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달구가 나를 찾아왔다. 달구는 내게 다른 사람들이 웃을 때, 자기는 왜 그들과 함께 웃지 못하는지 그 까닭을 물어왔다. 나는 달구에게 그건 사람마다 희망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자세히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달구 스스로 겪고 성찰하고 상상하면서 알아가는 것이 훨씬 의미 있는 일 같아서 그 정도로만 답을 했다. 아마, 달구라면 오늘의 의문을 충분히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달구 편으로 편지를 전했다. 달구라면, 틀림없이 내 편지를 소중히 다루면서 옥희 씨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편지를 쓰고도 한 달이 지난 오늘까지도 나는 그 편지를 노트 속에 간직하고만 있었다. 만약 오늘 달구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면 난 또 얼마나 오랫동안 그 편지를 간직하고 있어야 했을까.
말이라는 것에 쉽게 상처를 받는 동안,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포악한지, 그리고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연약하고 애매모호한 것인지를 잘 알게 된 내가 난생처럼 내 안에서 피어난 사랑의 말들을 적을 때, 나로서는 그것이 말로 표현되기 전의 마음 그대로 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을 것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절실하고 피할 수 없는 마음의 유도에 따라서 편지를 썼지만, 그것을 실제로 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사랑의 말은 어디까지 나아가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어서 괴로웠다.
하지만, 나는 오늘 더 이상 내 마음을 누설하지 않고서는 견딜 자신이 없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가 내 마음을 알고 알지 못하고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 내 마음속의 사랑을 당당하게 밖으로 내어놓는 것이라고. 그녀가 알아주지 않을까 봐, 내 사랑의 말이 전해지지 않을까 봐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비겁한 태도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금쯤이면 비둘기식당도 불이 꺼졌을 것이다. 옥희 씨도 자기 방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있겠지. 달구에게서 받은 편지를 뜯어보았을까. 옥희 씨를 생각하면 마음이 차분하게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참으로 신비한 체험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인가에 잔뜩 화가 나고 다른 사람이 원망스러울 때조차도 그녀를 생각하기만 하면 지극한 위로를 받아서 모든 상처가 깨끗하게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식당 밖 유리를 통해서 그녀를 볼 뿐이지만,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맑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내가 아는 그녀는 다른 사람을 억압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을 공격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그만큼 자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사람을 깊이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다.
처음 그녀를 보았던 날이 생각난다. 이를테면 내 사랑의 기원이 현실 속에서 증명이 되던 날. 그녀는 돌아가신 달구 어머니의 먼 친척이라고 했다. 함께 살던 그녀의 아버지가 어느 날 종적도 없이 사라지자, 달구 어머니에게 몸을 의탁해온 것이라고 했다. 그게 5년 전쯤의 일이다. 그때부터 옥희 씨는 달구네와 함께 생활을 하며 달구 어머니의 식당 일을 거들었다. 그때는 달구네 식당의 이름이 비둘기식당이 아니고 토담집이었다. 참 예쁘고 정겨워서 몇 번이고 부르고 싶은 이름이었다. 음식도 참 정갈하면서도 맛깔스러워서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 집 밥을 참 좋아했었는데. 우리 아버지 어머니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토담집을 좋아했다. 지금은 어디에 사시는지도 알 수 없는 푸른 책방 김씨 아저씨 내외, 그리고 딸애 이름으로 가게 이름을 지었던 진진슈퍼 오씨 아저씨 내외, 문방구 앞에서 순대와 튀김을 팔던 정씨 아주머니. 그 인정 많고 착했던 분들은 지금은 모두 이곳을 떠나고 없다. 그리고 달구 어머니도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토담집도 없어졌다.
그래 모두 비둘기 때문이다. 탐욕 때문이다. 욕심 때문이다. 광포한 속도 때문이다. 비둘기 떼가 나타나 우리 마을을 점령하고부터, 사람들의 인심은 몰라보게 흉흉해졌다. 어디서건 부리를 부딪치며 먹이 다툼을 하는 비둘기를 닮아간 것이다. 사람들은 하루에 몇 번씩 비둘기 똥을 뒤집어쓰고 악을 쓰며 싸우곤 했다. 비둘기 떼가 마을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큰소리 한번 안 나는 소박한 소읍이었던 이곳이 어느 순간 파시 무렵의 장터처럼 시끄럽고 질척거리는 곳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바뀌어가는 마을의 분위기와 인심을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짐을 싸고 이 동네를 떠나갔다.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시를 몇 편 외울 줄 알았던 푸른책방 김씨 아저씨, 그리고 딸애 이름으로 가게 이름을 지었던 진진슈퍼 오씨 아저씨, 문방구 앞에서 순대와 튀김을 팔던 정씨 아주머니도 그때 모두 떠난 것이다. 그 인정 많고 착했던 분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계실까. 아, 그리고 너무나도 황망하고 불쌍하게 세상을 뜨신 달구 어머니.
타이어 공장의 굴뚝에서는 밤낮없이 쿨럭쿨럭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들은 얘기로는 타이어공장에서 만들어내는 각종 타이어가 하루에 5천 개라고 한다. 하루에 5천 개의 타이어가 만들어지는 공장의 굴뚝은 푸른 하늘을 앗아갔고, 수천 마리의 비둘기 떼들은 길거리를 지배했다. 나는 가끔 악몽을 꾼다. 수만 마리의 비둘기 떼와 수만 개의 타이어 바퀴들이 비탈길에서 맹렬한 속도로 날아들거나 굴러오는 꿈을. 그리고 그것에 쫓겨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순하고 여린 사람들이 맨발로 도망가는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