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우리가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이다.
폭스콘 직원과 같은 노동자들에게 죽음의 활용은
우리가 살아왔음을, 사는 동안 절망만을 알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일 테다.
― 2010년 5월 27일, 한 중국 노동자의 블로그
홍콩과 인접한 중국 선전의 폭스콘 전자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2010년 1월이다. 그 후 몇 달 동안 우리는 언론에서 “자살 급행 열차suicide express”라고 명명된 보도들을 면밀하게 추적했다. 9번째 ‘폭스콘 투신자’가 자살한 5월 11일 이후 우리를 비롯한 몇몇 대학 연구진과 학생들은 더 많은 자살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폭스콘과 중국 정부, 중화전국총공회中華全國總工會가 ‘연쇄 자살’을 끊기 위해 결단력 있게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신세대 농민공農民工들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자신들의 부모처럼 농사지으러 고향에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도시에 집을 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노동의 의미 자체가 무너진다. 앞길은 막막해지고, 퇴로는 가로막힌다. 이와 같은 상황에 갇힌 노동자들은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직면하고, 심리적·정서적 문제로 확대된다. 이처럼 사회 구조적 조건이 더 심원한 수준에 도달하면, 폭스콘 노동자들의 ‘퇴로 없음’ 심리를 이해하는 데 근접하게 된다.
2010년 12월까지 폭스콘 시설에서 18명의 노동자가 자살을 시도했다. 그중 14명이 사망했고, 4명이 심각한 상해를 입고 살아남았다. 이들의 나이는 17세에서 25세까지 다양하며, 하나같이 농촌 출신 농민공으로 중국의 새로운 노동자계급을 상징하는 이들이었다.
폭스콘의 모회사 홍하이정밀공업鴻海精密工業은 1974년 2월 대만의 궈타이밍郭台銘에 의해 설립됐다. 폭스콘Foxconn이라는 상표는 폭스콘이 여우fox 같은 속도로 커넥터connector를 생산하겠다는 회사의 목표를 암시한다. 40년간 폭스콘은 소규모 가공 공장에서 진화해 중국 전역과 전 세계로 공장을 확장하고 있는 하이엔드급 전자제품 제조 분야에서 선두 주자가 됐다. 폭스콘은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에 200개 이상의 자회사와 지사를 두고 있다. 세계 전자제품 제조와 첨단기술을 주도하기 위해 분투하는 가운데, 폭스콘의 포부는 세계 경제 및 기술의 초강대국이 되려는 중국의 목표와 조우하게 된다. 폭스콘은 빈틈없는 사업 관행, 합병과 인수, 특허 취득, 중국 정부와의 기민한 관계 형성 등을 통해 놀라운 성장을 이뤘다.
이 회사는 자신의 기술적 한계를 넘어서겠다고 단언한다. “홍하이 폭스콘의 지속적인 교육과 장기적인 투자, 지역의 세계화에 대한 헌신은 선도적인 고등교육 기관들과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홍하이 폭스콘이 중화권에서 최대 수출기업이자 체코의 두 번째 수출기업이 되게끔 했다.” 중국 내에서 거의 100만 명에 가까운 노동자를 고용한 폭스콘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고용주다. 그러나 폭스콘의 진정한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그 우선순위에는 “지속적인 교육에 대한 약속, 장기적인 국민에 대한 투자”가 포함되어 있을까?
중국은 폭스콘의 글로벌 기업 제국과 그 수익성의 중심지다. 2018년 폭스콘은 중국 전체 수입과 수출의 4.1%를 차지했으며, 매출은 1,750억 달러, 5조2,000억 대만달러를 넘어섰다. 회사 측 주장은 거창하다. “폭스콘은 컴퓨터Computer, 정보통신Communication, 가전제품Consumer Electronics 등 3C 부품업계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제조기업”이라는 것이다. 폭스콘은 “클라우드 커뮤팅, 모바일 기기,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스마트 네트웍스, 로봇·자동화에 집중하면서, 핵심 산업 인터넷 기술을 중심으로 정교한 역량을 구축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실제 폭스콘은 지적재산권과 기술 개발의 원동력을 활용하여 저부가 가치 가공·제조에서 더욱 수익성 높은 사업과 서비스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다른 이들이 이와 같은 이슈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 우리는 다시 이 기업의 부흥이 100만 명의 직원에게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는 문제로 돌아온다. 이 직원들 대다수는 농민공이다.
애플, 폭스콘, 그리고 중국 노동자
폭스콘의 가장 큰 고객은 애플이다. 그러나 다른 세계적인 전자기업들도 있는데, 그중에는 알파벳구글, 아마존, 블랙베리, 시스코, 델, 후지쯔, GE, HP, IBM, 인텔, LG,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파나소닉, 필립스, 삼성, 소니, 도시바 등도 있고, 레노버와 화웨이, ZTE, 샤오미 등과 같은 중국을 선도하는 기업들도 있다. 폭스콘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 애플TV, 엑스박스, 플레이스테이션, 위Wii, 킨들, 프린터 등 무수한 디지털 기기를 조립한다. 이 회사는 주로 세계적인 전자회사와 계약을 맺고, 동시에 자체적인 브랜드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또 로봇과 인공지능이 이끄는 최첨단기술 개척자로서의 폭스콘이라는 브랜드를 중심으로 자신의 주요한 성장 영역을 모색하고 있다. 그것은 노동력과 세계 경제, 지정학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미래다.
애플과 폭스콘은 독립적인 기업이지만, 그들은 제품 개발과 엔지니어링 연구, 제조 공정, 물류, 판매 및 애프터서비스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1990년대 말까지 애플은 미국에 기반을 둔 제조공장 일자리와 연구 시설을 모두 해외로 내보냈다. 애플은 아일랜드에 있는 매킨토시 컴퓨터 공장에 소수의 임직원만 남겨두었다. 이 아웃소싱은 애플의 성공이 국제 공급업체들과 노동자들, 특히 폭스콘과 중국 노동자들의 기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의미한다.
애플의 비결은 최근 몇 년 동안 아이폰과 그 아우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애플의 공동창업자이자 수십 년간 지배적 존재였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가 주도한 다양한 전자제품의 디자인과 마케팅으로 헤게모니적 위치에 올라선 가파른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11년 8월 고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어 애플 CEO로 취임한 팀 쿡Tim Cook은 리앤더 카니Leander Kahney 기자로부터 “애플을 한 단계 끌어올린 천재”라는 찬사를 받았다. 많은 사람이 갖고 싶어 하는 글로벌 메가 브랜드 제품이라는 미국의 성공 스토리 그늘엔 제품을 생산하는 대다수 중국 노동자의 삶과 복지, 그리고 공장생활의 매개변수를 결정짓는 애플과 폭스콘의 관계가 있다.
아이폰을 위해 죽다
“아이폰을 위해 죽다”라는 말에는 이중의 의미가 있다. 전 세계 소비자가 최신 신세대 노동자들은 아이폰과 다른 첨단제품 생산에서 속도와 정밀도에 대한 회사 측의 요구를 정확히 충족시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애플의 성공은 질 좋은 제품을 빠른 속도로 생산하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있는 우세한 지위를 고려할 때, 애플은 폭스콘과 그 직원들의 조건을 설정하는 데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다. 2010년 현재 폭스콘은 애플 아이폰의 독점적인 최종 제조업체일 뿐만 아니라, 그밖의 많은 기술 대기업의 다양한 전자제품에 대한 주요한 도급업체이기도 하다.
폭스콘의 중국 내 시설들과 봉쇄된 기숙사 창문에 내걸린 자살 방지 그물은 연쇄 자살이 정점을 이룬 2010년 5월 말 이후, 청년 노동자들이 목숨을 던지도록 만든 절망과 비극에 대한 기업의 책임, 그리고 좀 더 인간적인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동자들과 그 지지자들의 집중적인 노력 등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
중국에서의 집단 조사
2010년 여름, 우리는 중국, 대만, 홍콩의 연구원들과 협력하여 선전, 상하이上海, 쿤산昆山, 항저우杭州, 난징南京, 톈진天津, 랑팡廊坊, 타이위안太原, 우한武汉 등 9개 도시에 자리한 폭스콘의 주요 제조 현장에서 잠입 연구를 수행했다. 우리의 목표는 단지 폭스콘 생산의 숨겨진 거처를 조사하는 게 아니라, 중국 정부와 세계적인 기술기업들이 초국가적 생산의 맥락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책임을 얼마나 이행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었다.
2011년 봄, 우리는 50만 명의 노동자가 밤낮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그 밖에 여러 전자제품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전시의 폭스콘 제조기지로 돌아왔다. 우리는 두 개의 떠오르는 ‘애플 도시’인 허난河南성 정저우郑州와 쓰촨四川성 청두成都를 방문하기도 했는데, 각각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조립하는 폭스콘의 새로운 거대 공장들은 오래된 공장들이 있던 해안 지역의 공장들보다 임금이 훨씬 낮았다. 자본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여러 방면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폭스콘이 지방정부의 강력한 지원으로 성들을 가로질러 빠르게 확장하고 있으며, 중국에만 40곳 이상의 산업단지에서 24시간 고속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했음을 확인했다.
2013년 12월, 폭스콘 창업자이자 CEO 궈타이밍과 애플 CEO 팀 쿡에게 우리 연구가 밝혀낸 상태를 설명하고, 폭스콘 노동자들의 삶의 질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아울러 폭스콘 글로벌 사회환경책임위원회, 애플 공급사 책임프로그램, 공정노동위원회FLA, 애플은 2012년 1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이 기관의 회원이었다에 연락을 취했다. 우리의 목적은 저임금과 적은 혜택, 강제적인 초과근무와 기초적인 건강 및 안전 예방 조치의 결여, 10대 인턴 노동자 착취, 고용계약과 노동법에 보장된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경영진의 압박 등 우리 연구가 밝혀낸 문제들에 대한 기업의 시각을 묻는 것이었다. 애플과 폭스콘은 파업, 화재, 폭발 사고, 노동자 자살 문제에서 대중을 상대로 한 기업 홍보에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 기업들을 노동 분야에서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논의의 장에 참여시키려 노력했으나, 자기 합리화와 진부한 변명만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이와 반대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시도에 훨씬 더 잘 반응했다. 2019년 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될 때에도 계속된 다년간의 현장 연구를 폭스콘 노동자, 인턴, (인턴십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는) 교사, 관리자, 그리고 정부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현장조사와 광범위한 문서 연구로 보완했다. 이 책은 중국 노동자와 10대 인턴 학생들의 희망, 꿈, 생존을 위한 투쟁을 그들이 직접 그린 초상화인 인터뷰, 시, 노래, 공개서한, 사진, 동영상 등을 통해 보여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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