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누나랑 재미있게 잘 놀다 와요.”
달구가 여전히 어정쩡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내 등을 떠밀며 말한다.
“그래, 알…았어.”
“달구야 다녀올게.”
옥희 씨가 밝게 웃으며 달구를 향해 손을 흔든다. 나도 옥희 씨를 따라 달구에게 손을 흔든다. 그리고 옥희 씨를 따라 걸어간다.
재게 걸어서 옥희 씨 옆에 선 나는 옥희 씨의 옆얼굴을 유심히 바라본다. 내 사랑의 얼굴, 사랑하는 영혼이 담긴 얼굴. 얼굴이라는 얼이 담긴 골이라는 뜻의 ‘얼골’에서 나온 말 아니던가. 나는 이제 이 얼굴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옥희 씨가 나를 바라보면서 묻는다.
“상문 씨, 제 얼굴을 쳐다보는 게 좋아요?”
나는 솔직하게 대답한다.
“네, 좋아요. 당신 얼굴을 바라보는 게 너무 좋아요.”
“그러면 마음껏 바라봐요. 다행히도, 저도 당신이 내 얼굴을 바라보는 게 좋아요.”
“하하,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네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나는 사랑에도 도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것이 사랑의 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옥희 씨와 이 사랑의 도를 하나하나 실천할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며 나란히 길을 걸을 것이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며 별을 함께 바라볼 것이며,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며 함께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만의 길을 만들 것이다. 이 길의 초입에, 삶이 외롭고 고통스럽지만, 그 삶을 비겁으로 내몰지 않는 바르고 착한 이들을 초대하기 위한 불을 켜둘 것이다. 나는 이런 나의 생각을 옥희 씨에게 전달하기 위해 옥희 씨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그 눈동자가 내 눈동자를 알아본다. 그녀가 이렇게 얘기한 걸 보면.
“상문 씨, 지금 외롭고 쓸쓸한 자들을 위해 불을 켜둔 어떤 길을 상상하고 있군요. 그렇죠?”
“아, 맞아요. 옥희 씨.”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참, 옥희 씨, 저는 오늘 옥희 씨랑 작은 산사에 갈까 하는데요. 산사라고 해서 깊은 산 속에 있는 건 아니구요.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만 가는 곳에 아담하게 지은 절이 있거든요. 그곳에서는 방문객들에게 차를 내주는데, 차 맛도 아주 좋고, 또 그 절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풍경이 아주 그만이거든요. 그리고 앞마당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참 물이 맑아요.”
내가 내심 생각해놓은 옥희 씨와의 첫 번째 데이트는 매년 두세 번씩 혼자서 찾곤 했던 절집에 가는 것이었다. 그 절집 마당에는 오래된 작은 우물이 있는데, 우물물이 너무나 맑고 환해서 거울처럼 우물을 들여다보는 사람을 비추곤 한다. 나는 언제나 그 절집 마당의 우물을 보면서 생각했었다. 나에게도 사랑이 찾아오면, 그 사랑을 이곳에 데려오겠다고. 그래서 그 우물을 같이 바라보면서,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우리의 사랑도 영원하기를 발원하겠다고. 아울러 우물에게 말하고 싶었다. 우리의 얼굴을 잘 보고 잘 기억해달라고.
“아, 좋아요. 저도 작은 절 같은 데 가는 걸 좋아해요. 아빠와 함께 살 때, 아빠가 자주 데리고 다니셨거든요. 차 맛도 기대되고 우물도 기대돼요.”
옥희 씨가 환한 얼굴로 대답한다. 아, 드디어 내 사랑과 함께 우물을 바라볼 수 있겠구나. 그리고 우물에게 말걸 수 있겠구나. 우리의 얼굴을 잘 봐달라고, 우리의 얼굴을 잘 기억해달라고.
옥희 씨와 나는 교외로 나가는 버스들이 서는 정류장에서 버스표를 사고 버스를 기다린다. 옥희 씨와 나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수심 깊은 표정으로 길을 가던 사람들이 한 번씩은 다들 바라볼 정도로 말이다. 나는 그들을 감염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인사하면서 말이다.
“안녕하세요. 당신도 사랑하세요. 사랑을 하면서 살기에도 이곳에서의 시간은 너무 짧습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옥희 씨도 나를 따라서 그들에게 인사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당신도 사랑하세요. 사랑을 하면서 살기에도 이곳에서의 시간은 너무 짧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