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카메라맨이다.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는가. 우리는 모델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이 찍히는가. 꽃이 피면 꽃에다 갖다 대고 노을이 고우면 이마 위로 치켜든다. 음식이 나와도 찰칵, 책을 읽다가도 찰칵. 친구와 만나면 어깨동무하고 ‘셀카’를 찍고 손거울 대신 쓰기도 한다. 일상일과 탈일상휴식을 모두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서로 주고받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진이 있다. 그런데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 카메라 앞에 서거나 자기 사진을 볼 때, 자기 약점부터 살핀다는 것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왼쪽 뺨의 점이 나오지 않게 하려고, 특히 오른쪽 윗입술이 덜 두껍게 나오게 하려고 신경을 쓴다. 점은 무심하게 대하는 편인데 입술 흉터는 매번 가리려 한다.
어디 입술뿐이랴. 곳곳에 흉터가 있다. 왼손 검지, 오른쪽 팔꿈치, 왼쪽 발등, 뒤통수…. 흉터를 볼 때마다 그때 그곳이 떠오른다. 세배 갔다가 돌아오던 그날 밤, 낫질을 처음 배우던 논둑, 큰형이 엎어버린 밥상…. 흉터는 뇌의 기억세포와 단단히 연결돼 있다. 문제는 피부에 새겨져 있지 않은 마음의 흉터다. 이른바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 이런 흉터는 ‘나’로부터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흉터의 뚜껑은 “아무도 열지 못한다.”
마음의 흉터는 없앨 수 없다. 대면하기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매번 외면한다면 우리는 어른이 될 수 없다. 흉터 안에 있는 ‘열쇠’를 찾아 기억의 뚜껑을 여는 일, 그리고 ‘그때의 나’가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주는 일, 그리하여 관계를 재발견하는 일. 이것을 나는 ‘마음의 성년식’이라고 부른다.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난다.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얼마나 자주 듣던 말인가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 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