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의 뻔뻔하기 짝이 없는 조롱과 비열함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다. 정 순경의 완력에 꺾였던 양 팔꿈치가 여전히 시큰거린다. 공무를 집행하는 경찰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비겁에 동조할 수 있는가. 공정함이야말로 그들이 첫 번째로 지켜야 하는 덕목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왕 경장과 정 순경은 사적인 친소 감정에 따라 일방적으로 계씨 형제 편을 든 것이다. 어찌 주민들이 이런 경찰을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 나는 이 회한과 서글픔에도 기가 질린다. 나는 뒷걸음질을 치면서 계씨 형제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두고 볼 거예요! 당신들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 당신들이 과연 저주를 피할 수 있는지.”
그들은 여전히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 심씨 아저씨는 어떻게 되는 건가. 먹구름이 몰려오는지 하늘이 어두워진다. 살진 비둘기들이 어두운 대기를 낮게 날고 있다.
억울하게 붙잡혀 간 심씨 아저씨의 딱한 표정과 계씨 형제들이 짓던 비웃음을 떠올리느라 참을 수 없이 울적해진 기분으로 길을 걷고 있는데, 뒤쪽에서 화약을 터뜨리는 듯한 난폭한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 한 대가 빠르게 달려오더니 내 옆에 선다. 오토바이에 타고 있는 사람은 만세다. 왜 하필 지금 또 만세와 마주쳤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는 내 기분엔 아랑곳없이 내 팔을 툭 치면서 말한다.
“야 상문, 오랜만이다. 우리 식당에 한번 놀러 오라는데 왜 안 오냐?”
만세의 얼굴을 보니, 계씨 형제와 모텔에 들어가던 그의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냉담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가 반가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널 만나고 싶은 기분이 안 들었어. 그뿐이야.”
“짜식 되게 뻣뻣하게 구네. 그나저나 이 오토바이 어떠냐. 이틀 전에 엄마가 사준 거야.”
그가 얼굴 가득 교만한 표정으로 자신의 오토바이 핸들을 툭툭 치면서 말한다. 틀림없이 계씨 형제네 가게에서 산 오토바이일 것이다.
“오토바이가 오토바이지 다를 게 뭐가 있냐.”
나는 여전히 부아가 치밀어서 냉담하게 쏘아붙인다. 그러자 만세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바뀐다. 그는 껄렁한 동작으로 담배를 꺼내 문다.
“나 다음 주부터 타이어공장에 나가게 됐어. 거기 취직이 됐거든. 그럼 또 보자.”
그렇게 말하며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씨익 웃은 그는 오토바이의 액셀러레이터를 거칠게 당긴다. 오토바이는 굉음을 일으키며 도로를 미끄러져 간다. 인도를 걷던 노인들이 오토바이가 내는 굉음에 놀라서 흠칫한다.
집에 온 나는 내 방으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층 아버지의 약방으로 간다. 아버지는 여전히 옛날 신문을 읽고 있다. 나는 아버지에게 오후에 계씨네 오토바이 가게에서 일어난 일을 그대로 말한다. 내 얘기를 다 들은 아버지가 직접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처럼 노기를 띤 얼굴로 말한다.
“인간말종들 같으니, 심씨가 얼마나 순한 사람인데… 계씨 형제가 심씨네 장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한 건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야. 심씨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술을 먹고 거길 다 찾아갔을까. 아무튼 왕 경장이나 정 순경 모두 다 계씨네와 한통속이야.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군. 경찰서라도 빨리 가봐야겠어. 네가 현장에 있었으니 나랑 같이 가자.”
당장 나가시려는지 아버지는 가운을 벗고는 점퍼를 찾아 걸친다.
“네 그래요 아버지.”
“조심해서 다녀와요.”
약방 옆 당신의 의자에 앉아 그물을 짜고 있던 어머니가 현관 앞까지 와서 아버지를 배웅한다. 여전히 어머니의 두 손에는 뜨개질바늘과 실이 들려 있는데, 어머니의 뒤쪽으로 그동안 짜여진 그물이 쭉 늘어져 있다. 어머니가 매일 쉬지 않고 열심히 짠다고 짰지만 그것은 내 눈에 폭이나 너비가 채 5미터도 되어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와 내가 지구대에 도착하니, 심씨 아저씨가 구석 쪽의 의자에 초췌한 몰골로 앉아 있고 정 순경이 그 옆에 바짝 붙어서 컴퓨터로 무언가를 작성하고 있다. 아마도 피의자 조서 따위이리라.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심씨 아저씨의 얼굴은 바닥에 쓰러지면서 생긴 찰과상 때문에 핏물이 배어 나온 채 심하게 부어 있다.
나와 아버지를 발견한 왕 경장은 귀찮은 일이라도 생겼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린다. 사실 아버지와 왕 경장은 그전에도 동네의 민원에 대한 의견 차이로 몇 번 부딪친 적이 있다.
“아니 한의원은 어쩌시고 여긴 왜 또 오셨어요?”
그의 말투에는 비아냥거림이 역력하다.
“억울한 사람이 와 있다고 해서 왔네.”
“누구요? 심씨요?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요. 지금 영업방해에다 기물파손에다 자해공갈까지, 3관왕이에요. 증인도 있는데 뭐가 억울하다는 거예요.”
왕 경장은 여전히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성의 없이 대답한다. 그와 반면 아버지는 매우 냉정하고 이성적인 표정으로 대꾸한다.
“여기 내 아들이 현장에서 다 봤다고 했네. 계씨 형제가 심씨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고 했어.”
그러면서 아버지가 나를 돌아본다. 나에게 본대로 말을 해보라는 것이다.
“네, 제가 바로 옆에서 봤어요. 심씨 아저씨가 계씨 동생에게 맞아서 쓰러졌고, 계씨 형이 쓰러진 심씨 아저씨를 발로 찼어요.”
“으흐흑.”
억울하고 분한지, 의자에 앉아 있던 심씨가 울음을 터뜨린다. 내가 다가가 그의 어깨를 다독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