자비엔날레도 보고 다영의 얼굴도 보고 저녁이나 같이 먹고 와도 괜찮겠다고.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기 전에 전화를 걸었다. 한참 만에 전화를 받은 다영은 대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촬영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시간 맞추기도 힘든데 괜히 오지 마시라 했다.
“어차피 도자비엔날레도 볼 겸, 간 김에 젊은 사람들 고생하는데 고기 한번 사주고 싶어서 그러지.”
다영이 놀란 듯, 우리 팀 다 사주시려고요, 네 명인데요, 했다.
“당연하지.”
아, 네, 하고 다영이 말을 멈춘 동안 그는 딸이 감동에 잠긴 줄 알았다.
“그런데요…… 그렇게 하는 게 괜히 멋있어 보일 거 같고 그래서 그러시는 거죠?”
그가 어이가 없어, 넌 왜 그렇게 애가, 하는데 다영은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그럼요, 하더니 자기들이 묵는 농가 펜션에서 식당도 하니까 거기서 먹자고, 다섯시 반으로 예약하겠다고, 주소 입력하라고 자기 말만 다르르 쏟아놓았다. 그는 입도 뻥긋 못하고 서둘러 다영이 불러주는 펜션 주소를 내비에 입력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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