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또 며칠이 흘렀다. 게으른 맨발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던 나는 약방 앞 ‘어머니의 의자’에 앉아 있는 어머니로부터 호출을 받는다.
“거기 아들이면 잠깐 이리 온.”
뜨개질 바느질을 내려놓은 어머니의 손에는 대신 책 한 권이 들려 있다. 내가 다가가니 어머니가 수줍게 웃으신다.
“무슨 일이에요? 어머니.”
그러면서 나는 눈을 비비면서 어머니의 손에 들려진 책을 유심히 본다. 아, 그것은 문학잡지다. 필시 내 시가 발표되어 있을.
“아들, 시 잘 봤다. 좀 전에 우체부가 가져다줬어. 이번 호에 두 편을 발표했네. 내 생각에 시를 쓴 시인보다 시인의 엄마가 먼저 시를 보는 게 반칙은 아닌 것 같은데, 왜냐하면 나는 시인을 낳은 사람이니까.”
나는 사실 시를 발표할 때마다 내 시가 발표된 문학잡지를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잘 보여 드리질 못했다. 부끄럽기도 했고 민망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 시가 두 분의 삶에 형편없이 미치지 못한다는 자괴감을 떨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속적인 기준으로만 따지면 훨씬 더 유리한 법학과를 내팽개치고 문학의 길로 들어선 나를 그냥 묵묵히 지켜봐 준 분들 아니던가. 그때 내 아버지는 폐품을 팔아서 고아원을 남몰래 도와온 어떤 할머니의 미담기사를 신문에서 찾아 읽어주시면서 이 할머니의 삶보다 아름다운 시를 쓸 자신이 있으면 시를 쓰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어찌 그 말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내가 그 할머니의 삶보다 아름다운 시를 썼는가. 그렇게 자부할 수 있는가. 언제나 나는 나 자신에게 스스로 던진 질문 앞에서 고개를 가로저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내가 쓴 시를 보여 드리는 건 언제나 조심스럽다 못해 황송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어머니는 막 도착한, 내 시가 실린 문학잡지를 나보다 먼저 펼쳐보시곤 나를 부른 것이다.
“아, 어머니, 내 시를 읽어보셨어요?”
내가 붉게 상기됐을 얼굴로 그렇게 묻자 어머니가 너그럽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럼 읽어봤지. 아주 아름답던데. 아들은 좋은 시인이야.”
그러면서 어머니는 눈앞에 책을 펼쳐들고 내 시를 읽기 시작한다. 내가 말릴 사이도 없다.
사랑
모르고 보낸 사람 얼마나
많은가
그 사람, 양떼처럼
한 움큼의 세월
몰고 서산 넘어갔으니
사랑에 눈 맞추지 않던 저녁
나는 아픈 것도 모르고
붉은 밤을 앓았네
시작도 안 하고
마치지도 않았네
나는 차마
사람도 아니었지
아, 어머니가 읽으신다, 내 시를. 소리 내어 또박또박 읽으신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빗줄기 같고 물결 같다. 어머니의 몸 안에, 하루 종일 뜨개질만을 하실 뿐인 어머니의 작고 느린 몸 안에 저런 절절한 목소리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어머니가 읽은 시는 사랑의 전조에 사로잡혀 쓴 시들 중 한 편이다. 그러니까 옥희 씨를 생각하면서 쓴 시들 말이다. 아직 옥희 씨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이전, 숱하게 보냈던 불면과 번민의 밤에 가슴을 옥죄며 고통에 겨워하며 쓴 시들이다. 그런 아들의 사랑 시를 어머니가 먼저 보고 읽으신다.
어머니와 나의 눈이 부딪친다. 어머니의 눈이 도랑물에 맑게 씻겨진 조약돌처럼 빛난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어머니에게조차 보여 드릴 수 없는 시를 쓴다면, 그 시인은 얼마나 불행할 것인가. 아버지에게조차 보여드릴 수 없다면 그 시는 얼마나 어리석고 못난 시일 것인가. 나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어머니의 손을 잡는다. 어머니도 내 손을 맞잡는다. 이제는 더 이상 숨기지 않아야겠다는, 시를 발표하면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보여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