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과 내가 어둠 속에서 함께 희미하게 웃습니다. 그러면 나도 시인의 미소를 닮아 조약돌처럼 빛났을까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던 시집 한 권이 오랜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움찔하며 기지개를 켭니다. 그건 나만이 느낀 착각이었을까요. 하지만 나는 분명히 시집이 어깨를 털며 움찔하는 걸 보았습니다.
“형도 보았어요? 시집의 기지개?”
형은 말없이 웃기만 합니다. 네, 나는 굳이 대답이 필요하지 않은 질문을 했던 겁니다. 나는 여기에 올 때부터 궁금했던 걸 상문이 형에게 묻기로 합니다.
“형, 사람이 함께 웃는다는 거, 그건 참 좋은 거잖아요? 그런데, 어떤 웃음은 사람을 한없이 소외시키고 외롭게 하기도 해요. 왜 그런 거죠?”
“왜, 난데없이 그런 질문을 해? 무슨 일 있었니?”
나는 비둘기식당의 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형에게 이야기합니다.
“지금 식당에서 박씨 아저씨, 주씨 아저씨, 그리고 계씨 형과 계씨 동생, 새엄마, 만세 형이 술을 마시면서 연신 껄껄 웃고 있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웃고 있는지를 모르겠더라구요. 왜 저는 그들의 웃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요? 아니, 왜 저는 그들과 함께 웃을 수 없었던 걸까요?”
상문이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엽니다.
“하하, 달구야. 그건 의외로 답이 간단해. 사람들마다 웃음의 코드가 다르기 때문이야.”
“웃음의 코드요?”
“그래, 웃음의 코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고 다른 사람을 도운 일이 기뻐서 웃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껴서 웃기도 해.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에 기쁨을 느껴서 웃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고통과 슬픔을 느끼지. 반대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지배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고 웃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봉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없이 지루함을 느낄 거야. 특히 이런 이들에게, 웃음은 자신이 남보다 강하다는 걸 드러내는 수단에 불과한 거야. 비유를 하자면 그런 웃음은 계씨 형제가 요란스럽게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의 배기통에서 나오는 소음 같은 웃음이야. 다른 사람을 한없이 불편하게 하고 억압하는 웃음이란 말이지. 그런 웃음을 우리가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지.”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상문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떠오른 의문 하나를 마저 묻습니다.
“형, 그러면 웃음의 코드의 차이는 왜 생기는 거죠?”
“달구가 시인에게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하는구나. 큭.”
형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곧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잇습니다.
“그 차이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에서 오는 건데, 내가 생각할 때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아마도 욕망의 성분이 다르기 때문일 거야. 사람마다 유전자가 기억하고 있는 욕망의 습속이란 게 있는데, 그게 다 다르거든. 어떤 유전자는 이기는 욕망, 다시 말해 이기고 지배하는 습관에만 길들어 있어서 오로지 그것을 습득하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투여해. 그런 사람들은 웃음의 코드가 다른 사람을 이기거나 지배해서 자신들의 욕망을 해소하는 것에 맞춰져 있는 거지. 그와는 반면 또 어떤 유전자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그와의 평등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긍정하는 습속을 기억하고 있기도 하지.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하질 않아. 경쟁도 싫어하고.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혹독하고 엄숙하지. 그들의 웃음의 코드는 다른 사람과의 사랑과 화해에 맞춰져 있어. 내 생각에 그것이 언어를 통해서 예술적인 형태로 표현되는 것의 결정체가 바로 시야.”
역시 상문이 형에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상문이 형의 말을 듣고 있으니, 내가 가졌던 의문이 스르르 풀리는 걸 느낍니다. 모든 웃음이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모든 웃음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내 짐작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으쓱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의문이 좀 풀렸니?”
“네.”
나는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냉큼 대답합니다. 그러자 형이 정리를 하듯 한마디를 더 하네요.
“웃음만큼 복합적인 욕망을 숨기고 있는 것도 달리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