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기자! 특집기사 마무리 됐어?"
"……"
“백 기자!”
“네??”
날카로운 목소리에 놀란 나는 재빠르게 모니터를 끄고 목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그녀였다. 편집장 나지수. 그녀는 살이 없어 뼈만 앙상한 두 팔로 팔짱을 낀 채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재수, 나까칠이라는 별명으로 통하고 있는 편집장은 본인이 정확한 나이를 밝히길 꺼려해 전신성형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고, 한때 '보그의 편집장이었다' '엘르의 부사장이었다' '그런데 패션지 편집장치고는 촌스럽다는 이유로 짤렸다'라는 숱한 루머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 본명은 순박하게도 나지순이라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었다.
"린.제.이. 로.한. 특집기사 마무리 됐냐고."
"덜 됐는데, 곧 끝날 것 같기도 하고……“
말꼬리를 흐리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편집장의 눈총이 정수리에 따다닥, 꽂히는 것 같았다.
"그럼. 타블로이드 지에서 쓸 만한 가십들은 봐둔 거 있어?"
음, 있는 것도 같았다. 탑 스타 A양이 결혼을 발표하자 그녀와 친분이 있는 기자가 '연애에서 결혼까지 그들의 러브스토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가 바로 내렸던 것? 이유인즉슨, 그녀의 가치관은 연애 따로, 결혼 따로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결혼 상대는 기자도 모르는 영 뜬금없는 사람이었다나 뭐라나. 또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대표 아이돌 그룹의 멤버 중 한 명이 '묻지마 모텔'의 구조를 모르고 운동화를 놓고 나왔는데 나가자마자 청소를 하는 바람에 운동화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한류 스타 유상현이 헐리웃 여배우 케리 팍스와의 호텔에서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편집장이라면 분명 마지막 루머를 듣는 순간 나더러 당장 현장을 덮치라고 할 게 뻔했다. 말 그대로 현장습격, 즉 파파라치를 해서 루머가 사실이든 아니든 세간을 시끄럽게 만들 사진을 찍어 오라는 것이었다.
"언제나 사진기를 들고 다니도록 해. 요즘은 한국도 파파라치가 대세인 거 알지? 특히 우리 잡지는 파파라치를 해야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는 걸 잊어선 안 돼."
"네. 알고 있답니다."
나는 그녀가 눈치 채지 못 할 만큼만 건성으로 대답했다.
"린제이 로한 기사는 되는대로 올려. 그리고 다들 사무실에서 시간 죽일 생각 말고 가십 몰고 다니는 연예인을 부지런히 쫒아다니란 말이야. 알아들었어? 아, 다들 들었지?"
나재수는 박수를 두 번 쳐서 그녀의 잔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편집실 모두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모두들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잠시 멈추고 나재수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탑스타용으로 큰 건 하나 물고 오면 대표님이 인센티브 300퍼센트를 주신다는 소식!"
다들 고개를 건성으로 끄덕인 후 다시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300퍼센트라. 지금껏 밀린 카드 값을 청산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그런 기회가 쉽사리 오지 않는 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였다. 아니, 모두였다.
우리나라 탑스타는 절대 가십을 흘리고 다니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은 엄마의 자궁 속에서부터 탑스타의 오라, 또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영악함, 영민함 등을 손에 꼭 쥐고 있었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