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노 때문에 눈앞이 하얗게 흐려지는 것을 느낀다. 몸을 털고 일어난 나는 다시 계씨 동생에게 달려든다. 그 기세에 계씨 동생이 움찔하면서 아버지의 멱살을 잡았던 손을 슬그머니 푼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끓어오르는 분노 때문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당신에게도 아버지가 있을 거 아녜요? 이게 무슨 짓이에요?”
“그러게 왜 남 장사하는 데 감 놔라 배 놔라 하냔 말야.”
계씨 동생은 여전히 오만하고 방약무인한 표정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 으름장을 놓을 뿐이다. 아버지는 한쪽에서 허리를 숙인 채로 한 손으로 목께를 잡고 숨을 힘겹게 고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계씨 동생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는다.
“야, 이놈아, 네놈들 하는 짓거리가 얼마나 한심한 줄이나 알어?”
“아니 저 아저씨가 또.”
“대체 우리 아버지가 당신에게 어쨌기에 그래요?”
“아까 어떤 손님이 와서 오토바이를 보고 있는데, 가던 길이나 가지 넌지시 다가와서는 손님에게 다짜고짜 오토바이 절대로 사지 말라고 그러잖아. 오토바이 사면 그 순간부터 마음의 병이 생긴다는 둥 이상한 소리나 하면서 말야.”
계씨 동생은 여전히 분한 표정으로 씩씩대면서 말을 한다. 그러자 아버지가 여전히 괄괄한 목소리로 지지 않고 계씨 동생을 타박한다.
“이놈아, 사람에겐 자신에게 맞는 삶의 속도가 있는 거야. 요상한 옷차림에 천둥 같은 소리를 내지르면서 사람들 겁이나 주고. 사는 동안 어딜 그렇게 쏜살같이 갈 일이 있느냔 말야. 어차피 삶은 물처럼 흐르게 되어 있는데.”
이쯤 되니 사태의 양상이 분명해진다. 평소에 오토바이를 영 못마땅해하던 아버지가 계씨에게 질정을 겸한 훈계를 했던 모양이다. 내 아버지는 여태 운전면허증도 없고 당연히 우리 집엔 차도 없다. 나는 일단 계씨 동생으로부터 아버지를 떼어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버지의 팔을 잡아끌면서 미운 계씨 동생에게 한마디를 던진다.
“아무리 그래도 어른의 멱살을 잡는 건 정말 천박한 짓이에요.”
그러자 그가 즉시 걸쭉한 목소리로 공격을 해온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네 아버지 때문에 지금 손해를 본 게 얼만데.”
“손해는 무슨 손해야. 오토바이 소음과 매연 때문에 이 동네 사람들이 입는 피해를 생각하면 네놈이 오히려 보상을 해야 해.”
“아버지, 그냥 가요.”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기름냄새가 자욱한 오토바이 상회를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의 팔을 잡아끈다. 어차피 계씨 동생이라는 작자와는 대화가 되질 않는다. 그에게 아버지의 말은 외계인의 말보다도 더욱 난해하게 들릴 것이다. 끌끌끌, 혀를 차는 계씨 동생의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와 나는 한동안 말없이 길을 걷는다. 오토바이 상회로부터 충분히 떨어진 거리까지 왔을 때 아버지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건넨다.
“아버지 괜찮으신 거예요?”
“상문아, 나는 세상에서 비둘기가 제일 싫고 오토바이가 제일 무서워.”
아, 나의 아버지. 나는 순간 백발이 성긴 아버지의 머리를 살짝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버지, 저도 그래요. 싫고 무서운 것들을 영영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네요. 아버지, 될 수 있으면 싫고 무서운 것들은 상대를 하지 마세요. 이미 말이 통하는 것들이 아니라는 건 아버지도 잘 알고 계시잖아요.”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한숨을 쉰다. 그 한숨은 싫고 무서운 것과 매일 만나야 하는 자의 슬픔과 근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영악스러운 것들의 교만과 허영과 간교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자의 자기 연민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한숨은 눈물과도 같은 것이다.
아버지를 집 길목까지 바래다 드리고 나서 나는 다시 달구네 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문득 든 생각에 오토바이 상회 쪽을 피해 우회해서 가려다가, 비겁 앞에서 스스로 당당해지기 위해 다시 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싫고 무서운 것을 피하면 피할수록 더 약해지는 거겠지. 난 피하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