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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동안 ‘오드리 햅번’ 그녀가 여주인공인 영화, 그녀를 주제로 쓰인 책들과 함께 보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그녀가 마치 내 앞에서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움직이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나를 향해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은근하게 남자를 유혹하는 노하우, 자존심을 지키는 노하우를 지시해줬으며, 소문에 의연해지는 법, 아낌없이 사랑하는 법 등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스타일리시한 여자가 되는 방법도 조언해주었다.
“내가 코를 풀면 그 사실이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는 내 이미지는 모두 외모에 관한 것들뿐이다. 오직 나만이 진실을 알고 있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말고 잡아야 한다.”
“절대로 누구와 누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라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두가 평등한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당신 자신을 마치 기계처럼 분석해봐라. 스스로에 대해 완벽하게 솔직해져야 한다. 당신의 약점을 직면하고 숨기려들지 마라. 그 대신 다른 장점을 개발하라.”
“어릴 때는, 누구나 닮고 싶은 사람을 선택한다. 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장점만 닮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녀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는 그녀의 매력과 사랑스러움에 흠뻑 빠져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드리를 한 배우로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한 인간으로써 그녀를 존경한다. 1998년 에티오피아가 전쟁 중일 당시 오드리는 피난민 수용소에서 작은 소녀를 보았다고 한다. 그녀가 그 소녀에게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고 싶어?”라고 물었고, 그 소녀는 “살아 있고 싶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것을 세상에 알렸고, 기아와 죽음, 깊은 절망을 실제로 목격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면서도 그들에게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어찌 보면 안젤리나 졸리의 자선 활동과 입양 활동의 원형은 오드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드리는 성형 수술을 통해서 억지로 젊음을 되찾으려 하지 않으며 세월에 순응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녀는 내면과 외면이 아름답게 나이 드는 것을 몸소 전 세계에 보여주는 여성이었다. 물론 그녀도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실망과 좌절을 겪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고난이 닥치건 결국 그에 대한 보답을 받는다’는 애티튜드를 간직하며 자신의 빛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인생’을 완성했다.
그녀를 알아가며 ‘해피엔드’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배웠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시점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베드엔드 혹은 새드엔드, 해피엔드로 나눠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일 내가 내 이야기 중 변태지에게
‘커밍아웃’을 선언받았던 그 순간을 마지막으로 잡는다면 그것은 ‘베드엔드’일 것이고, 환과 공항에서 이별하는 그 순간을 마지막으로 잡는다면 그것은 분명 ‘새드엔드’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유상현과 알콩달콩한 사랑을 나누며 내가 행복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는 지금 이 시점을 마지막으로 잡는다면 그것은 내가 원하던 ‘해피엔드’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 후의 어떠한 시점을 마지막으로 잡는다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매 순간 각기 다른 ‘엔드(END)’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동화나 드라마가 해피엔드로 끝나는 것은 분명 그 행복한 한때를 마지막으로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그녀들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내 인생에도 그녀들과 같은 해피엔드가 분명 수없이 많이 존재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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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후-
“잘 갔다 와.”
“정말 같이 안 갈 거예요?”
“출국 한 시간 전인데? 아무리 나라도 그게 가능할까?”
유상현이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끌고 있던 캐리어를 내 앞으로 건넸다. 나는 지금 오랜만에 미국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미국에 간다. 그리고 그 김에 뉴욕에 있는 환과도 만날 것이다. 유상현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지만 이번에도 그는 ‘촬영’을 핑계로 거절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꼬박꼬박 환의 블로그에 들어가 환의 일상을 훔쳐보며, 환에게 가끔 이메일을 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환도 인터넷에서 유상현에 관한 안 좋은 기사거리가 뜰 때마다 메신저에서 내게 말을 걸며 은근슬쩍 유상현에 대한 안부를 묻는다. 둘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일본으로 돌아간 지은서는 당분간 일을 쉬고 휴식을 취할 거라는 공식적인 기사를 냈으며, 변태지의 ‘커밍아웃’은 결국 한 기자에 의해 밝혀져버렸다. 인터넷 연예부 기자로 자리매김 한 강윤지는 여전히 클릭 순위 1위를 자주 차지했다. 그리고 <플러스 텐>은 여전히 스타들의 가십거리로 잡지사를 운영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지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 패션, 미용, 화술, 상황에 맞는 예절, 나의 표정 관리 등을 열심히 공부 중이다.
오랜 시간을 고민 한 후 그 직업을 택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셀러브리티에 대한 기사를 쓰고 연구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그 각각의 매력을 끄집어내 극대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타인의 ‘이미지 컨설팅’을 해가며 내가 몰랐던 내 이미지도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퍼스트 석은 처음 타봐요. 그냥 일반석 타도 되는데.”
“안 돼. 넌 그래도 일단 한류 스타 유상현의 애인이잖아. 일반석에서 침 흘리고 잠드는 거 사진이라도 찍힘 어떻게 해.”
나는 그를 흘깃 째려보며 캐리어를 잡았다. 그리고 ‘갔다 올게요’라고 말하며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가 살짝 허리를 숙여 내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순간, 아까부터 우리들을 바라보며 쑥덕대고 있던 사람들이 각각 디카나 핸드폰을 꺼내들어 몰래 사진을 찍어댔다. 하지만 그와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오드리 햅번’의 말대로 그들이 내 사진을 찍어대고 그것을 보며 씹어댄다 한들, 그건 그 안에 보이는 나의 단순한 이미지일 뿐이다. 그들은 나를 경험하거나, 겪어보지 않고서는 절대 나에 대해 알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기준에 맞추어 근심 걱정을 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었다.
유상현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처음 타보는 퍼스트 석에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스튜어디스가 안내해준 자리에 앉았다. 핸드폰을 끄고, 가방 안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읽기 시작하는데 내 옆자리에 선글라스를 쓴 누군가가 탔다. 자리에 앉자마자 얌전히 선글라스를 벗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홍콩의 셀러브리티 ‘장쯔이’였다. 얼마 전 방한했다고 하던데, 미국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녀가 방금 내려놓은 선글라스, 그녀가 들고 있는 백 모든 것이 근사해 보였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녀가 미치도록 부럽지는 않았다. 지금 내 눈에 비친 그녀도 나와 같이 해피엔드, 새드엔드, 베드엔드를 번갈아 경험하며 살아가는, 그러면서도 결국에는 해피엔드만을 원하는 한 사람일 뿐이니까.
그리고 지금 여기서 내 이야기를 마친다면 내 이야기는 일단은 “왕자님과 그 후로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해피엔드’일 것이다. 물론 앞으로 더 많은 날들이 내게는 남겨져 있고 그 날들을 어떻게 잘 보내느냐 하는 것이 내게 남은 과제겠지만, 누군가에게, 이미 정해져 있는 것들에게 나를 억지로 맞추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드리 햅번은 “여성이 아름답게, 그리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나이 드는 일이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고 믿어야죠!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스스로에게 총이라도 쏴야 할까요?”
여자는 언젠가는 주름을 만들고, 날카로운 턱선을 부드럽게 만드는 세월에 순응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잃은 것들을 소유한 채 젊음의 빛을 발하는 누군가에게 질투도 느끼게 된다. 그러니 영원히 빛을 발하는 천진난만한 공주일 수 없으며, 영원히 한 왕자님의 사랑을 묶어 둘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꿈을 버리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자신이 동경할 수 있는 ‘셀러브리티’들이 존재하고, 비슷한 스토리의 해피엔드인 드라마나 소설 영화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내 인생의 셀러브리티는 나라고 믿을 것이다.
‘워너비 해피’를 외치며 지금보다 조금 더 아름다워 지길, 조금 더 사랑스러워지길,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길 끊임없이 바라며 나는 나답게, 가장 백이현다운 셀러브리티로, 해피엔드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으면 그것으로 좋은 게 아닐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