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벌써 20여 년이 흘렀다. 1992년 9월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를 처음 번역해서 세상에 내놓았을 때, 나는 20대 후반의 야심만만하고 활기 넘치는 청년이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조직 활동과 집필이 생활의 전부였다. 낮에는 협동조합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조합원들을 교육하러 다녔고, 밤에는 새벽까지 글을 쓰는 바쁜 나날이었다. 나는 매일매일 협동조합주의자가 되어갔다.
협동조합주의자가 되기 전, 그러니까 이 책을 만나기 전 1984년부터 90년까지 나는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며 실천하고 있었다. 노동야학과 위장취업, 노조 조직화와 사상투쟁으로 점철되었던 7년 내내 눈빛은 살기를 띠었고 체지방률은 제로에 수렴했다. 그즈음 내 또래의 선배, 후배, 친구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사실 앞으로 닥칠 전국적인 봉기에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중봉기가 먼저 일어난 곳은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과 동유럽의 ‘동지국’들이었다. 마오의 나라 중국 또한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북한의 경제난은 심화되었다.
소련의 붕괴는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 아니, 황당하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마음속 깊이 사모하고 있었다. 남자는 매일 그 여자를 생각하며 연애편지를 썼다. 하지만 소중한 이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조차 죄스러워 매일 새로 쓴 편지를 품에 안고 잠들었다. 7년쯤 지나, 남자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꿈에도 그리던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실은, 난 여자 옷을 입고 다닌 남자다.” 남자가 느꼈을 기막힘이 그때의 황당함과 비교될 수 있을까?
1990년 말 공장 활동을 접고 몇 개월간 앓아누웠다. 몸과 마음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명상과 절, 독서와 등산으로 소일하며 짧지 않았던 20대를 되돌아보고 있었다. 그즈음 이남곡 선배로부터 몬드라곤 협동조합 이야기를 처음 듣고, 그와 관련된 책을 10여 권 얻었다. 세 권은 영어책이었고 나머지는 일어책이었는데,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 한 권 있었다. 윌리엄 화이트와 캐서린 화이트 부부가 쓴 Making Mondragon이라는 책으로, 바로 『몬드라곤에서 배우자』의 원서이다. 번역은 약 1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 사이 건강은 회복되었고 눈빛도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1992년, 나는 ‘자본주의의 부정의와 사회주의의 비효율을 넘어선 정의와 효율의 통일’이라고 책의 부제를 붙였다(복간본은 시대 변화를 감안해 ‘해고 없는 기업이 만든 세상’으로 부제를 바꾸었다).
책이 출간되고 일곱 해쯤 지나 미국 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한 뛰어난 사회학자 윌리엄 화이트 교수가 별세하셨다. 몬드라곤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계속 변화하고 있었다. 내겐 큰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10년에 한 번은 이 책을 개정해야 하는데, 누가 하지?’ 아니나 다를까, 2000년쯤부터 협동조합 종사자들이나 연구자들은 이 책의 후속판을 내야 한다고 나를 압박해왔다. 하지만 윌리엄 화이트 교수가 작고하신 마당에 그 일은 감히 진행하기 힘든 작업이었다. 시간도 없었지만 내 실력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책이 출간되고 20여 년이 흘렀지만 나는 실천적인 면에서나 학문적인 면에서나 아직 한참 미숙성한 상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현장운동에서는 성공보다 실패를 훨씬 더 많이 겪었고, 총기는 더욱 희미해지고 독서량은 줄었으며, 글쓰기는 더욱 낯설어졌다. 더욱이 2002년부터는 협동조합 현장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협동조합주의자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최근 들어 나는 이 일을 더 미루기 힘들다는 판단을 하고 ‘무모한 용기’를 내게 되었다.
1992년 당시 나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었다. 몬드라곤을 통해 뭔가 다른 희망을 찾도록 돕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몬드라곤은 그때와 달리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아니면 제3의 무엇이냐 하는 거대 담론의 측면보다는 우리에게 좀 더 구체적이고 생활에 밀착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데 영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일자리 문제, 고용 문제이다. 더 나아가 몬드라곤의 경험은 우리에게 기존 ‘성장 패러다임’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고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찾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국민은 바야흐로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보편적 복지국가에 맞는 성장 패러다임을 새로이 마련하는 일이다. 『몬드라곤의 기적』 5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겠지만, 우리가 선택해야 할 성장은 ‘행복한 고용, 질 좋은 고용을 위한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몬드라곤은 기업 차원에서 이런 성장 전략을 가장 명료하게 실천하고 있는 사례다. 나는 주로 이 문제에 집중하면서 『몬드라곤의 기적』을 구상했고, 부족한 실력으로나마 한 글자 한 글자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독수리 타법에 의존해―나는 아직도 컴퓨터 한글 자판을 다 익히지 못했다―‘무모한 글쓰기’를 감행했다.
역사비평사의 처음 제안은, 옛날에 나왔다가 절판된 『몬드라곤에서 배우자』의 번역을 다듬고 그 안의 「역자 보론: 진보운동의 새로운 방식과 한국 사회의 미래」 비중을 크게 늘려(보론이 아닌 본문의 한 꼭지로 구성) 변화된 상황과 발전된 논의를 반영한 새로운 책을 한 권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제안에 응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는 윌리엄 화이트 교수의 마지막 저서이고 그 자체로 너무나 완벽한 연구보고서인 데다, 감히 나 따위가 손댈 수 없는 역작이기 때문이다. 나는 수정 제안을 했다. 기존의 책을 용어나 어법만 현실에 맞게 약간 손봐서 복간하고, 1992년 이후 20여 년간 진행된 몬드라곤의 경험과 그것이 한국에서 가지는 의미 등을 새로 정리하여 다른 한 권으로 내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한 권은 번역서(『몬드라곤에서 배우자』), 또 한 권은 집필서(『몬드라곤의 기적』)라는 독특한 2부작의 조합이 만들어졌다. 내 제안을 기꺼이 받아준 역사비평사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그리고 돌아가신 윌리엄 화이트 교수께는 나의 무례함에 대해 마음속 깊이 사죄드린다.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를 다시 읽으면서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큰 감동을 받았다. 1940년대 초부터 시작된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의 헌신적인 노력과 초기 설립자들의 희생과 열정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그들이 눈앞에 닥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온 긴 과정에서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의 원칙, 즉 자본 주도가 아닌 노동 주도의 기업 운영 원칙을 견지하기 위해 지새웠을 불면의 밤들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점점 거칠어지는 시장 환경 속에서 원칙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시장의 승자가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원칙도 지켜야 했던 이중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20년 전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를 이미 읽어본 독자들은 이번에 다시 한번 3부와 4부를 다시 한 번 정독해주길 바란다. 만약 몬드라곤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몬드라곤의 기적』 1부와 2부를 먼저 읽은 뒤에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혹은 2011년 3월에 방영된
『몬드라곤의 기적』 1~3부에서는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현황과 조직구조, 최근 20여 년간의 진화 과정, 그리고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원칙을 살펴보았다. 이 부분은 주로 몬드라곤 그룹이 공식 발표한 자료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발표된 연구논문들을 참고했다. 특히 1998년부터 매년 공개된 「애뉴얼 리포트」와 홈페이지에 밝힌 그들의 공식 입장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원칙 부분에서는 국제협동조합연맹이 발표한 몇몇 보고서들도 참고했다.
『몬드라곤의 기적』 4부에서는 몬드라곤의 미래에 대한 내 견해를 피력했다. 특히 4부 11장에서는 몬드라곤과 현대자동차를 비교하면서 몬드라곤을 우리 옆으로 가까이 당겨놓으려 시도했다. 기업지배구조와 고용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노동운동가들에게 참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4부 12장에서는 몬드라곤의 미래를 염려하며 몬드라곤 사람들에게 두 가지 제안을 했다.
『몬드라곤의 기적』 5부와 6부야말로 내가 무모한 글쓰기를 결심하게 된 계기였음을 밝힌다. 5부에서는 몬드라곤의 경험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성장 패러다임을 시사하는지 살펴보았다. 기업 활동의 최종 목표는 수익 확대인가, 아니면 고용 확대인가? ‘자본의 도구적 종속적 성격’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런 문제들을 살피면서 성장 패러다임의 전면적인 전환을 강조했다.
6부에서는 한국에서 1990년대 이후 겪은 경험과 현황을 간략하게 짚어보고 독자들께 한 가지 제안을 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했다. 이 제안은 내가 협동조합주의자로서 남은 인생을 바치고자 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변화, 그리고 고용 문제 해결과 관련되어 있는 동시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쓰면서 마음에 품었던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나의 진화론적 관점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기업지배구조는 기업의 오랜 역사 동안 진화해왔고, 앞으로도 진화할 것이다. 나는 협동조합주의자이지만 협동조합 형태가 전 사회에 단 하나의 기업지배구조로 자리 잡는 일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협동조합은 기업지배구조의 여러 형태 중 하나이고, 그 자체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기업과 관련된 당사자들, 즉 경영자, 노동자, 소비자, 우리 모두의 의지이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기업지배구조 진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형태가 주목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선호 또한 바뀔 것이다. 진화의 종착점 같은 건 없다. 단지 자본수익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대주주 중심의 기업지배구조와 공기업 형태의 기업지배구조에 더해, 협동조합 형태의 기업지배구조가 선택지의 하나로 자리 매김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럴 경우 진화는 한층 역동적인 과정이 될 것이고, 협동조합 인자가 진화의 우성인자인지 열성인자인지에 대한 판단은 지금보다 훨씬 공정해질 것이다.
단 한 번도 원고를 채근하지 않고 내게 편안한 집필 기회를 준 역사비평사 식구들께 감사드린다. 자료 찾기와 영어 번역을 도와준 친구 김소강, 후배 박노근 광운대 교수, 한국의 다양한 자료들과 프랑스어 자료를 찾아준 김신양, 장종익 씨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2011년 10월, 김성오
|1부|
몬드라곤의 현황과 조직구조
몬드라곤이란 무엇인가
몬드라곤은 스페인 바스크 지역에 위치한 도시 자체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1940년대부터 주임신부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의 주도로 시작된 노동자생산협동조합운동을 일컫기도 한다. 몬드라곤은 1956년 가스난로와 가스취사도구를 만들었던 첫 번째 협동조합 ‘울고’가 설립된 이후 1960~1980년대를 거치면서 거대한 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2010년 현재 몬드라곤은 약 260개 회사가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 등 4개 부문을 포괄하는 하나의 기업 집단으로 조직되어 있다. 한국으로 따지면 일종의 재벌 기업이라 할 수 있는데, 단지 그 주인이 특정 가문이 아니라 회사에서 직접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몬드라곤은 노동자들이 회사를 소유하고 경영자를 선임하며 경영 전체를 관리·감독하는 체제이다.
기업의 전체 자산은 우리 돈으로 환산할 때 약 53조 원, 제조업과 유통업 부문의 2010년 한 해 매출은 대략 22조 원 정도 규모이다. 약 8만 4,000명의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3만 5,000여 명이 출자금을 낸 노동자 조합원, 즉 주주들이고 나머지는 점차 조합원으로 전환되고 있는 비조합원 노동자들이다. 해외에 80여 개에 가까운 생산공장을 갖추고 있으며, 제조업 매출의 약 60%는 수출을 통해 올린 해외 매출이다. 제조업에서 핵심 사업은 가정용품의 생산·판매로, ‘파고르’라는 브랜드가 널리 알려져 있다.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과 남아메리카,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파고르 브랜드의 냉장고나 세탁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은 삼성이나 엘지 등 워낙 세계적인 가전 브랜드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진출하지 못했다.
몬드라곤에 소속된 유통 부문의 핵심 기업 ‘에로스키’는 소비자협동조합이며, 스페인과 프랑스에 약 2,100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홈플러스나 이마트 정도의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금융 부문의 핵심 기업인 ‘노동인민금고’는 스페인에서 5위권 안에 드는 대형 은행으로, 전국에 420여 개의 지점을 갖고 있다. 이 밖에도 몬드라곤에는 공학부·경영학부·인문학부를 포괄하는 몬드라곤대학교가 있고, 바스크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기술연구소들이 소속되어 있다.
이 모든 일을 지난 55년 동안 평범한 노동자 조합원들이 이뤄냈다. 이 책의 전사前史격인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는 1940년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 몬드라곤의 초기 형성 과정과 정착 과정을, 이 책은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변화를 다룬다.
01
1992년 이후의 주요한 변화
협동조합의 통합 : 민주와 집중, 분산과 효율의 문제
1941~1990년까지 몬드라곤의 역사를 다룬 『몬드라곤에서 배우자』
이 책의 전사前史격인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는 미국에서 1988년에 초판, 1991년에 증보·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그 책에서 화이트 부부(Whyte William Foote & Whyte Kathleen King)는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가 몬드라곤에 도착한 1941년부터 시작하여 1956년 첫 번째 협동조합 울고의 탄생, 노동인민금고와 사회보장협동조합 라군-아로의 설립, 그리고 기술연구소와 학교 설립까지 다루고, 이후 1980년대 전반의 극심한 불황기에 몬드라곤이 그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갔는지에 대해 썼다. 화이트 부부가 처음 집필할 당시의 다소 불명료했던 몬드라곤 전체의 변화에 대해서는 개정판에서 보강했다. 하지만 그 책의 개정판이 출간되는 시점부터 몬드라곤의 변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몬드라곤의 통합 작업
변화는 몬드라곤 협동조합을 명명하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 명칭이 바로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Mondragn Corperacin Cooperativa, 약칭 MCC)’이다.
1980년대까지 몬드라곤은 120여 개가 넘는 개별 협동조합들의 느슨한 연합체였는데, 노동인민금고와 ‘연합협정’―이 협정은 일정한 구속력을 갖고 있었다―을 맺은 여러 제조업협동조합들이 활동했다. 연합협정에는 개별 협동조합이 지켜야 할 협동조합의 원칙이 명시되어 있었고, 노동인민금고는 이를 지키지 않으면 거래를 끊는 방식으로 이들을 하나로 묶어두고 있었다. 제조업협동조합 외에 이를 지원하는 사회보장협동조합 라군-아로, 기술연구소, 기술학교 등 지원적 성격의 협동조합, 그리고 에로스키 소비자협동조합이 있었다.
라군-아로는 몬드라곤 노동자 조합원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사회보장 시스템으로, 협동조합의 노동자 조합원들이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아니라는 이유로 스페인의 국가적 사회보장 시스템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자 스스로 만든 조합이다. 라군-아로는 의료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의 기능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제조업협동조합과 노동인민금고, 사회보장협동조합과 소비자협동조합, 그리고 기타 지원 협동조합 전체를 하나로 묶어서 부르는 이름은 없었다. 이들이 하나의 통합된 조직으로 편제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1986년 들어 이들 전체를 묶는 ‘협동조합 의회(MONDRAGON Congress)’라는 대의기구가 출범했다. 그 산하에는 상임위원회(Standing Comitee)와 총이사회(General Council)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통합 명칭을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라고 붙였는데, 이 명칭은 1991년부터 2006년까지 15년 동안 통용되었다. 1991년이 되어서야 이들은 비로소 이름을 갖고 하나의 통합된 조직으로 묶이게 된 것이다.
이름은 2006년 몬드라곤의 첫 번째 협동조합 울고 설립 50주년을 맞이했을 때 다시 한 차례 바뀐다. 현재 이들이 사용하는 통합 명칭은 그냥 ‘몬드라곤(MONDRAGON)’이다. 이 이름을 채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세월이 흘러 2세대 조합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몬드라곤의 노동자 조합원들에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환기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작용했고, 또 다른 하나는 몬드라곤 바깥의 많은 사람이 그저 몬드라곤이라고 부르는 데 더 익숙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1991년 이후 몬드라곤은 통합 명칭과 통합 조직을 갖추는 데서 더 나아가 소속 협동조합들을 몇 개의 그룹으로 통합했다. 노동인민금고와 라군-아로를 중심으로 한 금융 그룹, 파고르 전자를 중심으로 하는 제조업 그룹, 에로스키 소비자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유통 그룹, 그리고 기술연구소와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한 연구·교육 그룹 등 4개의 그룹이다. 제조업 그룹은 업종별로 7개(2003년부터는 8개) 소그룹으로 편재되었다. 이 조직체계는 2006년 이름이 바뀌는 것과 함께 다시 한번 변화되었다. 즉 4개의 그룹은 금융 부문, 제조업 부문, 유통 부문, 지식 부문으로 명칭이 재편되었다. 제조업 부문은 기존 8개 소그룹에서 12개 소부문으로 세분화되었다.
몬드라곤이 통합 경영체계를 갖춘 것은 1986년에서 1992년까지 진행된 유럽의 경제통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세계화의 과속 진전에 대응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몬드라곤은 1990년에도 제조업 부문 생산량의 30%가량을 해외에 판매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스페인 내수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70%였다. 유럽 시장이 통합되면서 관세장벽이 철폐됨에 따라 스페인 내수 시장에서 유럽의 초국적 기업들과 관세 프리미엄이 없는 진검승부를 펼쳐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몬드라곤 사람들은 기업 내부 혹은 협동조합 간 연대에서 ‘효율과 집중’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1990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통합 작업을 위한 토론은 1년이 채 걸리지 않아 1991년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MCC)’의 형성으로 결론이 났다. 짧은 기간이지만 몬드라곤 사람들은 이 같은 변화의 방향에 대체로 동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1990년 파고르의 이사장 헤수스 헤라스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유럽 통합과 개척자들(협동조합 설립자들)의 은퇴라는 결정적인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것은 경제적 위기 국면과도 겹치고 있다. (…)
새로운 틀 내에서, 사회적 관계들과 함께 우리를 결합시키는 것은 바로 제품일 것이다.
파고르 협동조합의 경영자 중 한 사람은 몬드라곤의 통합을 가능케 한 추동력이 ‘성숙한 조직에서의 예측 가능한 발전 단계’라고 썼다.
협동조합들은 협동조합으로서 효과적으로 일할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할 의지 부족에 직면했다. 노동자 참여에 의한 전통적 방식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젊은 세대는 다른 곳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하려고 한다. 개인주의가 더 성행하고,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줄고 있으며, 더 많은 보수만 원하고 있다. 그들은 더 크고 더 능력 있게 보이도록 이미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우리가 이런 능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더 커져야 할지 알 수 없다.
통합은 몬드라곤에 몇 가지 중요한 이점을 제공했다. 일단 몬드라곤의 모든 협동조합과 기업이 통일된 상표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통일된 상표는 몬드라곤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시켰고 인적자원과 기술자원을 비롯하여 모든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개별 협동조합들은 일정한 독립성과 함께 통합의 이점도 공유했다.
민주와 집중, 분산과 효율이라는 오래된 논쟁, 그 속의 몬드라곤
그러나 이러한 통합 경영체계를 만든 몬드라곤은 협동조합을 비롯한 모든 조직과 단체의 진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해묵은’, 하지만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영원한 논쟁 주제와 본격적으로 맞부딪쳤다. 바로 민주와 집중, 분산과 효율의 문제이다.
협동조합은 산업혁명 시기에 탄생한 뒤로 지금까지 민주주의의 학교 역할을 담당해왔다. 1800년대 중반 로치데일 소비자협동조합이 영국에서 시작된 이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대까지 미국이나 유럽에서조차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동등한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던 곳은 혁명적인 노동조합을 제외하곤 협동조합이 유일했다. 당시 노동조합에 여성 노동자들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협동조합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관이었다.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모두 평등한 주체로 인정되었고, 협동조합은 ‘1인 1표’ 원칙에 기반한 민주적 원리로 운영되었다.
협동조합의 권력은 조합원들에게 평등하게 분산되어 있었다. 이들은 경영자를 선출하고 매년, 매분기 협동조합의 사업 실적을 보고받는다. 협동조합 경영에서 발생하는 아주 사소한 일도 조합원들의 판단에 맡겨진다. 물론 조합원들에 의해 선출된 경영자가 권한을 남용하여 과도한 결정권을 휘둘렀던 사례가 과거에 많이 존재했고 현재도 여전히 그런 사례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경영자는 3~4년에 한 번씩 재선출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몬드라곤뿐 아니라 모든 협동조합운동에서 조합의 규모가 커지고 동일한 종류의 협동조합들이 각 지역에서 많이 생겨날 경우, 이들 간에 연합체가 만들어지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세계경제에서 초국적 기업과 초국적 자본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협동조합 간의 연대와 연합은 협동조합의 시장 영향력을 보호하고 확대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었다.
협동조합 간의 연합은 대개 동일한 종류의 협동조합들에서 먼저 이루어진다. 한국에서 농협중앙회, 신협중앙회, 새마을금고연합회, 생협연합회 등은 전국 어디를 가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동일 종류 협동조합 연합이다. 이렇게 동일 종류 협동조합의 연합체가 만들어져 사업적 측면의 연대가 이루어질 경우에는 언제나 민주와 집중, 분산과 효율이라는 논쟁 주제에 부딪치게 된다. 연합이 이루어지기 전에 개별 협동조합원들이 갖고 있던 결정권은 연합체가 구성된 후 약화되는 경향을 띤다. 연합기구로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현상이 일반적인 데다, 개별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이 권력 기회에서 하찮은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연합기구의 사람들은 협동조합 전체의 ‘효율’을 위해 이런 현상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하고, 심지어 자신들에게 집중되는 권력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사실 이러한 경향은 협동조합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인간사회의 모든 조직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동일 종류의 협동조합 간 연합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종류의 협동조합들 간에도 연대와 연합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한국에서는 2001년 처음 ‘한국협동조합협의회’가 만들어졌는데, 1년에 한 번씩 각 협동조합의 중앙회장들이 만나고 있다. 유럽에는 전국적인 협동조합 연대기구가 복수로 존재하기도 하는데, 이탈리아의 경우 정치적 성향에 따라 좌, 우, 중도적 성격의 협동조합 연합기구가 있다. 북유럽에서는 협동조합의 전국 연합기구들이 ‘협동조합 블록’을 형성하여 기존 협동조합의 발전과 신규 협동조합의 촉진을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협동조합 간 연대와 연합은 사업적 측면보다 협동조합운동의 정치적 사회적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 세계 협동조합의 연합기구로는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있다.
협동조합운동에서 벌어지는 연대·연합의 일반적인 모습과 달리 몬드라곤의 협동조합 간 연대는 서로 다른 종류의 협동조합들을 하나의 사업체로 묶은 매우 특이한 모습을 띠고 있다. 몬드라곤은 일반적인 협동조합 연합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업 집단’의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다. 몬드라곤의 상임위원회와 총이사회는 기업 집단의 전략기획 부서 또는 사장단 회의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경영 정보의 취득과 처리 능력에서 개별 협동조합의 경영진이나 조합원들에 비해 훨씬 앞서 있다. 1998년 몬드라곤의 가장 오래된 협동조합인 파고르의 경영진은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MCC)’ 경영진에게 보낸 네 가지 우려 사항 중의 하나로 권력이 최고위층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현재진행형의 사례, 몬드라곤
1980년대까지 ‘민주와 분산’의 원칙에 충실한 몬드라곤을 접했던 외부인들에게 1990년대 이후의 변화는 몬드라곤을 훌륭한 협동조합에서 ‘그렇고 그런’ 기업 집단으로 타락시킨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1992년 『몬드라곤에서 배우자』가 출간된 이후 몬드라곤에 열광했던 사람들 중 일부가 몬드라곤의 변화에 비판적인 입장으로 돌아서는 것을 목격하고, 그들과 많은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민주와 집중, 분산과 효율에 관한 오래된 논쟁은 1992년 이후 몬드라곤의 변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좀 더 차원 높은 논쟁으로 발전할 수 있을 듯하다. 협동조합은 시장에서 살아남지 않으면 운동으로 존립할 수 없다. 하지만 존립 자체가 협동조합의 목표는 아니며 존립시키는 과정에서 협동조합 본연의 원칙이나 이상을 잃어버리고 평범한 기업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협동조합은 자신을 존립시킴으로써 주변에 서서히 영향력을 확대하고, 더 나아가 자신과 같은 경영 모델을 재생산함으로써 사회 전체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1956년 첫 번째 협동조합 울고가 설립된 이래 몬드라곤 사람들이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했던 숱한 고민들은 ‘몬드라곤 경험’의 가장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어디까지를 반드시 고수해야 할 원칙으로 설정하느냐의 문제에 대해 그들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몬드라곤의 경험을 완성된 본보기나 지고지순의 사례로 받아들여서는 결코 안 된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변화할 수밖에 없는 ‘현재진행형의 사례’로 몬드라곤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을지가 초점이 아닐까?
몬드라곤의 글로벌화
해외 고용 비중의 확대
통합 다음으로 몬드라곤에서 일어난 두 번째 큰 변화는 몬드라곤의 글로벌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림 1-1>에서 보듯 1989년에는 제조업 전체 매출의 약 25%가 해외 매출이었는데, 2009년에는 비중이 60%로 늘어났다.
고용의 측면에서도 해외 고용의 비중이 점점 확대되었다. 2009년에는 현재 몬드라곤 전체 고용의 약 19%인 16,000여 명이 해외 고용 형태였다. 전체 고용 중 39.4%는 바스크 지역에, 41.6%는 바스크 이외의 스페인 지역에 존재했다. 해외 고용의 비중은 바스크 지역 고용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수치로만 본다면 몬드라곤은 이미 글로벌화된 초국적 기업 집단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해외 고용의 비중은 2010년 현재 18개국 77개의 생산설비 및 공장과 9개 해외 사무소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모두 포함한 숫자이다. 해외 생산설비는 2000년 이후 매년 평균 4~5개씩 늘어나고 있다.
몬드라곤의 글로벌화는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되었다. 1998년 몬드라곤의 한 핵심 경영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페인은 막 유럽공동체에 가입할 참이었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들어오는 제품들에 강력한 관세를 부과하고 있었는데, 반대로 스페인에서 유럽으로 나가는 제품들에는 관세가 없었다. 몇 년 후 관세는 없어졌다. 나는 관세가 사라지고 모든 나라의 제품이 스페인에 들어오게 된 것이 1986년이었다고 기억한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지난 몇 년간 가장 중요한 경제적 변화는 각국 경제의 세계화 과정일 것이다. 이 시기에 우리는 세계화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첫 단계는 생산설비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든 생산라인과 제품을 완전히 혁신했다. 두 번째 단계는 더욱 공격적으로 전개했는데, 세계시장을 개척하고 확대하는 것이었다. (…) 우리는 세계화에 대응하기로 결정했지만, 당시 해외 사업에 대한 경험은 매우 일천한 수준이었다.
몬드라곤 글로벌화의 두 가지 방향
몬드라곤의 글로벌화는 1990년 이후 두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협동조합 간의 국제적 연대이고, 다른 하나는 비협동조합 기업으로의 확장이다.
전자의 경우 몬드라곤은 유럽 시장이 통합되고 세계화가 급진전되는 환경에서 사이올란 교육협동조합을 통해 협동조합적인 기업 경영의 원칙을 조합원들과 경영진에게 교육시키고, 훈련된 인력을 국제통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또한 국제협동조합연맹을 비롯한 전 세계 협동조합 연합기구들과 연대 활동을 강화해나갔다. 이 과정은 전통적인 협동조합운동 원칙과 아무런 충돌도 일으키지 않았다.
문제가 되었던 것은 후자이다. 몬드라곤은 1980년대 불황을 경험한 후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그리하여 1990년부터 외부에 대한 협력 투자를 본격화해 인수·합병뿐 아니라 합작회사 설립 및 R&D(research and development)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합작회사와 몬드라곤이 독점적으로 소유한 주식회사 형태의 자회사들은 이제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고용 확대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만일 내가 아르헨티나나 중국, 모로코나 그 밖의 다른 곳에 있게 된다면 아랍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대해 많은 것을 배울 것이라는 점. 또 남미나 중국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 제품을 아직 사지 않고 있으나 앞으로 살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는 중국에서 그들이 물건을 어떻게 구매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르헨티나에서 반드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할 사명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의 프로젝트가 더욱더 발전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머리’는 여기에 있지만 ‘발’은 ‘몸’을 유지하기 위해 이용되는 것이다.
1992년 이후 몬드라곤의 글로벌화는 주식회사 형태의 합작회사와 다양한 형태의 자회사 설립, 기업의 인수·합병 등을 공격적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몬드라곤의 주요 해외 생산설비가 있는 러시아, 멕시코, 중국, 브라질을 비롯한 동유럽과 인도, 동남아시아 등에서는 몬드라곤과 같은 협동조합 법인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러한 곳에 몬드라곤이 투자한 생산설비들이 주식회사나 사기업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할 수도 있다.
스페인 내 바스크 이외의 지역에서도 이런 종류의 합작과 주식회사 형태의 자회사들이 설립되었다. 특히 유통 부문의 자회사들은 상당수가 비협동조합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 결과 몬드라곤에 소속된 260여 개 회사 가운데 대략 절반만 협동조합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다. 2007년 몬드라곤의 유통 부문 핵심 기업인 에로스키의 조합원 총회에서는 수년 내에 자회사 모두를 협동조합 법인으로 바꾸고 비조합원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전환시키기로 결정했는데, 이것이 실행된다 해도 30% 이상의 기업들은 여전히 협동조합이 아닌 형태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화 전략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그렇다면 이 경우 어떤 문제들이 제기될 것인가? 가장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몬드라곤의 글로벌화를 ‘다국적기업 행태를 동반한 저임금 노동력 착취’로 본다. 그들은 이를 논증하기 위해 두 가지 사례를 든다.
첫 번째 사례는 몬드라곤 제조업 부문의 오래된 협동조합인 코프레시와 관련 있다. 코프레시는 1963년에 설립된 전자부품 제조 회사인데, 미국 수출을 늘리기 위해 1980년대 후반 멕시코 공장을 지었다. 또한 2000년대 들어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의 상당 부분은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다. 멕시코 공장의 노동자들은 스페인에 있는 코프레시 노동자 조합원들 평균 급여의 1/5을, 중국 노동자들은 대략 1/15을 받는다. 물론 멕시코나 중국의 몬드라곤 노동자들이 현지의 다른 회사 노동자들보다 급여가 낮지는 않지만, 이는 몬드라곤의 심각한 급여 불균형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사례는 2004년 6월 몬드라곤 제조업 부문의 핵심 기업인 파고르 전자가 프랑스의 가전기업 브란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파고르는 브란트를 인수한 후 원가절감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리옹과 또 한 지역의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했다.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리옹의 노동자들은 몬드라곤이 기업을 인수·합병하고 합병된 기업을 하청계열화하는 것과 자신들을 하청노동자로 전락시키는 것이 다른 다국적기업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방송은 이들의 투쟁 과정을 그린 <파고르 사람들과 브란트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내보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작품은 파고르 전자의 평화롭고 안정된 협동조합 조합원 노동자들과 고용 불안에 떠는 브란트의 임금노동자들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2008년 ‘아미엥 국제영화제’ 2등상을 수상했다. 어떤 사람들은 몬드라곤의 이러한 기업 인수 과정을 지켜보면서 몬드라곤의 발전이 다른 지역 노동자들을 이류 노동자로 전락시키는 ‘경제적 인종주의’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보통의 다국적기업이 대주주들을 위해 하청 자회사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처럼 몬드라곤 역시 스페인 바스크 지역 노동자 조합원들을 위해 다른 지역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적극적인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는 몬드라곤이 이러한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는 힘들 것이다. 스페인의 노동자 조합원들과 멕시코, 중국의 노동자들, 그리고 브란트의 노동자들이 비슷한 급여 수준을 책정받고 동일한 복지 혜택을 누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협동조합의 창시자 로버트 오언이 살아 돌아와서 다국적 방적 공장 ‘글로벌 뉴라나크’를 만든다 해도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몬드라곤은 세계화 과정에 반대하면서 스페인의 ‘바스크 둥지’에 머물러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럴 경우 과연 몬드라곤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이 문제는 4부 ‘몬드라곤의 미래’에서 좀 더 자세히 논의해보자.
(책머리에, 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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