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오전에는 드라이와 커트 손님이 각각 두 명씩 있었고, 점심을 먹고 나자 미리 예약해둔 파마 손님이 왔다. 손님이 스타일북을 보며 어떤 파마가 어울릴까 고르는 동안 해미는 카운터에 있는 지현에게 가서 고객관리 문자를 보내라고 시켰다.
해미의 미용실은 2년 전부터 새로운 고객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전보다 매출이 크게 늘었다. 사람들은 자기 머리카락에 필요한 시술을 받기 위해 때맞춰 미용실을 찾는 일을 귀찮아했다. 요즘은 무엇이든 그랬다. 음식점에서는 복잡하게 이것저것 골라야 하는 단품 메뉴보다 주방장이 ‘오늘의 특선’으로 정해 내주는 오마카세 메뉴가 각광받았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씩 큐레이터가 구색을 맞춰 선별한 과일과 채소 꾸러미를 배송해주는 서비스가 인기를 끈 지 오래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기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지 못했다. 그것을 숙고하는 데 들일 시간과 집중력과 에너지가 없었다. 타인이 선택을 하고 먹기 좋게 만들어 입에 직접 떠 넣어줘야 소비를 했다.
해미의 미용실은 머리를 하러 온 손님들에게 미리 30만 원의 예치금을 받고 개별 시술 금액을 할인해주는 선택지를 마련했다. 파마나 염색을 두 번 할 가격에 세 번을 해주는 것이었다. 거기에 시간이 지나고 머리가 자라고 먼저 했던 시술이 풀림에 따라 해야 할 다음번 관리 ― 추가 커트, 두피 클렌징, 영양제 서비스, 뿌리 염색, 볼륨매직 파마 ― 를 고객에게 직접 카카오톡으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같이 제공했다. 알림톡 끝에 붙은 ‘예약 하시겠어요?’라는 링크를 누르면 바로 미용실로 전화가 연결됐다. 예치금이 비교적 목돈이어서 학생층의 이용은 적었지만, 아이 엄마들이나 중년 이상 고객층의 호응은 높았다.
손님의 머리를 감겨주면서 해미는 문득 그 손님을 떠올렸다. 사람을 둘로, 머리를 감겨줄 때 힘을 완전히 빼고 편하게 머리를 맡기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으로 나눈다면 그 손님은 후자였다. 언제나 온몸과 마음이 잔뜩 긴장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어서, 편하게 힘을 빼주세요, 라는 말을 몇 번이고 해야 했다.
그 손님이 안 온 지 얼마나 됐지? 해미는 문득 궁금해져서 카운터로 가 고객 정보를 확인해봤다. 아이와 함께 와서 마지막으로 염색을 하고 간 게 8개월 전이었다. 그동안 때맞춰 알림톡을 보냈지만 연락도 오지 않았고 길에서 지나가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머리가 빨리 자라는 편이었는데 다른 미용실에 다니는 걸까?
지독하게 말수가 없는 손님이었다. 일이 바쁜지 늘 토요일에만 미용실에 오던 사람. 올 때마다 모발은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고, 때때로 집에서 문구용 가위로 아무렇게나 잘랐는지 앞머리가 뭉툭하고 짧은 다발이 되어 있기도 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 이야기로 분위기를 띄워보려 했지만, 몇 번인가 해미가 대화를 시도해봐도 네, 혹은 아뇨, 식의 단답형의 대답만 돌아올 뿐 말이 잘 이어지지 않아서, 친해지는 일은 포기했다. 요즘에는 그런 손님들도 많으니까.
그 손님은 머리를 하는 동안 패션지나 스타일북을 넘겨 보지 않았다. 그런 것은 읽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를 온몸으로 확연하게 풍기며 늘 자기가 따로 준비해 온 책을 읽었다. 해미의 눈에는 제목도 표지도 너무 어려워 보이는 책들이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직종인지는 알 수 없어도 지식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일 거라는 판단이 섰다.
역시 그 책이 문제였나 봐, 해미는 손님의 머리에 파마 약을 바르며 생각했다. 그 손님이 마지막으로 왔을 때 해미는 책 한 권을 선물했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 그것은 해미에게는 ‘인생 소설’이었다. 일이 바빠 독서라는 행위는 거의 할 시간이 없었고, 사실 책을 읽는 일에 별다른 재미도 느끼지 못했지만 해미가 1년쯤 전에 이례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끝까지 읽고 공감했던 책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이 책도 분명히 좋아할 거야, 생각하고 제번 큰 용기를 내서 선물한 건데 역시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책이 그렇게 무시당할 만한 책인가? 그렇지 않았다! 절대로. 할레드 호세이니는 그런 대접을 받아도 좋은 작가가 아니지 않은가. 신간이 아니고 스테디셀러라서 싫었을까? 아니면 내가 추천해준 책이라서? 뭐, 별로였을 수도 있지. 하지만 다시는 안 올 만큼 그렇게 별로였을까?
해미는 뒤늦게 기분이 나빠졌다. 타인들을 향해 자신의 취향을 드러냈다가 머쓱해지는 일이 해미에게는 종종 일어났다. 화려한 꽃을 좋아하는 해미가 호접란이 가득 핀 화분을 미용실에 가져다 놓았을 때, 다른 실장들은 어머 예쁘긴 한데 꽃이 좀 야하다, 말하며 묘하게 웃었다. 의자마다 달려 있는 호피 무늬가 들어간 접이식 테이블과 재떨이도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그것은 미용실 리모델링을 할 때 연차가 제일 높은 해미가 강력하게 제안을 해서 설치한 것이었다. 해미는 호피 무늬를 좋아했고, 흡연자였기에, 가끔 손님들 가운데서도 머리를 하면서 몇 시간씩 붙잡혀 있다 보면 편하게 담배 한 대쯤 피우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용실 사람들뿐 아니라 손님들도 그 재떨이를 보고는 뜨악해했다. 요즘 실내에서는, 아니, 실외에서도 다 금연 아닌가요? 하고 물었고, 실장님 호피 무늬 좋아하시나 봐, 아주 화려하셔, 말하며 웃기도 했다. 자신의 감각이 다소 별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미는 그때 처음으로 했다. 호접란은 물을 잘 주지 않아서 말라 죽어버렸지만 호피 무늬 테이블과 재떨이는 그대로 있었다. 다음번 리모델링을 할 때까지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채, 가끔 뜬금없는 놀림을 받아내면서, 그대로 있을 것이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냥 안 맞는 거지, 나랑은. 그래도 그렇게 표를 낼 것까지야.
해미는 생각하며 앞에 앉은 손님의 머리카락을 기계에 연결했다. 타이머를 맞추고 스위치를 누르는데 입맛이 썼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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