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린제이 로한* 처럼 솔직, 화끈하게.
*한 번 더 주의*
이 소설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으니 그 점을 염두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며 "아' 얘는 혹시 그 연예인??" 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괜찮으나 단정 짓지는 말아 주십시오.
린제이 로한 |
* 파티 걸, 남자 킬러, 워커홀릭, 동성애, 거식증, 마약, 가정 폭력, 싸움닭 등 린제이 로한을 나타낼 수 있는 키워드는 무수히 많다. 빨간 머리에 주근깨 많은 이웃집 소녀 같은 이미지였던 린제이 로한은 하이틴 영화를 통해 미국 소녀들이 가장 닮고 싶은 아이돌 스타로 부상했고 혹독한 다이어트를 통해 날씬한 숙녀로 변신했다. 파티 장소 대여료와 쇼핑으로 몇 억씩 쓰고 패리스 힐튼의 전 남자친구를 당당히 빼앗질 않나 최대 서른 살 이상 차이나는 브루스 윌리스와 스캔들을 내더니, 다음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 하는 대중들에게 당당히 ‘여.자.애.인.’을 대동하고 나서는 심하게 화끈한 언니다. |
《보그》 《GQ》 《마리끌레르》 《NYLON》 《엘르》 《얼루어》 《코스모 폴리탄》 등등.
애당초 내가 입사 지원서를 낸 잡지사들은 바로 이런 곳이었다. 하지만 멍청한 그곳에선 재능 있는 인재를 바로 코앞에 두고도 인턴으로밖에 활용하지 않는 실수를 범했다.
** 말랑말랑 젤리 느낌(한마디로 고무)의 슈즈. 비가 내리는 날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개인적으론 'YSL'의 하트 모양 발고리가 달린 젤리슈즈가 제일 마음에 든다.
잡지사 인턴사원의 월급은 고작 한 달에 50만 원.
스타벅스 커피 몇 잔, 스파게티 몇 접시, 슈에무라 자외선 차단제, 네일 케어 10회 쿠폰, 장마 대비용 젤리슈즈**를 사면 얼마 남지도 않는, 한창 가꾸기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26살의 여자에게는 치명적으로 작디작은 금액이었다.
나도 다른 여자들처럼 내집 마련의 꿈을 위해 청약통장을 마련하고 결혼을 위한 적금도 들 수 있는, 가끔은 큰 맘 먹고 몇 개월 할부로 명품 신상 백을 질러도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을 만큼의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그런 안정된 직장을 원했다. 그래서 과감히 인턴을 때려치우고 취직한 곳이 바로 지금 들고 있는 '백' 과 '구두'를 살 수 있게 만들어 준 매거진 '플러스 텐'이다.
매거진 플러스 텐.
프랑스 유학파 출신인 대표님이 나름 고민해서 되도록 의미 있게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플러스 텐을 다르게 쓰면 +10. +10을 그대로 읽으면 더할 '가' 에 '십' 즉, '가십'이다.
그렇다. 우리 잡지사는 대놓고 스타들의 가십을 먹고산다.
스타가 누구와 데이트를 하는지, 주로 가는 데이트 장소는 어디인지, 누가 누구와 함께 몰래 동거를 하고 있는지, 그 동거 상대가 동성인지 이성인지, 왜 갑작스럽게 살이 쪘는지 빠졌는지 등 심지어는 주변인들의 루머까지 모조리 모아 하나의 기사로 엮어버린다. 어찌 보면 '타블로이드와 비슷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엔 타블로이드 보단 약…… 2.5퍼센트 정도의 신빙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본다. 내 생각엔 말이다.
잡지사 한쪽 귀퉁이에 위치한 13평 남짓 되는 기획편집실 안. 15인치짜리 내 데스크 탑 모니터 속에는 빨간 곱슬머리에 주근깨 투성이 얼굴,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친구 하고 싶은 에서 '예쁘지는 않지만' 을 빼고, 귀엽고 섹시한 외모를 더하면 되는 린제이 로한의 가십거리 기사들이 빼곡히 떠 있다. 난 지금 매거진 '플러스 텐' 8월호에 특집으로 개재할 ‘gossip girl 린지’라는 기획기사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기획기사라고 해서 내가 직접 린제이 로한의 인터뷰를 하러 해외 출장을 떠난다거나 이슈 메이커로서 그녀가 어떤 불안한 심리 상태에 놓여있는지에 대한 심층 분석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그저 난 모니터 쪽으로 목을 쭉 빼고 웹상에 떠돌아다니는 그녀의 루머, 가십들 중 가장 핫(hot) 한 것들만 추려내 짜깁기할 뿐이다. 문제는 그놈의 가십, 루머, 염문설이 막 스물을 넘긴 여자가 소유할 수 있는 양이 아니라는 거다.
-린제이 로한, 마약은 15살 때부터?
이런. 내가 츄잉껌을 씹으며 각 나라의 왕자님께 편지를 쓰던 나이 때와 같다.
-데이비드 베컴을 침대로 끌어들이겠다며 친구들과 내기? 그 내기 액수가 자그마치 4만 4천 달러(한화 약 4천만 원)로 밝혀져!
고백컨대, 2002월드컵 당시 난 베컴과 말 한 번만 섞어 봐도 소원이 없겠다고 친구들에게 말했었다. 내기 액수가 한화로 치면 4천만 원이 넘는다. 과연, 난…... 죽을 때까지 4천만 원이나 모을 수 있을까?
-패리스 힐튼의 옛 애인을 의도적으로 만나면서 패리스 힐튼을 괴롭히기?
감히 힐튼의 상속녀를? 한 벌에 1천 달러를 가뿐히 넘는 드레스를 한 번만 입고 버린다는 그 패리스 힐튼을? 나 같으면 적당히, 아니 무조건 패리스 힐튼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버림받은 그 가련한 드레스들이나 조용히 내 것으로 만들 텐데….
그리고!!
모니터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얼마 전 뜬 린제이 로한이 직접 만들었다는 화제의 동영상!!
'린제이 로한의 e하모니 프로필'이라는 제목의 이 동영상에서 린제이 로한는 '내 이름은 린제이고 최근에 혼자가 되었다. 난 괜찮은 여자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공개구혼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가수이자 배우이며 일 중독자이지만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서는 알콜 중독자라고도 부른다며 스스로 악동 이미지를 강조하는 센스를 잊지 않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대목을 빼먹은 것 같았다. 남자 애인을 구한다는 건지, 여자 애인을 구한다는 건지.
어쨌거나, 이 기사도 '정말?' 저 기사도 '맙소사!' 또 다른 기사도 '말도 안 돼'라는 감탄사들을 연발키는데 대체 어떤 기사를,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선정해 특집기사를 만들어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뭐, 셀러브리티를 꿈꾸던 나이기에 살짝 아니 꽤나 그녀가 부러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난 다시 한 번 동영상 재생 버튼을 눌렀다. 몇 초간의 버퍼링 후, 인형 같은 린제이 로한이 불쑥 나타나 자신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난 슬쩍 그녀의 모습에 나를 대입시켜봤다.
'내 이름은 백이현, 현재 패션계에서 승승장구 중인 디자이너 애인이 있긴 하지만, 그보다 스펙이나 외모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 된 남자가 있다면 갈아타기를 한 번 해볼 용의가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