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희 누나와 나는 다시 아래층 홀로 내려가서 취객들이 함부로 어질러놓은 술상을 마저 치웁니다. 그들이 남긴 난삽한 술상을 보니 절로 미간이 찌푸려집니다. 그러는 사이 밖에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옵니다. 식당 홀 안쪽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오는 아버지의 어깨가 오늘따라 유난히 움츠러들어 보입니다. 아버지가 측은하게 느껴진 나는 부러 상냥한 목소리로 묻습니다.
“아버지, 어디 갔다 지금 오세요?”
“응, 공원에.”
네,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한숨 대신 담배연기를 내쉬는 것뿐입니다.
“시장하지 않으세요? 저녁도 안 드셨잖아요. 저녁 얼른 차려드릴까요?”
이번엔 옥희 누나가 아버지에게 상냥한 말을 건넵니다.
“아니야. 생각 없다. 술상 치우느라 고생했겠구나. 피곤할 텐데 어서 올라가 쉬어라.”
아버지는 힘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한 마디를 더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나는 홀에서 옥희 누나의 설거지가 끝나길 기다립니다. 주머니 속에 든 상문이 형의 편지를 서너 번 꺼내어 확인합니다. 이윽고 옥희 누나가 주방에서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면서 나오자 누나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넵니다.
“누나, 잠깐 누나 방으로 같이 가자.”
“응, 그래. 근데 왜 무슨 할 말 있어?”
“일단 누나 방으로 가자.”
나는 누나의 등을 떠밀 듯이 하며 계단참으로 이끕니다. 만세 형에게 방을 내어주고 구석진 창고 방을 쓰게 된 누나. 하지만 누나의 방은 세상 그 누구의 방보다도 환하고 정겹고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나의 방안에서 누나와 마주앉은 나는 주머니에 든 상문이 형의 편지를 꺼냅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편지를 누나에게 내밉니다. 누나는 편지를 건네받지는 않고 눈으로 보며 묻습니다.
“그게 뭐니?”
“누나, 상문이 형 알죠? 수정한의원 윤씨 할아버지네 사는 형.”
“그럼 알지. 지금은 예전만 못하지만, 우리 집에 자주 왔었잖아. 그리고 너랑도 친하고.”
“응, 아까 상문이 형을 만나고 왔는데, 상문이 형이 말야. 이 편지를 누나에게 갖다 주래.”
그렇게 말하곤 편지를 누나의 두 손에 쥐여주곤 서둘러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나는 이런 일을 처음 해봅니다. 편지를 전하면서 어떤 말들을 더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문아, 라고 부르는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못들은 체하고 2층에서 내려옵니다.
오늘 밤, 옥희 누나는 아마 세상에서 처음으로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감미로운 노랫소리를 듣게 될 겁니다. 그 노래는 오로지 누나에게만 들려지는 노래이고, 누나만이 들을 수 있는 노래입니다. 그 노래는 누나를 위해 만들어진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누나는 충분히 그런 노래를 들을 자격이 있습니다. 나는 상상합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합니다. 착하고 아름다운 식당의 여자가 있고, 그 여자를 사랑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시인은 여자를 위해 시와 노래를 만들고, 늦은 밤 설거지를 마친 식당의 여자는 자신을 위해 시인이 만든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그런 밤의 드문 황홀과 기쁨. 나는 그 황홀과 기쁨을 짐작하며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도, 오늘 밤을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