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딩동, 하고 울린다. 문자가 수신됐음을 알리는 소리다. 휴대폰 플립을 여니, 아닌 게 아니라 달구로부터 문자가 와 있다.
‘형, 저 지금 형네 집앞이에요. 잠깐만 나오세요.’
집앞이라고? 달구가 웬일이지? 소리도 표정도 없는 디지털 신호로 만들어진 문자일 뿐인데도, 달구의 메시지는 묘한 흥분감 같은 걸 안긴다. 이 기분 나쁘지 않은 전조의 정체는 과연 뭘까.
알 수 없는, 하지만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은 흥분감의 유도에 의해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빠르게 내리밟고 바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달구가 숨을 헐떡이며 문 앞에 서 있다. 뛰어오면서 길에서 문자를 보낸 모양이다. 하긴, 지금은 식당이 한창 바쁠 점심시간이다.
“달구야. 이 시간에 웬일이니?”
“형, 형에게 줄 게 있어서 왔어요.”
그렇게 말하는 달구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있다. 달구가 호주머니에서 편지봉투를 꺼내 내 앞에 내민다.
“옥희 누나가 형에게 전하라고 한 편지예요.”
“뭐 옥희 씨의 편지라고?”
달구의 말과 나의 대답은 거의 동시에 튀어나왔고, 우리 둘은 거의 동시에 활짝 웃는다. 아, 내 사랑으로부터 답이 왔구나. 답을 바라지 않은 사랑에 답을 보내는 것 역시 사랑이 부리는 알 수 없는 조화일 것이다. 사랑이 부리는 일, 나는 사랑이 부리는 일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조금의 거짓도 없이, 경거망동도 없이, 욕망과 심술도 없이.
“형 저 빨리 가봐야 해요. 옥희 누나가 뭐라고 썼는지, 나중에 꼭 알려줘요. 하하.”
달구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자신이 뛰어왔던 방향으로 뛰어간다. 제 아버지를 닮아 몸집이 큰 그가 씩씩하게 뛰어가는 걸 보니 공연히 마음이 뿌듯하다. 그의 앞길을 부디, 비둘기 따위가 막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편지를 가슴에 품고 방으로 들어온다. 약방 안에 계신 아버지와 그 앞에서 뜨개질을 하시는 어머니가 곁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지지만, 가슴이 너무나 벅차게 뛰고 있어서 아무런 인사를 드릴 수가 없다.
방에 들어온 나는 꼭 그래야만 하는 사람처럼 방의 전등불을 끄고, 작년 크리스마스에 사두었던 노란색 양초에 불을 붙인다. 그러곤 책상 앞에 앉는다.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며 편지봉투를 쓰다듬는다. 두근대는 심장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심장 박동에 따라 조금씩 떨리는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편지봉투를 열고 편지를 꺼낸다. 거기에 정갈한 손 글씨로 씌어진 옥희 씨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 내 사랑의 목소리, 목소리의 무늬가 들어 있다.
상문 씨에게
안녕하세요. 상문 씨, 답장이 늦은 것 미안해요.
상문 씨가 제 답장을 기다렸을지 아니면 기다리지 않았을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상문 씨가 제 답장을 기다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답장을 쓰고 있어요.
상문 씨, 나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상문 씨처럼 좋은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게 기뻐요. 상문 씨는 시인이잖아요. 시인은 아름다움과 옳은 것을 옹호하고 비겁하고 추한 것을 경멸하는 사람이죠. 그런 시인이 나를 좋아해 줘서 나는 참 기뻐요. 나에게 만약 옳은 것과 아름다움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당신에게 드리고 싶어요. 당신은 그것을 처음 본 사람이니까, 그것은 당연히 당신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지금 많이 외로워요. 내 눈동자도 외롭고, 내 심장도 외롭고, 내 그림자까지도 외로워요. 상문 씨, 사랑은 외로운 사람의 일이 아닌가요? 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사랑은 외로운 사람의 일이어야 한다고.
상문 씨,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 당신의 말은 시인의 영혼으로 한 말이기 때문에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은 외로운 사람의 일이고 진실한 영혼이 하는 일이에요. 당신이 나를 그렇게 사랑하듯이, 나도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고 싶어요.
다시 한번 말하고 싶어요. 나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나도 당신을 좋아해요. 당신도 내가 고마운가요?
옥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