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새가 좀 사납긴 했지만, 내가 이곳에 와서 옥희 씨를 부당한 노역, 아니 부당한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는 것이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당당하게 옥희 씨를 안은 것이 자랑스럽다. 나는 그윽한 심정으로 내 사랑 옥희 씨를 바라본다. 나의 눈과 마주친 옥희 씨는 희미하게 웃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피곤하고 쓸쓸해 보인다. 나는 눈으로 옥희 씨의 눈을 쓰다듬으면서 그녀를 위로한다.
“옥희 씨, 들어가서 좀 쉬어요. 그리고 우리 곧 만나요. 내가 당신을 지켜줄게요.”
옥희 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여전히 카운터에 앉은 채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달구 아버지에게도 말한다.
“아저씨 아까는 제가 무례했던 것 같아요. 너무 속상해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아저씨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인다.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 입꼬리를 살짝 움직였지만 아저씨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질 않는다.
그런데 그때 달구가 홀의 식당으로 뛰어들어온다. 달구는 매우 황급하고 무언가에 크게 놀란 표정으로 소리친다.
“아빠! 심씨 아저씨가… 심씨 아저씨가 약을 먹고 병원에 실려 갔대요!”
“그게 무슨 소리니?”
얼마 전, 계씨 형제에게 승산이 없는 싸움을 걸었다가 크게 능욕을 당하던 날, 심씨 아저씨의 설움 가득한 눈동자가 떠오른 나는 지체 없이 물었다. 달구가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눈으로 나를 보곤 대답한다.
“어, 상문이 형도 와 있었네요. 길에서 꽃집 아주머니를 만났는데요. 심씨 아저씨가 집에서 약을 먹고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을 아주머니가 발견했대요. 지금 병원으로 실려 갔어요. 어쩌면 좋죠.”
“으으으.”
짧고 느리고 굵은 신음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다. 달구 아버지가 카운터에서 일어서며 기지개를 켜듯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벌리고 외마디 신음소리를 내뱉은 것이다. 그 모습이 내 눈에는 길고 긴 잠에서 막 깨어난 거인이 한 번도 쓴 적이 없어서 온몸에 고스란히 축적된 자신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입 밖으로 토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을 억누르던 답답하고 거추장스럽고 까탈스러운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려는 고독한 수고로 느껴졌다.
나는 달구네 식당에 오던 길에 보았던 도로를 질주하던 구급차가 떠올랐다. 왠지 불길한 느낌을 안기던 구급차의 사이렌소리, 그 구급차 안에서는 가늘고 큰 바퀴를 천천히 굴리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아침인사를 건네던 한 사람이 고통에 겨운 채 생의 마지막을 견뎌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 이후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허망하고 비통할 뿐이다. 몇몇 사람들의 절실한 기원에도 불구하고 심씨 아저씨는 결국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신변과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오토바이 가게가 들어선 이후, 아무도 자전거를 타지 않으려 하면서 심씨 아저씨의 살림은 몰라보게 궁색해졌고, 결국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심씨 아저씨는 가게 문을 닫지 않기 위해 사채까지 끌어다 쓴 모양이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심씨 아저씨에게 말도 안 되게 높은 이자율을 적용한 사채를 대준 이는 세탁소 박씨가 소개해준 사람이라고 한다. 심씨 아저씨는 그렇게 끝까지 철저하게 농락을 당했던 것이다. 물론 심씨 아저씨의 선택은 이해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부인과 어린 두 딸을 그가 그토록 힘겨워했던 땅에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족을 잃은 것만큼이나 슬퍼하면서 통곡을 했다.
“결국 사람이 죽는 일까지 벌어졌구나. 어떤 인심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어. 사람을 죽이는 게 인심이라니 기가 막히구나.”
그렇게 말씀하신 아버지는 너무나 큰 슬픔에 잠긴 나머지 며칠 사이 몰라보게 수척해졌다. 어머니는 수전증을 앓는 사람처럼 손끝을 바르르 떨면서 뜨개질을 계속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