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는 비둘기만 해도 그렇다. 비둘기는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평화를 상징하는 새로 받아들여졌다. 누구에 의해, 무엇 때문에 비둘기가 평화의 메신저가 됐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비둘기가 귀소성이 강한 전서구에 속하는 새이고 옛날 사람들이 그 속성을 이용해서 비둘기의 다리에 편지를 묶어서 상대방과 교신을 했다는 이야기에서 ‘평화의 새’라는 상징이 만들어진 게 만약 사실이라면, 그건 생태계의 질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강력하고 견고한 상징체계를 만들어낸 근거로서는 참으로 너무나 어이가 없는 것이다. 확신하는 것이지만, 비둘기들은 그 자신들이 평화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오랫동안 의심 없이 평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떠받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토록 게으르고 탐욕스럽게 먹이를 먹고 똥을 싸지르면서도 그토록 뻔뻔할 수 있는 것이다.
비둘기와, 비둘기를 옹호하는 키 작은 이 동네 사람들도 그렇게 큰 것들을 농락하면서 자신들의 탐욕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 아닐까. 세탁소 박씨 아저씨, 목욕탕 주씨 아저씨, 오토바이 상회 계씨 형제, 그리고 달구의 새어머니와 그의 폭력적인 아들 만세까지. 아 그러고 보니 그들은 하나같이 정말 키가 작다. 그들은 큰 것들이 지켜온 적막과 순정함과 고독을 아무렇지도 않게 훼손하면서 자신들을 뒤룩뒤룩 살찌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은 것처럼 약하고 순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자, 나도 똑같이 달구 아버지처럼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러지 말고 다른 생각들을 좀 해보죠.”
호호 할머니, 그러니까 내 어머니가 은근한 말투로 사람들 사이에 말을 넣어본다. 이렇게 아무런 소득 없이 회의가 끝나는 것이 아쉬운 것이다.
“제가 알아보니까, 일단 군집 중인 비둘기들의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비둘기의 공동서식지, 그러니까 비둘기 집 같은 것을 점차적으로 없애고, 비둘기에게 인위적으로 먹이를 주는 것을 금해야 한다더군요. 그래야 개체 수가 감소한다고 해요. 그런 다음 비둘기들을 포획해서 다른 곳에 인위적으로 이주시키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하더군요.”
한마디 거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내가 언젠가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서 알아낸 이야기를 동네 어른들께 말한다. 그러자 다시 철물점 송씨 아저씨가 내 말을 받는다.
“비둘기 집을 없애면 목욕탕 주씨나 세탁소 박씨 같은 치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리고 먹이 역시 그 자들이 닭 사료를 아예 포대로 사서 길거리에 쏟아 붓고 있는 모양인데, 그걸 누가 앞장서서 말리느냐고.”
“맞아요. 그 사람들은 아예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구요. 제가 언젠가 한번 길거리에 사료를 쏟아 붓고 있던 주씨 아저씨한테, 비둘기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는 주민들도 많은데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점잖게 말했더니, 다짜고짜 욕을 하면서 자기 돈으로 자기가 먹이를 주는데 무슨 참견이냐면서 내 몸을 홱 밀치더라구요.”
미술학원을 하는 오씨 아저씨가 목욕탕 주씨한테 봉변을 당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비교적 나이가 젊은 축이어서, 목욕탕 주씨 아저씨나 세탁소 박씨 아저씨가 유독 노골적으로 하대를 하는 상대이다.
“맞아요, 그 치들은 정말 말로는 이야기가 안 돼. 워낙 사나워야 말이지. 마치 하이에나 같애.”
이렇게 말한 건 꽃집 김씨 아주머니다. 아, 하이에나를 연상한 건 나 혼자만은 아니었구나. 마음이 좀 놓이면서도 슬픈 감정이 되밀려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뚜렷한 대책 없이 비둘기 추방을 위한 주민들의 모임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을 때, 슬그머니, 달구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가 일어서자, 천장에 매달린 전등 빛이 가리면서 거대한 그림자가 생긴다. 전등 빛을 가리고 우뚝 서 있는 그의 실루엣이 멸종 직전의 고독한 거인 같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가게 일 때문에 오래 나와 있을 수가 없어서요. 죄송해요.”
그는 그렇게 순하고 느린 말투로 인사를 하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나는 불현듯 말없이 그를 따라가고 싶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조용히 그의 그림자를 밟으면서 그를 따라가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눈으로만 그의 뒤를 좇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가 싶던 그가 고개를 휙 저으면서 이크, 하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안에까지 다 들린다.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그가 밖으로 나서자마자 비둘기 똥을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고, 저 사람도 참. 키가 다른 사람보다 머리통 두 개 정도는 크니, 비둘기 똥도 더 잘 맞을 거야.”
어머니가 쓸쓸한 눈빛으로 그렇게 말한다. 동네 사람들 모두 쓸쓸한 눈빛으로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