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마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상회 앞을 지나면서 보니, 타이어공장의 공원인 듯한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계씨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마도 젊은 남자는 오늘 오토바이를 사려는 것 같다. 소문에 의하면 계씨네 오토바이 가게는 거의 하루에 두 대꼴로 오토바이를 판다고 한다. 계씨 동생의 얼굴 표정이 밝은 걸로 봐서는 흥정이 잘된 모양이다. 아무래도 이 소읍의 거리를 달리는 오토바이가 또 한 대 늘게 될 것 같다. 오토바이의 주인이 될 저 젊은 남자는 이제 누구든지 자기보다 앞서 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오토바이 상회는 욕망을 판매하면서 너무나 무책임하게도 욕망을 제어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토바이 사용안내서에는 단 한 줄도 제어와 절제가 설명되어 있지 않다. 오토바이 상회가 번성하면 번성할수록 삼포자전거상회의 적막은 깊어진다. 삼포자전거 상회 심씨 아저씨는 더욱 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심씨 아저씨는 요즘 가게를 지키는 시간보다 뒷산으로 버섯을 따러 다니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한다.
끈적하고 매스꺼운 기름냄새가 따라붙는 오토바이상회를 지나고, 역시나 문을 닫은 삼포저전거포를 지나고, 비둘기 부동산과 평화마트를 지나 달구네 집 앞에 다다른다. 이윽고 저만치 앞에 붉은 바탕에 비정상적으로 큰 글씨로 씌어진 비둘기식당의 간판이 보인다. 그것이 눈에 불편하게 걸려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이곳에 왔고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이곳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이곳은 내 사랑, 옥희 씨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 사랑이 지옥에 있다면, 마찬가지로 나는 그 지옥을 견뎌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자들의 불가피한 운명일 것이다.
내 손이 식당 문의 손잡이를 잡을 때, 신기하게도 그 순간이 영화의 정지화면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나를 둘러싼 모든 배경이 사라지고 다만 홀로 그윽해지는 감상에 사로잡혔달까. 이것 역시 사랑의 현묘함일 것이다. 문을 열고 홀로 들어선다. 점심을 훨씬 넘긴 오후 시간이라 손님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달구 아버지가 문의 바로 안쪽에 놓인 카운터에 앉아서 천장 선반에 매달린 TV 화면을 보고 있을 뿐이다.
유난히 몸집이 비대한 그가 자그만 TV화면을 뚫어질 듯이 보고 있다. 그가 TV화면을 통해서 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달구 아버지는 젊은 시절 한때 씨름선수였다. 달구 아버지가 씨름선수였다는 걸 아는 이는 아버지처럼 이 동네에 오래 산 터줏대감들뿐이다. 달구 아버지의 유년시절과 성장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 말이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달구 아버지가 씨름선수로 뽑힌 이유는 오직 몸집이 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실 달구 아버지의 몸집은 보통 사람에 비하면 정말 어마어마할 정도로 크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어림짐작으로 키가 2미터가 넘고 몸무게도 130킬로그램 정도는 너끈히 나갈 것 같다. 하지만 타고난 체격에 비해 운동신경은 영 형편없었던 모양이다. 씨름선수로서 그의 성적은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고 한다. 실제로 여러 번 달구 아버지가 씨름하는 걸 본 적이 있는 아버지는 달구 아버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달구 아버지는 몸집만으로는 상대 선수를 충분히 압도할 만했지. 그보다 몸집이 큰 선수를 본 적이 없으니까. 남달리 장대한 그의 기골을 보면서 우리는 하늘에서 우리 동네에 장사를 내렸다고 무척 좋아했어. 그리고 그가 씨름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는 모두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 우린 그가 최고의 씨름선수가 되리라고 믿었던 거지. 그런데, 막상 씨름을 하게 된 그는 상대 선수를 좀처럼 모래판에 눕히질 못했어. 한마디로 덩칫값을 전혀 못했지. 열 번 싸우면 겨우 한두 번 이길 정도였어. 처음에 기대를 가졌던 사람들도 곧 기대를 접었어. 그에게 씨름을 가르치던 선생마저도 얼마 안 가 두 손을 들었으니, 달구 아버지의 씨름이 얼마나 형편없었던 것이었는지는 충분히 알만한 거지. 그런데 말야.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달구 아버지가 워낙 운동 신경이 없고 기술도 없어서 매번 지기만 했다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은 달라. 나는 아마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생각할 때는 말야, 달구 아버지가 씨름선수로 성공하지 못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에게 이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야. 다시 말해 상대방을 눕히고자 하는 욕망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거야. 더욱 쉽게 얘기하면, 승부욕이라는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지. 아무리 타고난 힘이 있더라도 이길 생각이 없는 사람은, 작심을 하고 이기려고 덤벼드는 자를 배겨낼 재간이 없는 거지. 달구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어. 몸은 장사지만, 심성은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할 정도로 여렸지. 결국 달구 아버지는 사람들의 조롱 속에서 3년 만에 씨름선수 생활을 접었지. 그러고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정미소에 취직해서 일을 했지. 일은 정말 부지런히 잘했어. 워낙 힘이 좋았으니까 보통 사람 두 몫의 일은 했지. 그리고 그곳에서 정미소 사장의 조카딸이었던 달구 엄마를 만났지. 정말 달구 엄마는 야무진 사람이었어. 정말 달구 엄마가 그렇게 세상을 뜬 건 안된 일이지. 아무튼 달구 엄마를 만나면서부터 달구 아버지가 세상 물정을 알게 됐어. 말하자면 힘만 좋던 이가 문리가 트인 거지. 달구 엄마는 세상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달구 아버지의 눈과 입이 되어준 거야. 정말 달구 아버지에게 뭐가 필요한지를 아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내조를 했지. 달구 엄마가 그렇게 가고 나서 달구 아버지가 지금의 안사람을 만난 건, 그가 큰 슬픔과 상처에 치인 나머지 무언가에 홀렸기 때문일 거야. 사실 달구 엄마 없는 달구 아버지는 어린애와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