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오니 맨 먼저, 눈에 띄는 건 타이어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들이다. 아, 공장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을 수천 개의 타이어들을 생각하니, 목이 턱 막혀오는 것만 같다. 오로지 질주만을 목적으로 태어나는 검고 맹목적인 타이어들, 그것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천지를 진동시키면서 굴러오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거리에 널린 비둘기 똥을 뭉개면서 타이어들이 굴러오고 비둘기 떼들은 먼지를 일으키며 타이어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살짝 뛰어오른다. 비둘기들이 뛰어오르면서 일으킨 먼지들과 타이어들이 바닥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나는 냄새, 하늘을 뒤덮은 검은 연기가 세상을 뒤덮는다. 아, 그런 세상이란 이미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닐 것이다. 아직까지는 내 상상 속에서나 그려지는 악몽에 불과하지만, 나는 언젠가는 내 악몽이 현실이 될 것처럼 느껴져 자주 소름이 돋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달구네 식당으로 가는 중에 비둘기 떼와 조우한다. 비둘기 떼들은 길을 가로막고, 누군가가 길바닥에 잔뜩 깔아놓은 옥수수 알갱이들을 쪼아 먹고 있다. 먹이를 향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목과 부리들. 저들이 쪼아 먹고 있는 옥수수 알갱이들은 틀림없이 닭의 사료용으로 만들어져 판매되는 것들이다. 누군가가 비둘기들에게 의도적으로 양계장에서나 쓰는 닭 사료를 뿌려주고 있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비둘기들에게 닭 사료를 뿌려주는 사람은 바로 목욕탕 주씨 아저씨와 세탁소 박씨 아저씨다. 비둘기들에게 닭 사료를 주는 그들의 행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노골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처음에는 재미삼아 한 줌씩 뿌려주었지만 지금은 아예 20킬로그램들이 한 포대를 길에다 쏟아 붓는 것이다. 그러니 비둘기들이 미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들은 사육당하는 짐승이 돼버린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벌레를 찾아서 창공을 날 필요가 조금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누구보다도 비둘기 자신을 비극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비둘기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배불리 사료를 처먹은 비둘기들은 간신히 나뭇가지나 전깃줄에 올라앉아 똥을 싸지른다. 우리 동네에 사는 사람 중 비둘기 똥을 맞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비둘기 똥을 맞지 않은 사람은 우리 동네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비둘기 똥을 맞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신경질적으로 툴툴거리기 일쑤다. 비둘기 똥이 묻은 옷가지를 들고 세탁소에 줄을 선 풍경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들은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는 목욕탕에 가서 몸에 묻은 비둘기 똥을 씻어낸다. 비둘기가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그리고 똥을 많이 싸질러서 사람들이 비둘기 똥을 많이 맞으면 맞을수록 세탁소 박씨 아저씨와 목욕탕 주씨 아저씨는 엄청난 수입을 올리게 된다. 그러니, 세탁소 박씨 아저씨와 목욕탕 주씨 아저씨가 닭 사료를 비둘기들에게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누가 봐도 뻔한 흉계인 것이다.
내가 바짝 앞에까지 다가갔는데도 비둘기 떼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길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길을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디선가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온다. 아버지의 목소리다. 내가 아버지의 목소리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어딘지 좀 격앙되어 있는 듯하다.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 큰길에 있는 오토바이 상회 쪽이다. 모퉁이를 도니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가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고 있다. 앞에 있는 사람은 오토바이 상회의 주인인 계씨 형제 중 동생이다. 보아하니 아버지가 계씨 동생에게 뭐라고 질정을 하고 계신 듯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계씨 동생이 아버지의 멱살을 잡는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그쪽으로 뛰어간다.
“이봐요, 아버지에게 무슨 짓이에요?”
나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계씨 동생은 내 아버지의 멱살을 쥔 우악스러운 손을 풀지 않는다. 못 해도 20년 이상은 나이 차이가 나는 어른의 멱살을 저렇게 함부로 쥘 수 있다니.
“넌 또 뭐야. 지 애비 꼭 닮은 샌님이 나타나셨네.”
나를 두고 한 말이 틀림없다. 내 안에서 꼭지 하나가 픽 돌아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앞뒤 잴 것도 없이 계씨 동생에게 뛰어든다.
“그것 못 놔요!”
하지만 호리호리한 내 몸은 땅땅하고 우악스러운 맷집을 가진 계씨 동생의 몸에 럭비공처럼 튕겨 나가떨어지고 만다.
“아니, 이놈이! 이거 못 놔.”
아버지가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계씨 동생에게 소리를 지른다. 아버지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