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에도 증인이 있다구요. 세탁소 박 사장도 그 현장에 있었는데, 자해를 했다고 분명히 증언을 했어요.”
그렇게 말한 건 조서를 꾸미던 정 순경이다. 그는 그러면서 심씨 아저씨를 뜨악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자 심씨 아저씨가 나이가 훨씬 젊은 정 순경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정 순경님 그러지 마세요. 내가 그 집 창문을 깬 건 잘못했는데요, 무슨 자해를 했다고 그래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저 너무 힘들어요. 아이들 수업료도 못 내고 있는데, 지금 우리 마누라는 중학교 앞에서 호떡을 팔고 있어요. 제발 저를 그냥 놓아주세요.”
억울함에 내몰린 사람의 목소리치고는 너무나 공손한 태도다. 아마도 심씨 아저씨는 거듭되는 실패와 불운과 불행 따위들을 겪으면서 어지간히 자신감을 잃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제복을 입은 권력 앞에서 늘 주눅이 드는 법이다.
“당신은 가만히 있어, 현행범이니까.”
정 순경이 험악한 표정으로 심씨 아저씨에게 윽박지른다. 심씨 아저씨가 큰 눈을 끔벅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다시 아버지가 나선다.
“난 박씨 말을 못 믿네. 그 사람은 계씨 형제들하고 한통속이야. 이번 일 똑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겠어.”
“아니 지금 협박하는 거예요? 우리는 분명히 처음부터 현장에 있던 세탁소 박씨로부터 증언을 들었고, 법대로 엄정하게 폭력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거라구요.”
“내 아들도 현장에서 보았다고 하질 않나. 분명히 계씨 형제들이 심씨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걸 말일세.”
“아저씨는 가만히 계세요. 제삼자가 왜 여기까지 와서 공무를 방해하고 그래요. 아저씨까지 다치고 싶어서 그래요?”
왕 경장이 그렇게 비아냥거리면서 아버지를 향해 팔을 휘휘 내젓는다. 어서 집에나 가라는 뜻이다.
“정 순경 아직 멀었어?”
왕 경장이 정 순경을 재촉한다. 키보드 위에 있는 정 순경의 손가락이 빨라진다. 잠시 후 정 순경은 자신이 작성한 피의자 조서를 출력한다.
“자자, 심씨 이쪽으로 와봐. 내가 조서를 읽을 테니 잘 듣고서 도장을 찍으라구.”
정 순경은 거드름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조서를 읽어 내려간다. 심씨 아저씨는 자포자길 했는지, 아니면 숙취 때문에 괴로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다. 가만히 있다가는 심씨 아저씨가 그대로 당할 판이다. 그때 내 머릿속에 한 줄기 빛처럼 어떤 생각이 반짝하며 스쳐 지나간다. 아, 방범용 무인카메라가 있잖아.
“잠깐만요. 계씨 형제네 오토바이 상회 앞 전신주에 무인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잖아요. 그거 한번 돌려보죠. 거기에 심씨 아저씨가 자해를 했는지 아니면 계씨 형제한테 맞았는지 다 찍혀 있을 테니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왕 경장과 정 순경이 어, 하며 서로의 눈을 딱 바라본다. 당황하고 놀란 눈치가 역력하다.
“어허, 저기 괜히 참견하지 말고 어서들 집에나 가라니까.”
왕 경장이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 속에는 이미 치명적인 약점이 잡힌 자의 궁색함이 잔뜩 묻어나 있다. 그때 아버지가 준엄한 목소리로 호령한다.
“생사람을 잡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알았나? 그 무인카메라 돌려보고 만약 심씨가 맞은 게 맞으면 내가 책임지고 자네들 옷을 벗겨버리겠어.”
정 순경이 조금 전까지 손에 들고 읽어 내려가던 조서를 책상 위에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그러곤 어쩌면 좋겠냐는 표정으로 자신의 상사인 왕 경장을 바라본다. 왕 경장은 역시나 굴신의 명수다. 표정과 말투를 싹 바꾸어 아버지 앞으로 바짝 다가와서는 말한다.
“아이고 아저씨, 알았어요. 일단 그거 한번 보고서 다시 조사를 할게요. 바쁘신데 여기까지 오셔서 조사하는 데 큰 도움도 주시고 고마워서 어쩌지요.”
“한 동네에서 주민들끼리 다툼이 있으면 서로의 입장을 잘 헤아려서 화해를 유도해야지 일방적으로 힘센 쪽 편만 들면 되나.”
“아유, 언제 우리가 힘센 쪽 편을 들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하죠, 헤헤.”
정 순경이 몸집에 걸맞지 않게 너스레를 떨면서 말한다. 왕 경장이 여전히 풀이 죽은 표정으로 철제의자에 앉아 있는 심씨에게 말한다.
“자네도 일단 귀가를 하도록 해. 내가 필요하면 다시 연락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