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이제는 한결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옥희 씨가 자신의 말에 농담을 섞는다.
“그럼 이 어둡고 험한 밤길을 저 혼자 보내려고 했어요?”
저녁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을 가리켜 어둡고 험한 밤길이라고 말하는 것은 명백한 농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자면, 나는 정오의 태양 아래에 옥희 씨를 혼자 내버려두는 것에도 어쩐지 좀 서운한 기분을 느낄 것만 같다. 그래, 내가 원하는 것은 항상 같이 있는 것이다. 그림자가 되어 항상 붙어 있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는데. 아, 이 마음을 어쩌랴.
옥희 씨와 나는 달구네 식당 쪽을 향해 길을 걷는다. 두 사람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떼어놓는다. 그 사이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한다. 비둘기들의 똥으로 지저분한 가로등 전등 밑으로 찬란한 사랑이 지나간다. 나는 지금의 심상을 잘 기억해뒀다가 시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저분한 가로등 밑을 지나는 찬란한 사랑의 이미지.’ 사랑과 시가 만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다.
달구네 식당까지 2백 미터나 남았을까. 옆에서 차분히 보조를 맞추면서 발걸음을 옮겨놓던 옥희 씨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어머, 하고 짧게 소리를 지른다.
“저기 아주머니 같은데.”
옥희 씨는 길 건너 교차로의 대각선 방향을 손으로 가리킨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옥희 씨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5층 규모로 지어진 시내에서 가장 큰 모텔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달구네 새엄마가 정확히 옥희 씨가 가리킨 곳에 서 있다. 낮에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옆에는 계씨 형이 있다. 제법 키가 껑충한 계씨 형은 어디서든지 눈에 잘 띈다. 달구 새엄마는 계씨 형에게 딱 붙어 있다. 자세히 보니 팔짱을 끼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모텔 문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고 있는 게 아닌가.
“어어 저 사람들이.”
내 입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튀어나온다. 달구 새엄마와 계씨 형, 두 사람은 결국 모텔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들이 모텔 안으로 사라지자 나는 머릿속이 멍해진다. 도대체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 믿어지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저게 무슨 일일까. 낮에 두 사람이 골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았을 때만 해도 긴히 의논할 문제가 있겠거니 했다. 나는 그것이 만세의 타이어공장 취직과 관련된 문제일 거라고 막연히 짐작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 달구의 새엄마인 만세 엄마가 계씨 형과 모텔에 들어간 것이다. 아, 당혹감을 넘어서 처참한 기분까지 든다. 마치 안 보았으면 좋았을 참상을 목격한 것만 같다. 두 사람이 왜 이 어두워진 시간에 모텔에 들어갔으며, 그들이 모텔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입에 담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하필이면 그 모습을 옥희 씨와 함께 보게 된 것이 너무나 난처하고 민망할 따름이다.
“아주머니 맞죠? 아주머니가 계씨 형이랑 모텔에 들어가셨어요.”
그렇게 말하는 옥희 씨의 목소리가 무척 침울하다. 나 역시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공연히 내가 옥희 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네, 맞아요. 아, 이를 어쩌지.”
“일단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좋은 모습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옥희 씨의 목소리는 전보다 한결 차분하다. 그런 것을 보면 옥희 씨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지혜롭고 이성적인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는 진작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옥희 씨가 말을 잇는다.
“사실 저는 식당에서도 아주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자주 보았어요. 아주머니가 유독 계씨 형에게 친절하게 대했거든요. 마치 사심이 있는 사람처럼 정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친절했죠. 아저씨의 눈을 피해서 계씨 형에게 술을 따라주기도 하고,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 계씨 형의 허벅지 같은 데를 슬쩍슬쩍 만지기도 했어요.”
옥희 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달구 새엄마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경멸감 때문에 치가 떨리는 듯했다. 아아, 그랬구나. 사정이 그러했구나. 주로 주방에서 일하는 옥희 씨가 달구 새엄마의 부정을 보았다면 홀에서 일하는 달구나 달구 아버지가 그것을 보지 못했으리라는 법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