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씨 아저씨의 장례식은 장맛비가 내리는 가운데 조촐하게 치러졌다. 그가 남긴 아주머니와 예쁜 딸들은 심씨 아저씨의 영정 앞에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심씨 아저씨를 실은 운구차가 화장장으로 향하던 날, 정말 어이가 없게도 계씨 형제가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를 돌았다. 문상조차도 오지 않았던 그들은 어느 때보다도 요란한 굉음을 내면서 속력을 냈다. 누가 죽든 말든 자신들만의 기분이 중요한 것 같았다. 아니 그들은 오히려 심씨 아저씨의 죽음을 마뜩하게 기다린 사람들처럼 보였다.
어이없는 일은 또 있었다. 운구차가 세탁소 앞을 지날 때, 가로수에 앉아 있던 비둘기들이 운구차 지붕 위에 똥을 싸지른 것이다. 그걸 본 박씨 아저씨는 다른 사람들 보기에 좀 민망했던지 이렇게 말했다.
“아유, 오늘 같은 날은 좀 참아주지.”
그러면서 그가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웃음을 흘리는 것이 내 눈에 보았다. 그는 지금 우리가 어떤 비극에 처해 있는지, 우리의 열대가 얼마나 통절한 슬픔 앞에 직면해 있는지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 당연히 그럴 것이다. 이제는 결단코 평화의 상징이 아니라 탐욕과 비겁의 상징일 뿐인 비둘기와 그 비둘기를 옹호하는 박씨 아저씨를 향해 속에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았다. 마지막 길까지도 그토록 처참하게 능욕당하는 심씨 아저씨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속으로 깊이 통곡하는 일만은 아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분노를 벼려내고 있었다.
심씨 아저씨의 딱한 죽음을 슬퍼하기라도 하듯 장맛비는 쉼 없이 내렸다. 심씨 아저씨의 자전거 상회는 굳게 문이 닫혔고, 이미 오래전에 녹슨 간판은 비둘기 똥으로 더럽혀졌다. 심씨 아저씨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그 똥을 닦아낼 수 없을 것이다. 잔인하게도 길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의 숫자는 눈에 띄게 늘어났다. 노인들은 그들이 내는 굉음에 질려 좀처럼 밖에 나오지 않았고, 거리는 점점 더 비둘기와 오토바이 천지가 되어버렸다. 며칠 사이 부쩍 늙으신 듯한 아버지는 밥상머리에서 옛날 신문에서 갈수록 미담 기사를 찾기가 어려워진다며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고, 손뜨개질로 그물을 짜는 어머니의 손 역시 점점 더 곱아들었다. 모든 것이 비관적인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나는 거리를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리고 내게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이 찾아왔다. 몸에서 다스릴 수 없는 끔찍한 열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끙끙 앓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뜨개질하던 손으로 차가운 얼음수건을 만들어서 내 이마에 올려주었지만 열은 내려가지 않았다. 나는 끙끙 앓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무언가 비통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내 몸을 앓는 것이었다면 이토록 비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세상을 앓고 있었다. 제법 영민하고 신망 높은 한의사였던 내 아버지는 내 맥을 짚어보시고는 이렇게 말했다.
“시인이 한번은 앓아야 할 병인데, 약으로 다스릴 게 아니지.”
내 몸은 날마다 펄펄 끓어올랐다. 내 머리가 다리 밑에 달린 것처럼 나는 나를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이러다간 두 평도 되지 않는 내 방에 갇혀버린 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처방전을 쓸 수 없다고 말했던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면서 말없이 기도를 할 뿐이었다. 달구가 두 번인가 나를 찾아와서 쾌유를 기원하는 옥희 씨의 말을 전할 때만 가끔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내가 의지할 것은 사랑밖에 없었다. 나는 옥희 씨를 생각하면서 열병을, 내가 앓는 세상을 견뎌야만 했다.
나는 펄펄 끓는 몸으로 달구네 식당 문이 닫는 밤 열두 시에 옥희 씨를 보러 식당 앞으로 달려가기로 했다. 그 앞에서 옥희 씨가 설거지와 홀 청소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잠깐씩이라도 그녀를 보는 것이다.
첫날은 다리가 말을 듣지 않고 눈도 희미해서 가는 길에 벽에 손을 짚고 여러 번 뜨거운 숨을 토해내야만 했다. 하지만 죽어도 사랑 앞에서 죽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밤마다 잠깐씩이라도 옥희 씨를 만났다. 손을 잡기도 하고 살짝 그녀를 안기도 했다. 내가 짧게는 5분, 길게는 10여 분 정도 식당 앞에서 옥희 씨를 만나는 동안, 달구는 고맙게도 식당 안쪽의 상황을 살피면서 우리를 기다려주었다. 옥희 씨를 매일 보는 일 그것은 내게 매우 절실한 일이었다. 매일 옥희 씨를 보지 않으면, 분노하게 만드는 이 세상의 심술에 홀린 나머지 나조차도 몰라볼 괴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끝내는 그 열기에 미쳐서 죽고 말겠지. 내게 사랑은 분노의 열을 다스리는 묘약이었다. 나는 옥희 씨의 눈에서 위로를 받고 옥희 씨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로부터 지혜를 구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내 몸의 열은 조금씩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가 표현한 대로, ‘시인이 한번은 앓아야 할 병’을 통과했다.
비가 오고 있다. 장맛비가 올해는 유난히 질기고 거세다.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린 게 물경 보름은 넘은 것 같다. 작은 개울처럼 도로에 빗물이 고여서 흐른다. 장맛비 때문에 생업에 지장이 있는 분들께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장맛비를 보면서 요즘 이런 염원을 하고 있다. 옛날 조물주가 타락한 이 세상을 벌하기 위해 홍수를 벌로 내렸던 것처럼 이 장맛비가 그치지 않고 더욱 가열차게 내려, 더러운 모든 것들, 이를테면 비둘기와 비둘기 똥과 오토바이와 타이어들, 그리고 삶의 질서를 유린시키고 순수한 열대를 파괴시키는 모든 인간의 욕심들을 모두 쓸어가 버렸으면 하는 염원 말이다. 사실 홍수 말고는 이 악다귀 같은 비둘기 떼들을 몰아낼 방법이 달리 없을 것만 같다. 실제로 장맛비가 내리는 동안만이겠지만, 비둘기들이 거리에서 탐욕스럽게 먹이를 쫓는 풍경은 사라졌다. 그리고 비둘기들이 집 지붕마다 잔뜩 싸질러 놓은 똥들도 씻겨 내려갔다. 심씨 아저씨 자전거상회의 간판도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