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나의 기지로 심씨 아저씨는 자해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계씨 형제로부터 폭력을 당한 것에 대해서는 심씨 아저씨가 부순 유리창 보상을 그쪽에서 감면하는 조건으로 서로 간 합의를 봤다고 한다. 아버지는 심씨 아저씨에게 계씨 형제나 세탁소 박씨에게 따끔하고 매운맛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려서 물어줄 건 물어주고 받아낼 건 받아내라고 했지만, 심씨 아저씨는 그만 모든 것이 귀찮고 면구스럽고 속상하기만 한 모양이다. 아버지에게 이렇게 자신의 심사를 토로한 걸 보면 말이다.
“아유, 그냥 내버려둘래요. 어리석어서 세상의 속도를 못 따라가는 제가 못난 거죠. 정말 저 자신이 한심하기만 해요. 그냥 내버려둘래요.”
아버지는 심씨 아저씨의 말을 내게 전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심씨 그 사람도 허우대가 얼마나 좋아. 그런데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네. 느리고 착한 삶이 모질고 빠르고 영악한 것들에게 계속 내몰리고 있어.”
아버지의 말처럼 심씨 아저씨도 달구 아버지만큼은 아니더라도 키가 농구선수처럼 크다. 심씨 아저씨는 이십 년 넘게 우리 동네에서 자전거를 팔거나 고쳐온 사람이다. 그는 키가 큰 자신의 몸에 걸맞게 자신만의 자전거를 하나 고안해냈는데, 그 자전거는 보통 자전거보다 바퀴가 두 배는 크고 안장의 위치 역시 훨씬 높은 자전거이다. 그 자전거는 동네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는데, 날씨가 좋은 아침이면 심씨 아저씨가 그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천천히 한 바퀴 돌면서 동네 어르신들이나 꼬마들에게 밝은 인사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어젯밤 잘 주무셨어요?’ ‘얘들아 좋은 아침이구나. 즐겁게 뛰어놀아라.’ 동네 사람들은 그의 아침인사를 사랑했다. 나 역시 그의 인사를 받은 꼬마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심씨 아저씨는 자신의 자전거 타기를 그만두어버렸다. 비둘기가 우리 동네에 들어올 즈음부터였다. 그리고 곧이어 오토바이 상회가 들어선 이후로는 동네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심씨 아저씨의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 자전거는 지금쯤 심씨 아저씨의 자전거 상회 한구석에서 녹이 슬어가고 있을 것이다. 오로지 심씨 아저씨만 탈 수 있었던 바퀴가 큰 자전거. 활짝 웃으며 그 긴 다리로 페달을 저으며 바퀴가 큰 자전거를 끌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자신만만한 심씨 아저씨의 모습을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동네 어르신들은 크고 둥근 심씨네 자전거가 이 동네에 미끄러지듯 다니던 때가 좋았다고, 말씀들을 하시곤 했지만 그 시절이 다시는 돌아오지는 않았고, 그렇게 말했던 어르신들도 지금은 이 동네를 거의 다 떠나고 없다.
나는 오늘 밤, 심씨 아저씨의 자전거를 상상하면서 시를 써야겠다. 지금은 없어진, 그리고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자신의 눈처럼 소중히 여기고 아끼며, 사람들 중에서 가장 속도가 느린 사람의 속도에 자신의 속도를 맞추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던 시절의 이미지를 심씨 아저씨의 느린 자전거를 통해 불러내보는 것이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어머니가 꽃집 아주머니에게서 들은 말이라면서 아버지에게 말한다.
“달구네 새엄마 아들 있잖아요. 군대에서 막 제대한 애요.”
“응 그런데 왜?”
“걔가 타이어공장에 취직이 됐다네요. 그리고 계씨 형제네에서 오토바이를 하나 사서는 몰고 다닌다나 봐요.”
“흠. 요즘은 타이어공장에도 자리가 꽉 차서 사람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자리에 비해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까 말야. 음, 그렇다면 달구 새엄마가 손을 쓴 모양이군. 흠….”
아버지가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말끝을 흐린다. 그러자 어머니가 바로 말을 잇는다.
“누가 아니래요. 달구 새엄마가 계씨 형한테 따로 손을 썼으니 그리된 거죠. 두 사람이 모텔에도 드나든 것도 다 그것과 연관이 있을 테구요.”
“그 공장 인사책임자가 계씨 형제의 먼 친척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가 보군. 뭐, 이제 그런 지저분한 일에 우리 그만 신경 끕시다.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쓰다 보면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소.”
아버지가 무언가 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어머니를 도닥거린다. 아 그랬구나. 계씨 형제와 달구 새엄마가 모텔에 드나들고, 만세가 새 오토바이를 샀다며 자랑을 하고, 그런 것들이 모두 만세의 타이어공장 취업과 관련이 있었던 것이구나. 나는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 이 명확한, 명확하기는 하지만 어딘지 좀 구리고 지저분한 실체를 느끼고는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