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물가에서 자리를 옮겨 내방객들에게 차를 주는 사랑채로 향한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사랑채 안으로 들어가니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찻물을 끓이면서 불경을 읽고 있다. 몇 번 안면이 있는 스님이다. 법명이 아마 도명이라고 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도명 스님.”
내가 합장을 하면서 인사를 건네자, 스님도 합장을 한다. 그러자 옥희 씨도 합장을 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늘 혼자 오시더니, 오늘은 귀한 분과 함께 오셨군요.”
도명 스님이, 자리에 막 앉는 나와 옥희 씨를 보더니, 그렇게 말한다. 나직하고 온화한 목소리이다. 나는 뭐라 대꾸를 하지 못하고 옥희 씨와 도명 스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다. 그러자 대담하게도 옥희 씨가 도명 스님에게 묻는다.
“스님, 제가 상문 씨에게 귀한 사람처럼 보이세요?”
“네,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고 한눈에 그렇게 보여요. 두 사람에게서 맑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요. 이 우설차처럼 말이에요.”
도명 스님이 옥희 씨 앞에 차 한 잔을 내놓는다. 그리고 다시 한 잔을 따라 내 앞에 내놓는다. 사실 도명 스님은 말씀을 많이 하는 분이 아니다. 내가 혼자서 절을 찾을 때면, 길에서 마주치거나 일주문 앞에서 마주쳐도 조용히 합장만을 할 뿐 먼저 말을 건네거나 하는 법이 없었다. 차를 청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묵언수행을 하는 승려처럼 말없이 차를 끓여서 내주실 뿐이었다. 조금만 살펴보면 그건 나뿐만 아니라 모든 내방객들에게 공통적으로 대하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일상의 수심을 안은 사람들이 오히려 마음 편하게 이곳을 찾아서 맑은 차 한 잔 마시면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도명 스님은 뜻밖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스님으로 하여금 입을 열게 한 것일까. 사정이 이렇다면, 내가 한마디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도리는 아닌 듯싶다.
“사실 스님, 오늘 저와 함께 온 사람은 제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 사랑을 의심하지 않아요.”
그러자 늘 무표정한 것처럼 보였던 스님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번진다. 스님도 웃으실 줄 아는구나.
“네 소승의 눈에도 그렇게 보여요. 밝은 달이 두 사람 머리 위에 떠 있는 것 같아요.”
“스님, 어떤 사랑이 좋은 사랑인지 한 말씀 해주실 수 있으세요?”
그렇게 물은 건 내가 아니라 옥희 씨다. 나는 스님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우설차 한잔을 마신다. 정하고 향기롭다.
“청하니 대답할게요. 부처님께서는 모든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 즉 ‘나’라고 하는 경험에 의한 자기 정체성에 모든 사람들이 구속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을 하려거든 먼저 아상我想에서 벗어나라고 하셨어요. 그게 사랑의 전제조건인 셈이죠. 자신한테 매여 있거나 묶여 있는 사람은 사랑을 하지 못하고 집착밖에 할 수 없으니까요. 아상을 버리는 최고의 사랑을 유마경에서는 불이不二라고도 하지요. 중론에서 중도라고 말한 것이 바로 그거예요. 어쩌면 삼라만상이 유심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최고의 사랑을 표현한 게 아닌가 싶어요. 우주가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이라는 말은, 사랑도 미움도 모두 마음 쓰기에 달렸다는 거잖아요. 제가 두 분에게서 맑은 사랑의 기운을 느낀 것은, 두 분의 눈빛이 모두 아상을 버리고 오로지 상대만을 바라보고 위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스님의 말이 끝났을 때, 나와 옥희 씨의 표정은 하나같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것은 부끄러움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사랑에 대한 묘한 자긍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동시에 함께 느낀 것이다. 부처님이 가르친 것처럼 나를 버리는 것이 사랑의 전제조건이라는 건은 어쩌면 자명한 진실일 것이다. 사랑은 내가 즐겁기를 바라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그것에서 바로 기쁨을 얻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내가 즐겁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한낱 집착이나 욕망밖에 더 되겠는가. 나는 옥희 씨가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언제나 옥희 씨가 행복하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덜 기쁘고 덜 행복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 이 말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의 기쁨이 바로 나의 기쁨이고, 그녀의 행복이 바로 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옥희 씨와 나는 불이不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