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층 창문을 통해 비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막연한 염원을 품고 있는 동안 그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이 내게는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나는 이제 그 일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아무래도 그게 내가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날도 나는 밤 열두 시가 조금 못된 시간, 달구네 식당 앞에 가서 옥희 씨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그녀를 만났다. 매일 밤 자정의 짧은 만남이 시작된 지도 꽤 여러 날 흘렀지만 여전히 옥희 씨는 나를 볼 때마다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늘 나를 걱정하는 말을 했다.
“상문 씨 몸의 열은 좀 어때요? 난 상문 씨가 아픈 것이 제일 싫어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이제 괜찮아요. 내 몸에 열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옥희 씨를 생각하는 열정뿐일 거예요. 당신이 제일 싫어하는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아요.”
그날 밤 나는 옥희 씨의 뺨에 짧은 키스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그 무렵부터 옥희 씨를 달구네 식당에서 데리고 나와서 함께 사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옥희 씨와 같은 식탁에서 매일 밥을 같이 먹는 꿈 말이다. 내가 옥희 씨의 손목을 굳게 잡고 달구네 식당을 뛰어나오는 꿈을 꿨던 어떤 날의 꿈은 너무나 생생해서 나는 실제로 입 밖으로 말을 하고 웃고 발을 동동 구르며 달리기도 했다. 꿈에서 깨 눈을 뜨니, 어머니가 손목을 잡힌 채로 빙그레 웃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부르는가 싶어서 올라왔더니 덥석 손목부터 잡더구나.”
아무튼, 옥희 씨의 뺨에 입을 맞추고 집에 돌아와서 책을 좀 읽다가 잠자리에 든 시간이 두시 반 정도였을 것이다. 역시나 어렴풋이 몸이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조금씩 꿈 쪽으로 몸이 빨려 들어갈 즈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달구였다. 달구는 황급한 목소리를 나를 찾고 있었다.
“형, 형! 빨리 우리 집으로 와요. 어서요.”
나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 황급하게 옷을 주워 입고 달구네로 뛰어갔다. 오직 그 순간만큼은 내가 오토바이보다 빨랐다고 자신할 수 있다. 달구네 집 앞에는 달구 아버지와 달구 새엄마와 달구가 서 있었고, 그들 가운데에 한 사람이 납작 엎드린 채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사람 주변에는 깨어진 유리 조각과 파편들이 널려 있었다. 나는 쓰러진 사람이 만세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묘하게도 만세는 뒷모습마저도 만세답게 어떤 비열한 풍모를 띄고 있었다. 달구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고도 ‘워우 워우’ 하는 알 수 없는 소리만 내고 있었고, 달구 새엄마는 장맛비로 흥건하게 젖은 바닥에 쓰러진 자기의 친아들인 만세를 내려보며 연신 “이를 어째, 이를 어째.”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와는 다르게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그때 달구가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형, 만세 형이 옥희 누나에게 못된 짓을 하려다가.”
내 귀에 들려온 말이 무슨 말인가 싶은 찰나, 생각이 머릿속에서 정리되기도 전에 나는 동물처럼 식당 안채로 뛰어들어서 옥희 씨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지금도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는 한 번도 옥희 씨의 방에 가본 적이 없는데, 그 순간 정확하게 옥희 씨 방의 위치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옥희 씨의 방문을 열었다. 아, 옥희 씨가 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내 사랑이 슬픔에 젖은 채 어떤 고통을 통과하고 있었다. 나는 옥희 씨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등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옷은 군데군데 찢겨 있었고, 내가 입을 맞췄던 뺨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옥희 씨는 나를 알아보고는 두 팔로 내 목을 감고 나를 안았다. 그녀는 서럽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