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괜찮아요. 이제 아무런 일 없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그녀의 등을 계속 어루만지면서 그렇게 말했다.
“만세 형이 강제로 옥희 누나한테 추한 짓을 하려고 하다가 아빠한테 들켰어요. 아빠가 만세 형을 짐짝처럼 두 팔로 번쩍 들어서 2층 창밖으로 내던졌어요. 1층 내 방에서 자고 있던 저는 뒤늦게 기척을 느끼고 올라갔어요. 그때 제 눈에 보인 것은 창문을 깨뜨리면서 바깥으로 내던져진 만세 형의 몸뚱어리였어요.”
내 뒤를 따라 올라왔었던지 달구가 옥희 씨의 방문 앞에 서서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옥희 씨 방의 창문이 깨져 있는 것을 나는 그제야 발견할 수 있었다. 만세 옆에 널려 있던 깨어진 유리조각은 달구 아버지가 창밖으로 만세를 던지는 사이 창문이 깨지면서 떨어진 것이었구나.
나중에 경찰 조사에서 밝혀진 것이지만, 그날 옥희 씨는 식당 앞에서 나와 헤어진 후 언제나처럼 몸을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그러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채 잠이 들지도 않았을 때 바깥쪽에서 누군가가 열쇠로 옥희 씨의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고 위험을 직감한 옥희 씨는 결사적으로 방문 고리를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기어이 한밤의 침입자는 힘으로 윽박지르며 옥희 씨의 방에 들어서는 데 성공했고, 강제로 옥희 씨를 겁탈하려고 했다고 한다. 몸으로 몸을 누르면서 옷을 벗기려고 했단다. 옥희 씨는 소리를 지르며 격렬하게 저항했고 다행히도 1층에서 채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있던 달구 아버지가 2층의 심상치 않은 기척을 느끼고 달려와서는 그 우람한 두 팔로 만세를 번쩍 들어서 창밖으로 내던졌다는 것이다. 나는 그 모든 내막을 다 알고 나서야, 내가 이곳 달구네 식당에서 옥희 씨를 끌어안던 날, 만세와 드잡이를 했을 때, 만세가 내게 했던 돼먹지 않은 협박을 생각해냈다. “두고 봐”라고 제법 알심있게 윽박질렀던 것이 고작 이런 거였다니.
내가 옥희 씨의 등을 어루만지며 위로하는 사이 경찰이 도착했다. 일단 2층에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만세는 병원에 실려 가고 경찰과 달구 아버지와 달구 새엄마가 현장 조사를 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왔다. 옥희 씨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서럽게 울먹이면서도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듣는 경찰은 다름 아닌 왕 경장이었다. 옥희 씨가 얘기하는 동안 나는 옆에서 계속 그녀를 부축하면서 위로하고 격려했다.
왕 경장은 옥희 씨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면서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달구 새엄마의, 결과적으로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마지막 발악이 시작된 것은 옥희 씨가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이었다. 금방이라도 옥희 씨에게 달려들 듯 두 팔로 삿대질을 하며 달구 새엄마는 말도 안 되는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년아, 말 똑바로 해. 우리 아들이 뭘 어쨌다고. 네년이 우리 아들을 꼬드겨서 방에 들여놓고선.”
달구 새엄마의 말은 이미 말이 아니었다. 그건 말 이전의 소리, 그러니까 보잘것없는 짐승이 자신의 야만성을 드러내고자 그르렁거리는 소리와 다를 게 없었다. 그렇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단지 ‘그르렁’이었다.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화조차 나지 않았다. 피해를 입은 옥희 씨가 자신이 입은 모독을 가까스로 참으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낱낱이 말했고, 그것을 두 목격자가 지켜보았는데도 달구 새엄마는 아랑곳없이 생떼를 부리는 것이다.
“이년아, 어디서 내 아들을 파렴치범으로 몰려고 그래? 어서 경찰분들한테 사실대로 말해! 네년이 우리 아들을 꼬셨다고!”
그때였다. 귀를 의심케 하는, 작지 않은 식당 건물 전체가 움찔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큰 짐승의 포효소리 같은 것이 들린 것은. 얼마나 우렁찼는지 그것은 사람의 몸에서 나온 소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다음 순간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잠자코 있는가 싶던 달구 아버지가 포효와 함께 두 팔로 달구 새엄마를 불끈 들어올린 것이다. 달구 새엄마는 딱하게도 마치 역도선수에게 들려진 역기처럼 하늘에 일자로 누운 채 팔다리를 대롱거리는 형국이 되었다. 달구 아버지는 분노와 슬픔과 비애와 회한 따위가 한데 섞인 듯한 눈동자를 몇 번 끔벅이더니 달구 새엄마를 창밖으로 내던지려고 했다. 그 급박한 순간 나는 달구 새엄마를 번쩍 들어올린 달구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간단치 않은 감회에 사로잡혔다. 몸집은 그 누구보다도 컸지만 상대를 이기는 방법을 몰라, 아니 상대를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 늘 지기만 했던 씨름선수가, 이제 순전히 자신만의 의지로 어떤 것을 물리치고자 힘을 발휘한 것이 아닌가. 드디어 달구 아버지도 때때로, 지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깨달았던 걸까. 아무튼, 물리치는 것도 좋고 지지 않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달구 아버지를 말려야 할 때다. 나는 달구 아버지의 몸에 매달리며 그를 제지했다.
“아저씨, 그러지 마세요. 내려놓으세요. 그만하면 됐어요.”
“으아아.”
달구 아버지는 짧은 신음을 터뜨리면서 달구 새엄마를 내려놓았다. 그의 표정은 영락없이 힘을 채 뿜어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장사의 그것이었다. 그가 씨름선수로 활약했다는 젊은 시절, 저런 패기의 소용을 그 자신이 일찍 알았더라면 아마도 그와 대적했던 모든 씨름선수들은 채 5초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과연 그가 행복했을까. 달구 새엄마는 바닥에 자신의 발이 닿는 즉시, 넋을 놓은 사람처럼 주저앉았다. 그때 왕 경장이 노회한 눈으로 사람들의 낯을 빠르게 훑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무튼, 만세가 저 여자분 방에 강제로 침입한 증거는 아직 없는 거죠?”
왕 경장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내 두 손은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야비할 수가 있을까. 그때 달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집 방 열쇠는 늘 새엄마가 가지고 다녀요. 새엄마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열쇠를 가질 수 없어요.”
달구의 증언은 거짓 없는 사실이었고 그것은 만세가 자신의 어머니의 묵인 아래 옥희 씨 방에 침입할 수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이렇게 명백해지고 나서야, 그때까지도 달구 새엄마 편을 들 만한 꼬투리가 없나 얄팍한 셈을 하고 있던 왕 경장이 오히려 역정을 냈다. 물론 그것은 농후한 연기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나쁜 사람 같으니. 아들에게 강제추행을 종용하다니.”
왕 경장은 역시, 자신이 그때그때 어떤 처신을 해야 그 추잡한 제복을 계속 입을 수 있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