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입주한 것은 1월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그 집에 입주할 수 있게 도와준 김현주는 그날 어떤 음악가를 취재하기 위해 제주도에 내려가 있었으므로 막상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녀의 이모이자 집주인인 ‘마마’도 밤늦게까지 외출중이어서 다음날 저녁에나 만날 수 있었다.
이사를 마치고 나니 금세 저녁이었다. 시장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오자 싸락눈이 날리고 있었다. 성북동의 밤은 등화관제를 하는 마을처럼 사방이 어둡고 드문드문 가로등 주위만 겨우 환했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가로등 밑에 웅크리고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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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의 내 인생이란 비 내리는 아침에 난데없이 유실물 처리장으로 끌려간다 해도 달리 불평이나 저항을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듯 ‘나’라는 존재를 방치한 채 무력하고 피폐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때문에 어느 날 김현주가 내게 연락을 해와 입주 얘기를 꺼냈을 때 내심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마마의 심부름으로 왔다는 것을 곧 알았지만, 나로서는 미처 두 사람의 제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사실 호의나 배려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들과 나는 그럴 만한 관계가 아니었다. 근거 없는 호의나 배려가 상대에게 얼마나 큰 짐으로 작용하는지, 또한 지속적인 긴장을 요구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김현주도 그런 내 속내를 읽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의뢰라는 말을 거듭하면서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끝내 거절할 경우 그녀는 마마에게 사실대로 보고만 하면 될 거였다. 내게 매달릴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김현주와 헤어지기 전에 나는 일주일쯤 시간을 달라고 했다. 삶의 환경을 바꾸는 일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충동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이후 며칠 동안 나는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며 많은 생각을 거듭했다. 그리고 이대로 자신을 방치한 채 소멸의 순간을 기다릴 게 아니라면, 계속 살아갈 만한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연말,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다음날이었다. 그날 나는 안국역 근처에 있는 정독도서관 앞에서 약속이 있었다. 전에 몸담고 있던 극단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선배와 오후 다섯시에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여러 번 통화를 시도한 끝에 어렵사리 받아낸 약속이었으므로, 나는 먼저 도서관 앞에 나가 그를 기다렸다. 그러나 삼십 분이 지나도록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역시 대꾸가 없었다. 그제야 그가 나를 극구 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것이, 수년 전에 이미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 굳이 만남을 청했던 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것뿐이었다. 어떻게든 재기해볼 양으로 시도한 만남이었으나, 대학 때부터 동고동락하며 붙어다녔던 그는 더 이상 내게 만날 기회조차 주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서른여섯 살의 전직 연극배우이자 극작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대에 작품이 오를 때마다 언론에 종종 언급되던, 사회성 짙은 작품을 쓰고 가끔 연출가로도 활동했던 남자. 하지만 그는 상식적인 우울과 불안에 시달려야 했으며, 오랫동안 일념을 유지하며 매달려왔던 일이 자기 한 몸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수치감과 환멸감을 느꼈다. 당시 그는 악마에 홀려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다 어떤 여배우와의 불가해하고 열광적이었던 사랑이 끝난 뒤 닥쳐온 상실감과 결핍감이 그러한 감정을 더욱 부추겼다. 온갖 주체할 수 없는 정념과 변덕스러운 충동과 집요한 탐닉이 휩쓸고 지나간 뒤, 그는 갑자기 이별을 경험했고 그로부터 맹목적인 분노와 자기파괴 충동에 시달렸다.
그러한 상태로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그는 속칭 ‘누드 연극’의 대본을 일주일 동안 꼬박 밤을 새워가며 쓴 다음,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연출까지 맡았다.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관음증이라는 떨쳐내기 힘든 생리적 욕구를 미끼로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끌어모으는 선정적인 방식을 통해 자신을 괴롭히던 왜곡된 감정을 해소하고 세상에 대한 은밀한 복수까지 감행하려 한 것이었다.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는 평소 안면이 있던 스태프와 배우들까지 동원하게 되었다. 불면증을 소재로 한 연극 〈밤샘하는 사람들〉은 짐작대로 관객을 끌어모으는 데는 성공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작가의 영혼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이 되고 말았다. 한동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가 노이즈 마케팅을 삼아 무대에서 전라 연기를 펼쳤던 여배우도 이후 재기하기 힘들 만큼 바닥으로 추락했다. 평소 연극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던 넥타이 차림의 직장인들이 연일 몰려들었으나, 반대로 공연중에 밖으로 뛰쳐나가는 여성 관객도 적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관객 모독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돼가고 있었다. 그리고 연장 공연에 돌입할 즈음 그는 연극계의 사람들이 담합이라도 한 듯 하나둘씩 등을 돌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들이 예술가로서 지니고 있는 자존감을 욕되게 한 결과였다. 언론도 극작가로서의 윤리와 자질을 문제삼으며 개탄조의 단신 기사를 내보냈다. 그렇다고 수중에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입장료 수입의 대부분은 극장 대관료로 빠져나갔고 배우와 스태프들을 챙기고 나니 남은 것은 몇 달 치 생활비에 불과했다. 그 대가로 그는 연극계에 쉽사리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후 삼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는 불규칙하게 시간제로 일하며 연명했고 와중에 영화사에서 에로물의 집필을 제의받았으나 그 일만은 마다했다. 그리하여 편의점, 주유소, 가구점, 식당, 술집, 택배 배달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일을 전전하며 근근이 버텼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그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심각한 알코올의존증 때문이었다. 어둠이 내리면 악귀처럼 찾아오는 술에 대한 유혹이 어느 날부터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됐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했다. 그렇게 공포와 다름없는 순간들이 시시각각 흘러갔다. 제 발로 찾아간 병원에서 공황 장애 판정을 받고 나서 그는 필사적으로 술을 떨쳐내려 했으나, 그럼에도 밤에는 기어이 마셔야만 잠이라도 잘 수 있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고 어두운 함정에 빠져 몸부림치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목도했다. 또한 낯선 타인처럼 변해 있는 자신을 참담한 심정으로 돌아보고 있었다. 생의 한가운데, 아직 삼십대 중반의 나이였다. 그렇다면 마지막 단 한 번만이라도 삶에 대한 구애의 포즈를 취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라고 자문하며 그는 오랫동안 함께 작업을 해왔던 극단 선배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는 현실의 ‘나’였고, 오늘 다시금 자신에게서 쓰디쓰게 버림을 받은 셈이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선배를 기다릴 것도 없었다.
사위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시장기(술)가 엄습했으나, 나는 일단 견뎌보기로 하고 정독도서관 앞을 떠나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해보았다. 이대로 연신내의 지하 단칸방으로 돌아가자니 지레 몸서리가 쳐졌다. 또 구멍가게에서 술이나 사들고 들어가 혼절할 기미를 느낄 때까지 마시다 폐허처럼 쓰러지겠지.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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