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기자,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다짜고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면서도 어딘가 묘하게 절박한 편집장의 목소리가 귀에 꽂히자마자 숨이 턱 막혀버렸다.
“네? 무슨 일이기에…”
라고 물으면서도 이미 머릿속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제멋대로 펼쳐졌다.
“지은서랑 유상현 사이! 백 기자도 알고 있었다며!”
“네? 편집장님, 그게…”
목소리의 떨림이 감춰지지 않은 채 그대로 드러났다. 심장이 미친 것처럼 두근댔고, 입안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그제야 심상치 않은 사태를 눈치 챈 태이가 젓가락을 놓은 채 나를 바라보며 “왜?”라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난 애써 마음을 진정시킨 후 편집장에게 “잠시만요”라고 소리 내어 말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태이에게는 단지 눈빛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말했다. 태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쭈그린 두 다리를 양손으로 모은 채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침대방으로 가서 문을 닫은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침대에 앉았다. 순간 매트의 울렁임에 속이 메스꺼워졌다. 아니, 매트 때문이 아니다. 이 상황 때문이었다. 휴대전화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강윤지 기자가 다른 일간지에 이 기삿거리를 팔아넘겼대. 이제 곧 연합페이퍼에서 뜰 거고, 그럼 모든 매체에 퍼지는 건 순식간이야. 정말이야? 유상현과 지은서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게? 그리고 백 기자는 처음에 그걸로 협박해서 유상현과 애인 관계로 발전시킨 거라는 게, 다 맞는 사실이냐고?”
손에서 스르르 힘이 풀렸다. 그리고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아니, 말문이 막히면서 손에서 힘이 풀린 건지도. 역시나 나쁜 예감은 슬프게도 정확히 들어맞나 보다.
“백 기자? 백 기자?”
핸드폰에서는 연신 나를 불러대는 편집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어떠한 말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다 사실이에요’라고 말할 수도, ‘아뇨. 절대, 아니에요. 그건 다 루머일 뿐이에요’라고 딱 잡아떼며 억울한 듯 설레발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머릿속에 산발적으로 드는 여러 가지 생각 중 제일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유상현과의 연락’이었다.
만약 이 기사가 뜬다면 유상현은 내가 기삿거리를 넘겼다는 오해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어찌 보면 오해가 아닌 사실이다. 내가 술에 취해 변태지에게 멋대로 떠들어버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자업자득이었다. 나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눈을 깊게 감았다가 떴다.
“편집장님, 죄송한데요… 전화 다시 드릴게요.”
내 말에 다급히 끊지 말라고 말하는 편집장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긴 했지만, 나는 핸드폰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바로 유상현의 번호를 재빠르게 눌렀다. 신호음이 이어졌다. 제발, 제발, 받아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지만 그의 전화는 30초에서 끊겨버렸다. 몇 번을 다시 시도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에 앉은 채 발을 동동 굴리고 있는데 문이 슬며시 열리면서 빼꼼이 태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무슨 일 있어?”
걱정스런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난 애써 울음을 삼키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소파 위에 놓여 있던 노트북을 열고서 신경질적으로 전원 버튼을 눌렀다. 부팅이 되자마자 인터넷 창을 연 나는 검색창에 유상현을 쳤다. 하지만 최근 기사는 어제 저녁 영화 VIP 시사회에 간 그의 드레스 코드에 관한 기사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직인가?’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빠른 걸음으로 부엌에 가 무작정 손에 집히는 컵에 물을 받았다.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데 거실에서 다급한 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현아! 얼른 와봐. 이게 무슨 말이야?”
태이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에 마시던 물을 다시 식탁에 내려놓은 채 거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태이가 들고 있던 노트북을 빼앗듯이 낚아챈 후 윈도우 창에 떠 있는 기사를 봤다.
‘탑 셀러브리티 유상현 지은서, 두 사람의 숨겨진 아이?’
‘유상현-지은서, 비밀 연애부터 숨겨둔 아이까지 풀 스토리 긴급 독점 취재’
‘발칙한 사기꾼 백이현, 유상현이라는 대어를 낚다’
“야야,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옆에서 다급하게 묻는 태이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기사들을 바라봤다. 기사 내용은 다르지 않았다. 한 기사에서 출발한 내용이 아무런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복사와 붙여넣기로 만들어져 무서운 속도로 업로드되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렸지만 유상현은 아니었다. 모르는 번호들이 태반이었다. 다시 한 번 유상현에게 연락했지만 여전히 유상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매니저 번호라도 알아둘 걸 하는 후회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핸드폰에 ‘환’이라는 이름이 떴다. 난 반사적으로 핸드폰 폴더를 열었다.
“누나! 이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지은서라니? 지은서가 내… 아니, 일단 누나 어디에요?”
핸드폰을 열자마자 다급스럽게 들리는 환이의 목소리에는 놀람, 당혹, 슬픔, 그리고 걱정 등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환아, 너… 미국 아니야?”
“지금 그게 중요해요? 후, 누나 지금 어디에요?”
“난 집이야.”
“누나… 거기 있어도 괜찮겠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이렇게 느긋하게 기사를 보며 유상현에게 전화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곧 기자들이 전화해 집으로 몰려들 것이다. 만일 내가 기자가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기자라는 타이틀을 지닌 내 신상명세는 모든 기자들에게 뿌려져 있었다.
“그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내 옆에 꼭 붙어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태이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통화하는 얘도 일단 집으로 불러.”
그렇게 말한 태이는 일어서서 “얼른!”이라고 다시 한 번 내게 말했다. 난 환이에게 태이의 집 주소를 말한 후 잠시간 필요한 물건들을 가방 안에 쑤셔 넣은 채 밖으로 나왔다. 계속해서 전화벨이 울려댔지만 유상현의 전화는 한 통도 없었다. 그리고 틈틈이 변태지와 강윤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둘은 짜기라도 한 듯, 아니 유상현과 더불어 셋이 짜기라도 했듯 내 전화는 아무도 받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