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희 씨의 편지를 한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그러는 사이, 주체할 수 없이 두근거리기만 하던 가슴이 차분하게 진정이 되었다. 마치 어떤 따뜻한 손이 와서 내 뒷머리를 쓰다듬고 내 어깨를 토닥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옥희 씨의 편지는 아름다운 한 편의 시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이것이 시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을 우리가 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의 그것처럼 곱고 깨끗하고 순수한 무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목소리로 그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나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나도 당신을 좋아해요, 당신도 내가 고마운가요?’
당연히 나도 그녀가 고맙다. 내 사랑에 아름다운 응답을 보내준 그녀가 너무나 고맙다. 그녀가 너무 착해서 고맙고, 그녀가 너무 아름다워서 고맙다. 코끝이 시큰해지는가 싶더니 바보처럼 눈물이 나려고 한다. 옥희 씨는 편지에서 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많이 외로워요. 내 눈동자도 외롭고 내 심장도 외롭고, 내 그림자까지 외로워요.”라고. “사랑은 외로운 사람의 일이고 진실한 영혼이 하는 일”이라고. 아, 그녀는 사랑을 알고 사랑을 원하는 외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마땅히 그 외롭고 진실한 영혼을 지켜야 할 것이다. 그것을 해치려는 모든 것들로부터 그녀를 지켜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인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사랑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바쁜 시간이라는 건 알지만 나도 모르는 나의 손이 휴대폰 플립을 열고 달구의 번호를 누른다. 신호음이 세 번 정도 울렸을 때 달구가 전화를 받는다.
“달구야 많이 바쁘지?”
달구가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니에요. 지금 막 점심 먹은 손님들이 우르르 빠져나가서 그리 바쁘지 않아요.”
“아, 다행이구나. 저기 지금 주인아주머니는 뭐 하시니?”
“잠깐 누워 계신다고 안방에 들어가셨어요. 새어머니는 원래 점심 손님이 물러가면 한숨 주무세요.”
“아버님은?”
“아버지는 카운터에 앉아서 TV 보시구요.”
“옥희 씨는?”
“옥희 누나는 설거지하고 있어요. 참 형, 옥희 누나가 편지에 뭐라고 썼던가요?”
“달구야 사실은 지금 내가 옥희 씨 편지를 읽고는 너무나 옥희 씨가 보고 싶어서 전화를 한 거야. 옥희 씨도 나를 좋아한다는구나. 지금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달구야 미안한데, 옥희 씨 좀 바꿔줄 수 있어?”
“물론이죠. 와, 나까지 가슴이 설레는 걸요. 형, 잠시만 기다려요.”
달구가 주방으로 뛰어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비록 휴대폰을 통해서이지만 곧 옥희 씨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거라는 걸 생각하니, 다시금 가슴이 재게 뛰기 시작한다. 옥희 씨에게 처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이토록 설레고 이토록 기쁜 마음을 어떤 말로 전해야 할까. 그때 옥희 씨의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들린다.
“상문 씨인가요?”
“아, 옥희 씨, 네 저 상문이에요.”
“…”
“옥희 씨, 당신의 편지를 읽었어요. 저도 당신처럼 말하고 싶어요.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당신이 정말 좋아요.”
“네, 상문 씨, 저도 상문 씨가 고마워요.”
옥희 씨의 말과 함께, 누군가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와우, 라고 환호성을 지르는 게 들린다. 아마도 달구가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다가 기분이 좋은 나머지 낸 소리인 모양이다. 그 환호성에 격려를 받았다고 생각한 나는 옥희 씨에게 대뜸 만나자는 말을 한다.
“옥희 씨, 우리 만나요. 만나고 싶어요. 당신을 보고 싶어요. 당신을 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식당 쉬는 날 만나요. 식당 쉬는 날이 언제죠?”
“아… 그래요. 우리… 만나요. 사실 이번 주 일요일이 쉬는 날이에요. 한 달에 한 번 쉬는 날인데, 일요일이 그날이에요.”
“와, 잘 됐어요. 그럼, 오후 세 시에 제가 식당 앞으로 갈게요.”
“네, 그래요 상문 씨, 일요일 오후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