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일요일이 오기까지의 며칠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나는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다. 내가 그 시간 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는지, 나는 정말 새카맣게 모른다. 오로지, 나는 옥희 씨만 생각했다. 분명한 것은 그것뿐이다. 옥희 씨의 눈동자를 허공에 그려서 내 눈동자에 가져다 대보기도 하고, 사방에서 웅얼거리는 옥희 씨의 목소리를 손으로 떠서 내 귀에 집어넣기도 했다.
단지 며칠일 뿐이지만 시간은 더디 갔다. 시간은 고인 물처럼 흐르지 않았다. 나는 애가 타는 마음을 식히려고 공연히 창문을 스무 번씩이나 열고 닫았다. 그리고 드디어 옥희 씨를 만나기로 한 일요일이 되었다. 옥희 씨와의 첫 데이트를 축복이라도 하는지, 더 좋기를 바랄 수 없을 정도로 날씨도 쾌청했다.
나는 휘파람을 부르며 청바지를 입고 푸른 줄무늬의 남방을 입는다. 그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약방 앞에서 한결같은 자세로 그물을 짜고 있던 어머니가 나를 보더니, 반색을 하며 한마디 하신다.
“오, 우리 아들이 드디어 외출하는구나. 그동안 방에서 옴짝달싹을 안 하기에, 또 어떤 훌륭한 생각을 하나 했어. 그 훌륭한 생각이 이제 끝난 모양이네. 밖에 나가서 누굴 만나고 무얼 할지는 모르지만, 좋은 일이 많기를 바란다.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에게도 그 좋은 일을 나눠주려무나.”
어머니가 말을 마치자마자 이번에는 약방 안에서 아버지가 얼굴만을 내민 채로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네 어머니가 다 했구나. 하하하.”
아, 나의 어머니와 나의 아버지. 욕심 없이, 검소하고 깨끗하게 살아오신 분들. 이분들의 사랑으로 내가 탄생했다. 나는 이 두 분의 사랑의 결정체다. 그런데 어찌 함부로 더러운 것을 생각하고 함부로 옳지 않은 생각에 빠질 수 있겠는가.
나는 이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버지, 어머니, 내가 며칠 동안 방에서 한 훌륭한 생각이란 바로 당신들이 내게 가르쳐준 사랑이에요. 아버지 어머니, 저는 지금 그 사랑을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거예요.”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말하지는 못한다. 쑥스러워서이기도 했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두 분은 마땅히 내가 하는 일을 알고 계실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렴, 두 분은 다 알고 계실 것이다.
걸음을 내딛는 발걸음이 참으로 가볍다. 이마에 부딪히는 바람도 참 향긋하다. 간간이 못된 비둘기들이 내 머리와 어깨를 겨냥해 똥을 싸질렀지만, 나도 이제 웬만한 똥 세례쯤은 피할 줄 안다. 막무가내로 당하지만은 않는 것이다.
“이 녀석들아, 내 어머니가 그물을 완성하는 날, 니네도 끝나는 거야. 그때까지 실컷 먹고 실컷 똥이나 싸라.”
나는 벙긋 웃으면서, 비둘기들이 실제로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양 그렇게 말한다. 이것 또한 사랑이 건네는 관용이자 여유일 것이다. 드디어, 달구네 집, 비둘기식당 앞에 도착한다. 시간을 보니, 두 시 오십오 분이다. 식당 안쪽을 살피려 유리문에 얼굴을 들이대는 것과 동시에 문이 열리고, 옥희 씨가 나온다. 아, 나의 사랑 나의 옥희 씨.
눈부시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그녀는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허리에는 검은 리본을 매달았다. 그리고 빨강 구두를 신었다. 영화 속에서 막 걸어나온 듯한 모습이다.
“형, 옥희 누나 정말 예쁘죠?”
달구다. 달구가 옥희 씨 뒤를 따라서 밖으로 나와서는 해죽 웃으며 한 말이다. 사랑의 전령 역을 맡았던 달구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역력하다.
나는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더듬거리며 대답한다.
“으응, 저엉…말 예쁘다. 옥희 씨.”
“맞아요. 영화배우나 탤런트보다도 더 예뻐.”
“자꾸 그러면 놀리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
달구가 한 마디 더 보태자, 부끄러운지 옥희 씨가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