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말처럼 실제로 달구 아버지는 달구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했다. 거의 1년 동안은 식당 문을 닫은 채 허송세월을 하더니, 어느 날 지금의 달구 새엄마를 만나 덥석 재혼을 해버린 것이다. 달구 아버지가 달구 엄마를 얼마나 아끼고 따르고 사랑했었는지를 잘 알던 사람들로서는, 달구 아버지가 처상을 치르고 불과 2년 만에 다른 여자를 들이자 모두들 당황함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말이지 그것은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당사자들끼리 합의한 혼사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겠지만, 사실 동네 사람들이 달구 아버지의 재혼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그다지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데에는 달구 새엄마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들도 한몫했다. 어머니가 달구 새엄마와 한동네에 살던 지인으로부터 듣게 된 달구 새엄마에 대한 소문은 그녀가 타고난 성정이 사나운 데다가 식당을 하면서 지나치게 인심을 야박하게 써서 이웃들과의 불화가 끊이지 않았으며 또 뭇 사내들과의 관계도 복잡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달구 아버지는 그런 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할 결심을 하게 되었을까. 달구 아버지가 불곰처럼 크고 느리다면, 달구 새엄마는 쥐처럼 작고 민첩하다.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그토록 갑작스럽게 살림을 합치게 된 데에는 어느 한 쪽이 어느 한 쪽을 듣기 좋은 소리로 기만했을 터이고 그게 바로 달구 새엄마 쪽일 거라는 것이 우리 동네 사람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내 생각도 그렇다. 달구 아버지는 아마도 달구 새엄마의 약삭빠른 말과 영악한 행동에 홀렸을 것이다. 누구도 드러내놓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은 달구 새엄마가 달구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일부러 그를 홀리고 꾀어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나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달구 아버지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달구 아버지. 잘 지내셨어요?”
“어, 상문이 왔구나. 오랜만이네. 어서 와라.”
달구 아버지는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내 인사를 받는다. 그러곤 곧 다시 눈길을 TV화면으로 가져간다. 참으로 쓸쓸한 눈빛이다.
나는 홀을 둘러본다. 내 눈동자는 옥희 씨를 찾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옥희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주방 안에서 저녁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나. 때마침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달구가 내려온다. 나는 반가운 목소리로 그를 부른다.
“달구야, 나 왔어.”
“어서 와요 상문이 형. 형, 여기 좀 앉아요.”
활짝 웃는 얼굴로 나를 반긴 달구는 구석진 테이블 쪽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달구에게 누가 들을세라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달구야, 편지는 잘 전했지? 지금 옥희 씨는 어디에 있니?”
“그럼요, 그날 밤에 바로 전했어요. 그리고 지금 옥희 누나는 잠깐 시장에 갔어요.”
그때 주방문을 열고 달구 새엄마가 나온다.
“손님이 오셨나? 아, 상문총각이구나. 난 또 누구라고.”
달구 새엄마는 나를 보고는 물총새가 물총을 쏘듯 툭 몇 마디 내뱉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달구 새엄마의 작고 앙증맞은 몸매와 날카로운 턱을 보니, 갑자기 그녀의 아들인 만세의 모습이 겹쳐 떠오른다. 오늘 이곳에서 만세의 어머니를 다시 보니, 정말 모자가 닮긴 많이 닮았다.
“그래 고마워. 우리 잠깐 나갈래? 산책이라도 할까.”
아무래도 홀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다소 불편하게 느껴진 내가 그렇게 말하자, 달구가, 내 손을 잡으면서 말한다.
“형, 옥희 누나 오면 얼굴이라도 보고 나가요.”
나는 달구의 말에 대답 대신 방긋 웃기만 한다. 그의 마음씀씀이가 고맙고 갸륵한 것이다. 5분이나 지났을까. 과연 식당 문이 열리고 늦은 오후의 마지막 햇볕을 등지면서 옥희 씨가 홀 안으로 들어온다. 그녀의 양손에는 파 여러 단이 든 장바구니가 들려 있다. 비록 시장바구니를 들고 있지만 그녀는 물속에서 유유히 흔들리는 자수정만큼이나 눈부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옥희 씨를 바라본다. 내 눈동자로 눈부신 내 사랑을 똑바로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혀를 굴려 내 사랑의 이름을 발음해본다.
“옥희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