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끝내자 꽃집의 김씨 아주머니가 아버지의 말을 받아서 맞장구를 치신다.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가 된 김씨 아주머니는 부지런하고 활달하고 동네 사정에 밝아서 사람들에게 늘 활력을 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비둘기들이 부쩍 동네에 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주머니의 활력도 현저히 김이 빠진 인상이다. 꽃집 매출이 격감했기 때문이다.
“어르신 말씀이 맞아요. 정말 비둘기들 때문에 동네가 아주 더러워졌어요. 저도 꽃 장사를 벌써 10년째 하고 있는데, 비둘기 떼들이 이 동네에 나타나면서부터 확실히 장사가 안돼요. 사람들이 아예 꽃을 사러 오질 않아요. 예전에는 집집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꽃이며 화분들을 들여놨었는데, 요즘 그런 집들이 아예 없어요. 그도 그럴 것이 화분을 베란다나 앞뜰에 내놓기만 하면 비둘기들이 거기에 똥을 싸지르니까요. 어떤 손님은 꽃바구니를 사가지고 집에 가는 길에 비둘기 똥을 맞아서 꽃바구니를 바꾸러 오기도 했어요. 우리 가게만 해도 해가 좋은 날에는 화분을 가게 앞에 내놓아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해요. 햇빛을 못 받으니 꽃과 나무들이 금방 생기를 잃죠. 시들어서 팔지도 못하고 그냥 버리는 꽃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비둘기에 대해서 이제 정말 어떻게든 손을 써야 해요.”
“정말, 제가 봐도 꽃집 아주머니 요즘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요. 뭔가 대책이 좀 있어야지.”
그렇게 말한 건 바로 꽃집 바로 옆에서 미술학원을 하는 오씨 아저씨다.
“자네 생각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아버지가 그렇게 묻자 오씨 아저씨가 잠시 생각하는 듯이 한 손을 턱에 갖다 괴더니 입을 연다.
“어쨌든 정식으로 동사무소나 구청에 민원을 넣는 것이 가장 좋지 않겠어요? 얼마 전에 비둘기도 유해조류로 지정됐잖아요. 실제로 주민들이 비둘기 때문에 입는 피해 사례를 모아서 동사무소에 보고를 하면 그쪽에서도 우리말에 귀를 기울일 것 같은데요.”
오씨 아저씨가 말을 마치자 다시 철물점 송씨 아저씨가 한결 과묵해진 표정으로 입을 연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비둘기 때문에 동사무소 한번 안 가본 사람 있는 줄 알아?”
“뭐가 문제죠?”
“동사무소나 구청 얘기는, 민원이라는 건 그 동네 구성원 전체의 합의가 있을 때 실질적인 효력이 발생한다는 건데, 우리 동네 사람들 중에는 비둘기 추방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도 꽤 많다는 거야.”
“휴.”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온다. 사실, 모두들 다 아는 얘기다. 민원을 넣었다가 반려된 것이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벌써 서너 번은 된다. 미술학원 오씨 아저씨는 전후 사정을 모르고 너무 원론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다.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내 어머니, 호호 할머니의 미소마저 얼어붙은 듯하다. 돌팔이라고 조롱을 받는 늙은 한의사인 내 아버지도 무거운 침묵을 견디기 힘겨운지 헛기침을 몇 번 한다. 별다른 말을 안 하고 있던 자전거포 심씨 아저씨가 움푹 팬 볼을 씰룩거리면서 입을 연 것은 그때다. 요즘은 아예 가게 문도 열지 않고 산으로 버섯을 캐러 다닌다는 그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넷이나 되는데 어떻게 살림을 꾸려나가는지.
“다 알겠지만 비둘기 추방을 반대하는 이 동네의 사람은, 세탁소 박씨, 목욕탕 주씨, 오토바이 상회 계씨 형제 등이야. 그 인간들은 비둘기 떼가 이 동네에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막대한 이득을 본 사람들이지. 내가 그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얘기도 해보고 사정도 해봤지. 비둘기 추방에 대해서 당신들도 동의를 해달라고. 그러면 미원을 넣을 수가 있다고 말야. 하지만 막무가내였어. 쇠귀에 경 읽기였지. 그들로선 당연한 거지. 그들이야 비둘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장사가 잘되는데 찬성을 할 리가 없는 거지. 그리고 말야. 여기에 달구 아버지도 있어서 하는 말인데, 달구 새어머니한테도 가서 얘길 봤는데, 완강히 반대를 하더라구. 식당 이름이 비둘기 식당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허허. 신기한 건, 비둘기 추방에 반대를 하는 자들이 모두 달구네 식당 단골들이고 거기서들 잘 모인다는 거야.”
심씨 아저씨가 그렇게 말을 마치자 동네 어른들이 모두들 달구 아버지 쪽을 바라본다. 무슨 말이든지 해보라는 것이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대로 말하자면, 비둘기 식당과 달구 새어머니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원성과 원망은 달구 아버지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이다. 더군다나, 달구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동네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그 넉넉한 인심을 기억하는 이들로서는 달구 새어머니의 흉흉하고 사나운 인심은 이가 갈릴 만도 한 것이다. 다만 달구 아버지를 생각해서 다들 말을 하지 않고 참고 있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