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낯선 땅에서 일하다
죽게 될까 무섭습니다”
이주노동자 속헹 씨의 죽음
2016년 4월, 스물일곱 살의 캄보디아 여성 속헹 씨가 한국에 도착했다. 그는 한국에서 취업 활동을 할 수 있는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았다. 3년간 체류한 후에 재고용되어 1년 10개월의 비자 연장을 받으면 최대 4년 10개월까지 한국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속헹 씨는 경기도 포천의 채소 농장에서 4년 넘게 일했다. 2021년 2월이면 연장한 비자가 만료되어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속헹 씨는 2021년 1월 10일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출국을 3주 앞둔 2020년 12월 20일, 속헹 씨는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의 나이 서른한 살이었다. 숨지기 전날 포천 지역은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져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 속헹 씨가 살던 집은 비닐하우스 안에 얇은 샌드위치패널로 만든 가설건축물이었는데, 며칠 전기가 끊겨 난방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속헹 씨의 사인은 간경화로 인한 합병증이었다. 전문가들은 한랭 질환이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지만 속헹 씨가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은 곳에서 지내면서 건강이 악화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느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처럼 속헹 씨는 한국에서 일을 하기 위해 캄보디아에서 돈을 주고 한국어를 배웠을 것이다. 빨리 취업하기 위해, 노동 환경이 더 낫기는 하지만 여성 인력을 적게 뽑는 제조업보다는, 노동 환경은 더 열악하나 상대적으로 여성을 많이 뽑는 농업을 택했을 것이다. 자격 요건인 한국어능력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한국 사업주의 선택을 받아 근로계약이 체결되기를 기다렸을 것이고, 마침내 그를 고용하겠다는 사업주에게 연락을 받았을 것이다. 만약 2년 안에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면 속헹 씨는 한국어능력시험을 다시 보고 다시 사업주의 연락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근로계약서를 쓰게 된 속헹 씨는 건강검진 결과 문제가 없자 고향의 가족과 친구들을 뒤로 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것이다.
속헹 씨는 그해 고용허가제를 통해 16개국에서 온 5만 8천 명의 이주노동자 중 한 명이었다.
컨테이너에 살거나
비닐하우스에 살거나
나는 2018년부터 경기도, 충청도, 경상남도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 특히 농업 이주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왔다. 보통 내가 그들의 기숙사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기숙사는 거의 대부분 마을과 떨어져 그들이 일하는 농지 바로 옆에 지어진 가설건축물이었다. 그 형태는 비닐하우스 안에 옅은 노란색의 샌드위치패널로 만든 것이거나 컨테이너인 경우가 많았다.
2020년 7월 어느 여름 날, 캄보디아 여성 다섯 명이 함께 사는 집에서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컨테이너 두 개가 붙어 있는 열 평 남짓한 공간에 방, 부엌, 샤워실이 하나씩 있었다.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았고 환기도 전혀 되지 않았다. 집 안 곳곳에 온갖 벌레가 우글거렸다. 다양한 크기의 바퀴벌레가 여러 군데서 몰려들었고, 한 사람이 건성으로 잡은 파리가 금방 바닥에 쌓일 정도였다. 부엌은 각종 곰팡이가 마치 작은 생태계를 이루는 것 같았다. 관리를 안 해서가 아니라 환경이 그랬다. 그 공간에서 세 명은 방에서 자고 나머지 두 명은 방이 좁아 부엌 앞 공간에서 잔다고 했다.
2018년, 캄보디아 남성 이주노동자 12명이 함께 살던 충북 증평의 비닐하우스 기숙사에 화재가 발생했다. 모두 근처 버섯 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었는데, 다행히 죽거나 심하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가까스로 몸만 빠져나와 현금, 신분증, 여권, 휴대폰 등 귀중품을 모두 화재로 잃었다. 2019년 12월에는 기숙사 부엌에서 가스가 폭발해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한 캄보디아 노동자는 예전에 기숙사에서 불이 나 창문으로 가까스로 도망쳤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사업주에게 자기 방에 창문을 꼭 만들어 달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샌드위치패널로 만든 기숙사에는 창문이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편하게 쉬어야 할 집이라는 곳이 누군가에게는 잠을 자다가 죽을 수도 있는 공포의 공간이었다.
이재민이 된
노동자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그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된다. 2020년 여름의 비 피해가 그랬다. 한 기사에 따르면 2020년 8월 2일 집중호우로 인해 경기도 이천시 율면 산양저수지가 붕괴되면서 1백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이재민대피소 수용 인원 중 80퍼센트 이상이 이주노동자였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56조에 의하면 자연재해가 우려되는 장소에 사업주가 기숙사를 제공하면 안 된다. 이에 따라 2019년 7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외국인 기숙사 시설표’에는, “소음이나 진동이 심한 장소, 산사태나 눈사태 등 자연재해의 우려, 습기가 많거나 침수의 위험, 오물이나 폐기물로 인한 오염 우려가 현저한 장소”를 피해 기숙사를 설치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법은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농업 이주 노동자의 기숙사는 대부분 농지 위 비닐하우스 안에 있다. 자연재해를 막아줄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 폭우로 논밭이 잠기면 바로 옆에 있는 그들의 집도 피해를 입었다.
2020년 8월 11일, MBC 기자와 경기도 안성 이재민대피소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한국에 온 지 이제 3개월밖에 안 된 캄보디아 남성 이주노동자 다뷧가명, 20대 씨를 만났다. 그의 집은 농지 위 검은 차광막이 쳐진 비닐하우스 안에 샌드위치패널로 만든 것이었고, 물에 잠겼다고 했다. 급히 챙겨 온 그의 짐이 대피소용 칸막이 텐트 안 한편에 놓여 있었다. 그는 힘없이 앉아 있었다.
다뷧 씨는 폭우가 쏟아진 날 직접 찍은 동영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동영상에는 그날의 다급했던 상황이 담겨 있었다. 동영상 속 그는 소리치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채소가 다 물에 잠겼어. 물이 깊어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다뷧 씨는 재난 문자를 받지 못했고,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고 했다. 일단 몸만 빠져 나와 근처 사는 친구 집으로 대피했고, 물이 다 빠지고 나서야 물에 젖은 옷가지, 외국인등록증, 여권을 챙겨 나왔다고 설명했다.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MBC 기자가 그날 상황을 설명해달라는 말에 다뷧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가 왔을 때 저는 방 안에 있었고 그때는 비가 오는지 몰랐어요. 제가 밖으로 나갔을 때 비가 많이 오고 있었습니다. 농장 비닐하우스와 기숙사 집 안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어요. 물이 차오르자 정말 무서웠어요.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어요. 높은 곳에 사는 친구 집으로 일단 가서 거기에서 이틀 머물렀습니다. 비가 멈추자 내 집에 가서 물건을 가지고 나왔고 지금 이 대피 시설로 왔습니다. 물에 다 잠겨서 마음이 아프고 무섭습니다. (기자: 비가 많이 오는데 문자 받은 건 없었어요?) 없어요. 아무런 문자도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기자: 여기 대피소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 일을 하잖아요. 걱정되는 게 있나요?) 네. 저도 일을 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없습니다. (기자: 캄보디아에서 이런 홍수 겪어본 적 있어요?) 없습니다.”
낮에는 대피소가 텅 비어 있었다. 물난리를 겪고도 많은 이주노동자가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기 때문이었다. 농번기라 농가에서는 일손이 필요했고 이주노동자들도 며칠 쉬면 손해가 크기에 아르바이트라도 하려 했다.
이재민대피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다뷧 씨의 비닐하우스 집이 있었다. 비닐하우스 밖에는 가정용 20킬로그램짜리 회색 LPG 가스통이 있었고, 그 옆에는 햇볕에 말리느라 널어놓은 노란색 장판이 있었다. 집 안에 들어서자 얇은 패널에 검은색 곰팡이가 가득 핀 부엌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여기서 사람이 다시 살 수 있을까?’ 둘러보며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홍수 피해를 입은 지 세 달 후에 다뷧 씨를 다시 찾아갔는데 다행히 그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