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희 씨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스님으로부터 덕담을 들어서 그런지, 스님이 따라주는 차는 오늘따라 더욱 맑고 향기로운 것 같다. 나와 옥희 씨는 스님과 좀 더 정담을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님에게 합장할 때는 절로 마음이 조신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스님이 이 사랑의 메신저라도 되는 것처럼.
옥희 씨와 나는 손을 잡고 산길을 내려왔다. 체온에도 일종의 향기가 있다는 것을 나는 옥희 씨의 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온도와 향기는 내 몸에 나긋하게 퍼져서 내 몸과 영혼을 향기롭게 할 것이다. 비록 내려가는 길이지만 마음은 조금도 허전하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우물물에는 여전히 옥희 씨와 내가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둘이 아니라 하나인 우리가 말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뉘엿뉘엿 서쪽 하늘이 붉어져 왔다.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확히 우리 앞에 섰고 우리는 그 버스를 탔다. 우연한 결과이겠지만, 버스의 기사님은 우리를 처음 이곳에 태워다준 첫 번째 버스의 기사님이었다. 이런 사소한 우연조차도 옥희 씨와 나의 사랑을 엄호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마음이 더욱 기꺼웠다. 시내에 도착한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옥희 씨, 매일 손님들에게 상을 차려주기만 했잖아요. 오늘 저녁은 나랑 같이 밥을 사먹어요.”
“좋아요. 제가 사드릴게요.”
“하하하. 저도 돈 있어요.”
나는 옥희 씨를 데리고 시내를 걸었다. 비둘기들이 하루 종일 찍찍 똥을 뿌려대는 거리로 유명한 전신주와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빼곡한 곳을 피해서 좁은 골목을 택해서 걸었다. 그런데, 어떤 골목으로 접어들었을 때, 저 반대편 골목에서 오토바이 상회를 하는 계씨 형제 중 키가 큰 쪽인 계씨 형과 달구의 새엄마가 함께 있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은 딱 붙어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식당이 쉬는 날이라고 했으니 달구 새엄마도 외출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계씨 형과는 해도 저물고 있는 이 시간에 무슨 이야길 나누고 있는 것일까. 나는 두 사람을 보았지만, 옥희 씨는 두 사람을 못 본 것 같았다. 나는 옥희 씨에게 달구 새엄마가 저쪽에 있다는 말을 할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뭘 먹을까요?”
“음, 떡볶이랑 김밥 같은 게 먹고 싶은데요. 저는 지금까지 떡볶이를 딱 한 번 밖에 안 먹어봤어요. 김밥은 두 번인가 세 번 먹어봤구요. 안 믿어지시죠? 하하, 아무튼 둘 다 먹어본 지 정말 오래됐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옥희 씨는 아이처럼 활짝 웃는다. 아, 하마터면 나는 그런 옥희 씨를 두 팔로 꼭 안을 뻔했다. 그녀가 소녀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처럼 천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태까지 떡볶이를 한 번 밖에 먹어보지 못했을까. 떡볶이는 명랑하고 밝고 순수한 소녀들의 음식이다. 소녀들은 떡볶이를 먹으며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조금씩 조금씩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녀가 떡볶이를 한번밖에 먹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그녀에게 그런 소녀의 시절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옥희 씨의 아버지는 소녀의 시절마저도 타락한 욕망의 유혹이나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금기시한 것이다. 아 그것은 얼마나 가난하면서도 엄혹한 저항인가.
“네 좋아요. 저도 떡볶이랑 김밥 정말 좋아하거든요.”
나는 가급적 쾌활하고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을 한 것은, 다른 소녀들처럼 평범한 소녀 시절을 겪지 못한 옥희 씨에 대해서 절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옥희 씨를 데리고 평화분식집으로 간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가 하는, 여자고등학교 앞에 있는 분식집이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나도 가끔 평화분식에서 떡볶이를 사먹고는 했다. 그곳은 여자고등학교의 문예반 친구들을 만나서 시를 주고받던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