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일이래요?”
하관이 무척 발달하고 눈매가 매서워서 인상부터가 신뢰감을 전혀 주지 않는 왕 경장이 말한다. 그러자 계씨 동생이 대뜸 대답을 한다.
“아이구 왕 경장님 지금 오셨구만요. 조금만 빨리 오시지.”
계씨 동생이 하는 말을 보면, 경찰은 계씨네가 부른 모양이다.
“이 자는 왜 이러고 있어요?”
왕 경장이 바닥에 쓰러져서 신음을 하고 있는 심씨 아저씨를 전혀 성의도 없이 턱으로 가리키며 묻는다.
“계씨 동생한테 얼굴을 맞아서 쓰러졌어요. 그리고 계씨 형이 쓰러진 사람의 등을 발로 찼구요.”
내가 빠르게 그렇게 말했지만 누군가가 뒤에서 어떤 완력으로 내 몸을 두 팔로 감싸는 것이 느껴진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정 순경이 나의 두 팔을 뒤에서 제압하면서 나를 일행으로부터 끌어내고 있다.
“놔요, 놔, 이거 왜 이래요?”
“조용히 하고 너는 그냥 집에나 가라.”
점심때 뭘 먹었는지 입 냄새가 심하게 나는, 뚱뚱한 체구의 정순경이 내 두 팔을 제압한 자신의 팔에 더욱 힘을 가하며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그때 회한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심씨 아저씨의 커다란 눈과 다시 마주친 나는 끌려나가지 않으려고 두 다리에 힘을 주며 완강하게 버틴다. 계씨 형이 왕 경장에게 하는 말이 들린다.
“이 작자가 자기네 자전거포 장사가 안되니까 낮술을 처먹고 와서는 다짜고짜 행패를 부리고 자해를 했어요. 오토바이도 막 쓰러뜨리고 유리문도 박살 내고. 그러더니 갑자기 자해를 하더라구요.”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자해를 한 게 아니라 계씨 형제한테 맞았어요.”
나는 다시 한번 소리친다. 그러자 마지못한 표정으로 왕 경장이 나를 한번 쳐다본다. 정 순경은 계속 뒤에서 나를 힘으로 제압하려고 하고 있다. 왕 경장은, 여전히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그 자리에 서 있던 세탁소 박씨를 향해 묻는다.
“박 사장님, 박 사장님도 여기 계속 계셨죠? 어디 한번 박 사장님이 말해보세요. 보신 대로요. 이 자가 자해를 한 게 맞아요? 아니면 맞아서 쓰러진 건가요?”
박씨가 은근하게 웃기까지 하면서 입을 연다. 나는 그가 지금 이 순간 조금이라도 진실의 편에 서주기를 바랐다. 비록 그가 그악스러운 탐욕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자신이 본 대로만 얘기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순진한 기대였던가.
“이 자가, 자기 주먹으로 자기 얼굴을 막 때리고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는 제풀에 쓰러졌어요. 나참 술 먹고 개 되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이런 사람은 오늘 첨 보네요. 평소에 순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영 안 그러네.”
“거짓말이에요. 심씨 아저씨는 맞아서 쓰러진 거예요.”
“거봐요. 내 말이 맞지. 자해를 한 거라니까.”
계씨 형의 입과 내 입에서 동시에 말이 튀어나온다. 하나는 진실의 말이고 또 하나는 거짓의 말이다. 하지만 이 순간 거짓의 말이 진실의 말을 먹어치운다. 거짓의 아가리가 진실을 삼켜버리고 만다. 내가 한마디를 더 하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정 순경이 뒤에서 내 팔목 부위를 살짝 비튼다. 팔목이 꺾인 나는 거기서 오는 고통 때문에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는 사이 왕 경장이 빠른 동작으로 바닥에 쓰러진 심씨 아저씨를 일으켜 세우고는 바로 옆 도로가에 주차된 경찰차 쪽으로 데려간다. 왕 경장은 힘에 겨운지 낑낑댄다.
“보고만 있지 말고, 좀 거들어요.”
왕 경장이 계씨 형제에게 그렇게 말하자 어이없게도 계씨 형제가 심씨 아저씨를 경찰차에 태우는 걸 돕는다. 가해자가 경찰과 한 통속이 되어 피해자의 경찰서 동행을 거들고 있는 것이다. 심씨 아저씨가 그렇게 억울하게 경찰차에 태워지고 나서야 뒤에서 내 팔목을 단단히 비틀고 있던 정 순경이 나를 놓아준다. 심씨 아저씨를 태운 경찰차는 곧 그 자리를 뜬다. 박씨 아저씨와 계씨 형제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눈을 찡긋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도대체 당신들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기나 해요?”
그러자 계씨 형과 동생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한꺼번에 나를 노려본다.
“어린 새끼가 뭘 안다고 나서.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어서 꺼져. 이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한 줄 아냐? 쯧쯧 겁도 없는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