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생산권 논의가 활발하다. ‘가임 여성’만으로 대상으로 하는 ‘출산력’ 지도가 뭇매를 맞았고, 임신 중절을 범죄화하는 ‘낙태죄’ 폐지와 안전한 임신 중절 시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시점에서 ‘재생산할’ 권리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옥스퍼드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인 머브 엠리는 ‘생물학적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싶어 하는 욕구’에 대해 페미니즘이 더 포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정자 및 난자 공여, 난모세포 동결 보존소위 ‘난자 냉동’, 체외수정, 세포질 내 정자 주입술 등의 의학 기술이 시스젠더 이성애자 커플의 임신, 출산뿐 아니라 그간 재생산 논의에서 거의 배제되어왔던 주체들을 드러낸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책 소개’에서)
편집자 서문
재생산 노동reproductive labor이라는 짐을 짊어져야 하는 여성들이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급진적 페미니스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기술이 그에 대한 유망한 답을 제시할 수 있다고 했다. 인공 자궁이 젠더 위계gender hierarchies의 세계에서 벗어날 방법을 제공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난자 동결, 대리모 같은 보조재생산기술의 확산은 우리가 진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지 모른다.
그러나 『보스턴 리뷰』의 객원 편집자이자 주요 필자인 머브 엠리는 그렇게 확신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람의 몸은 정치적으로 통제하기 힘든 곳”이라고 말한다. 기술 유토피아는 매력 있지만 인간의 삶을 납작하게 만든다. 엠리는 개별 사례를 바탕으로 기술이 어떻게 실제 재생산과 돌봄 노동의 경험을 형성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시간과 돈, 친족관계, 의료 서비스 접근에 대한 불평등을 모호하게 하고 때로는 악화하는지 살펴본다. 그 이야기들은 서로 다르고, 개인적이며, 장소와 사람에 특정적이다. 과연 이 이야기들에서 평등주의적이고 최대한 포용적인 페미니즘이 등장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엠리의 글에 답한 학자들도 기술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생각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기술적 해결책은 임신을 상업적 거래로, 몸을 상품으로 바꾸고 유전적 완전성에 집착하게 하며 인종적 배제와 국가 폭력의 역사를 반복하게 한다. 아니면 그야말로 효과가 없다. 그럼에도 이 비평들은 대안적 비전을 풍부하게 제시한다. 여기에는 아이를 낳고 그 부담을 공평하게 배분할 수 있는 선택적 친족관계elective kinship와 사회구조를 모형화하고 이론화하는 데 대한 흑인 여성과 동성애자 공동체의 기여도 포함된다.
2,000명 이상의 아이들이 부모와 강제로 떨어져 있는 우리의 현실은 이 희망적인 전망과 고통스러울 정도로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유토피아적 상상은 아마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가장 클 때 중요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한 다른 기고자들 역시 기술, 일, 페미니즘이 교차하는 지점을 짚어준다. 제임스 채펠은 페미니즘이 왜 나이 든 여성에게는 좀처럼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지 묻는다. 재생산 노동을 마친 나이 든 여성은 굉장히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경제적 취약 계층에 머문다. 새라 샤르마는 여성을 더 이상 쓸모없는 기술로 취급해 비하하는 ‘마미 앱’mommy app과 실리콘밸리를 살펴본다. 그녀는 젠더 위계 없이 어떻게 기술을 재구상할 수 있을지 묻는다. 또 캐시 오닐이 쓴 공상적 글은 섹스로봇이 있는 미래를 슬쩍 엿보게 해준다.
마지막 두 기고자는 미래지향적으로 과거를 돌아본다. 질 리처즈는 1970년대 뉴욕의 가사노동 임금위원회 회원이었던 전설적인 활동가 실비아 패데리치를 인터뷰해 여성 해방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또 마이클 브론스키는 동성애자인 남성과 여성이 함께 아이를 기르는 사회를 주창한 ‘동성애자 해방 운동’의 시각을 돌아본다. 이들은 과거와 소외된 사람들을 토대로, 더 관대하고 품위 있으며 인간적이고, 선택적 친족관계와 아이는 공동의 책임이라는 신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상상했다.
― 데버라 채스맨, 조슈아 코헨
재생산에 관하여
― 머브 엠리
뉴욕의 여러 신문에 따르면 최초의 인공 자궁은 ‘발명’된 것이 아니라, 1894년 2월 24일 밤 이스트 26번가의 어느 괴상한 작은 상점에서 ‘발견’되었다. 그날 밤, 한 의사가 이 상점의 주인이자 은둔 과학자였던 윌리엄 로빈슨의 잠을 깨웠다. 의사는 광고업계의 백만장자 E. 클래런스 헤이트의 개인 주치의였다. 헤이트의 아내는 출산 중에 숨졌고, 딸은 0.9킬로그램도 안 되는 체중으로 태어났다. 주치의는 아기를 구하려는 절박한 심정으로 로빈슨을 찾아가 아기의 몸을 따뜻하게 유지해줄 무언가를 달라고 간청했다. 로빈슨은 서둘러 상점 뒤쪽으로 가더니 자신이 “인공 자궁”이라고 부르는 물건을 들고 나왔다. 뚜껑이 미닫이로 되어 있고 보온 기능을 갖춘 이 검은 상자는 얼마 뒤 1896년 베를린 산업박람회에 선보이게 될 영아 인큐베이터의 조야한 버전이었다. 3월 16일 자 『데일리 뉴스』는 “갓난아기는 인공 자궁 안에서 거의 3주를 지냈다. 앞으로 약 3주 더 생존하면 정상적인 삶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보도했다.
재생산 기술이 진보할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인공 자궁은 인류의 미래상을 그린 소설에, 그다음에는 과학 연구에, 이후 페미니스트의 이론에 힘을 보탰다. 20세기가 되면서 처음 몇 십 년 동안 인공 자궁은 수백 개의 저속한 신문 기사와 디스토피아 소설에 등장했다. 체외 발생ectogenesis, 자궁 외에서의 배아 발생으로 인간의 대량 생산이 가능한 세계를 그린 소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도 그중 하나다. 1962년, 뉴욕주 의학회는 인공 자궁의 설계를 시작했다. 의사들은 이 인공 자궁을, 생명 유지 장치와 연결되어 인간 모체와 같은 “역할을 할” “화학유체가 가득 찬 어항”으로 상상했다. 결국 이들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1962년 스웨덴의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의사들이 “죽은 채 태어난 아기들”, 그리고 좀 더 끔찍하게는 “어머니로부터 합법적으로 유산된 아기들”을 “되살리는” 인공 자궁을 발표하면서 성공 가능성을 알렸다. 같은 해, 임산부 셰리 핑크빈당시 미국의 유명한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 ― 옮긴이은 배 속의 아이가 심각한 기형을 안고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핑크빈이 인공 임신 중절을 요청하면서 세상이 떠들썩해졌지만 고향인 애리조나주 정부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결국 그녀는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 위해 스웨덴인공 자궁을 발표한 그 병원으로 날아갔다. 이로써 제한적인 낙태법에 대한 분노가 커지는 가운데, 여성의 동의 없이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인공 자궁의 전망은 점차 반反이상적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인공 자궁에 관한 연구는 1960년대 중반까지 삐걱거리다 한동안 사라졌다.
1970년이 되어서야 급진적 페미니스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인공수정, 시험관 수정, 인공 태반, 단성 생식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Dialectic Sex]에서 이를 ‘처녀 출산’[Virgin birth]이라고 불렀다이 여성을 재생산으로부터 해방시켜줄 미래를 상상했다. 그녀는 인공 자궁과 그 외의 재생산 기술이 이성애 위주의 가부장적 성 역할을 해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기술들을 이용하면 임신이라는 힘들고 단조로운 일 – 입덧과 극심한 피로, 진통과 분만, 산후 회복과 산후 우울증, 수유와 24시간 계속되는 육아 – 이 아이를 낳고 돌보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의 선택 사항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파이어스톤이 판단했듯이 재생산 기술에 대한 연구가 여성의 이익은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수행된다는 점이었다. 예컨대 인공 자궁은 단지 임신에 딸려 오는 일들을 원하지 않는 여성의 고생을 덜어주는 장치가 아니라, 조산아의 생명을 구하는 장치로 정당화되었다. 파이어스톤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거나 인공적인 방법으로 낳겠다는 결정이 기존의 출산처럼 합법화될 때까지 여성은 여성의 역할을 강요당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경고했다.
새로운 재생산 기술에 대한 파이어스톤의 열정은 많은 급진적 동료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불신과 조롱, 격분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기술이 유토피아를 불러올 것이라고 믿는 그녀의 천진난만함을 비판했고, 또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기술의 인간성 말살에 대립해 ‘자연적 방식’을 더욱 강하게 주장했다. 『성의 변증법』에서 파이어스톤은 이 ‘자연적’이라는 것이 “반동적이고 히피-루소적인 ‘자연으로 돌아가자’ 주의”의 일부로서, 불편과 위험을 여성이 본질적으로 겪어야 하는 경험으로 바꿔버릴 뿐 아니라 단지 개인적 차원의 권한 증대와 정치적 해방의 수단으로나 이용할 수 있는 위험한 이념이라고 일축했다. 그녀는 질에서 아기를 밀어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에 관한 간결하고 재미있는,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꽤 정확한 사고 실험으로 ‘자연적인 것’의 교묘한 의도를 조롱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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