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은 나는 집을 나선다. 산책을 하기 위해서다. 산책은, 참혹한 고민에 휩싸여 방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경우가 아니라면 내가 매일 일정하게 하고 있는 일과 중 하나다. 나는 늘 그렇듯이 남산공원을 바깥쪽으로 우회하는 코스를 잡는다. 어쩌면 그 코스만이 나에게 허용된 유일한 산책코스일 것이다. 그 코스를 제외한 다른 길은 산책하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 모두 그악스러운 비둘기 떼에게 점령당했기 때문이다. 비둘기들이 산책길을 가로막고 똥을 싸지르는 것이다. 비둘기 똥을 맞고 비둘기 똥을 밟으면서는 아무리 게으른 산책이라도 제대로 될 리가 없을 것이다.
산책을 하면서, 옆에 옥희 씨가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수십 번도 더 들었지만 옥희 씨네 식당이 쉬는 날은 아직 보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정말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을 때면 내가 식당에 찾아가면 될 것이다. 옥희 씨는 지금쯤이면 점심손님들을 치르고 설거지를 하고 있을 것이다. 개수대에 담긴 수없이 많은 그릇들을 만지고 있을 옥희 씨의 젖은 손을 상상하니, 마음이 더욱 애틋해진다.
산책을 거의 마치고 동네로 들어섰을 무렵 떠들썩한 기운이 내 주의를 사로잡는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떠들썩한 소란의 진원지는, 역시나 계씨 형제가 운영하는 오토바이 상회다. 우리 동네에서 오토바이 상회만큼 소란스럽고 왁자지껄한 곳은 또 없을 것이다.
오토바이 상회 앞에 몇 사람이 썩 가깝게 서 있는데, 계씨 형제와 세탁소 박씨 아저씨, 그리고 자전거상회 심씨 아저씨가 보인다. 걸음을 옮기면서 가만 보니 계씨 형제와 심씨 아저씨가 무언가로 다투고 있는 듯하다. 그 기세가 제법 사납다. 나는 급한 마음에 그쪽으로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결코 심씨 아저씨가 유리할 게 없는 형국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까이 가니 심씨 아저씨와 계씨 형제들이 언성을 높이고 서로 삿대질을 하며 싸우고 있다. 옆에는 가게 앞에 언제나 전시용으로 세워져 있던 새 오토바이 두 대가 볼썽사납게 넘어져 있다.
나는 빠르게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며 묻는다.
“무슨 일이에요?”
그러자, 언제나처럼 야비한 표정으로 짐짓 점잔을 빼며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한 발짝쯤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세탁소 박씨 아저씨가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그는 그러면서도 내심 재미있는 일이 생겨서 퍽이나 마뜩하다는 표정이다.
“심씨가 낮술 먹고 다짜고짜 시비를 거는 거야.”
그때 심씨 아저씨가 나를 알아봤는지 내게 말을 건다.
“어 상문이 와, 왔구나. 아, 상문아, 아 내가 정말 이치들 때문에 살 수가 없다. 오토바이 때문에 모든 것이 엉망이 돼, 됐어. 아흐흑.”
아닌 게 아니라 심씨 아저씨의 목소리는 술에 취한 듯 흐물거린다. 아저씨의 커다란 눈동자는 두려움과 노여움, 허탈함과 당혹스러움으로 꿈틀거리는 듯하다. 아저씨의 순하고 작은 몸이 술기운에 형편없이 비틀거린다. 나는 내 쪽으로 기우는 아저씨의 몸을 황급히 붙잡는다. 그때 계씨 형에 한마디 한다.
“아니 술을 처먹으려면 곱게 처먹어야지. 대낮부터 술을 처먹고 웬 행패야. 도대체 우리가 뭘 어쨌다는 거야.”
그러자 잠시 내 어깨를 짚고 숨을 몰아쉬던 심씨 아저씨가 다시 알심 있는 기세로 그들에게 대든다.
“네놈들이 이 동네에서 가게를 차린 이후, 이 동네가 엉망이 됐다고. 아무도 천천히 걷지 않고 아무도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구.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내달린다고. 네놈들이 만날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니면서 우리 동네를 어지럽혔기 때문이야!”
“쯧쯧, 한심한 소리만 골라서 하고 있네. 듣고 보니, 자기 가게가 장사가 안되니까 괜히 배 아파서 억질 부리고 있구만. 능력이 없으면 더 노력을 해야지 어디서 행패야.”
옆에서 박씨 아저씨가 한마디 한다. 그러자 계씨 형이 한마디를 더 거든다.
“그러게 말이에요. 못났으면 가만히 죽어나 있지, 말도 안 되는 싸움을 거네.”
그들의 말이 다시 심씨 아저씨의 분기를 건드렸음이 틀림없다. 심씨 아저씨는 바닥에 놓여 있던 오토바이 부속품 하나를 집어들어서는 가게 창문 쪽을 향해 던진다. 그 바람에 그만 창문 유리가 박살 난다.
“그래, 네놈들 다 해먹어라 네놈들이 이 세상 다 등쳐먹으라고.”
“아니 이 작자가 보자 보자 했더니.”
옆에서 계속 인상만 쓰고 있던 계씨 동생이 앞으로 나서며 다짜고짜 심씨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순식간의 일이다. 계씨 동생의 주먹에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심씨 아저씨가 플라스틱 인형처럼 나가떨어진다.
“아니 왜 폭력을 휘둘러요, 폭력을.”
아차 싶었던 내가 가운데로 뛰어들며 제지를 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심씨 아저씨는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고 계씨 형이 심씨 아저씨의 등을 구둣발로 걷어찬다. 심씨 아저씨의 입에서 신음이 새나온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지구대의 왕 경장과 정 순경이 불쑥 고개를 들이민다. 그들은 주민의 신뢰를 전혀 받지 못하는 불량경찰들이다. 아니다, 세탁소 박씨 아저씨, 목욕탕 손씨 아저씨, 그리고 안마당 김씨와 계씨 형제들하고만 친하게 지내는 이상한 경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