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이라면 우리나라 대통령을 지낸 분이고,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신 분 아닌가요.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걸로도 유명한 정치가죠. 그런데, 윤씨 할아버지는 30년 전 신문을 보고 그 김대중 씨가 가택연금에서 해제됐다면서 좋아하고 있는 거예요. 아, 할아버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당신은 지금 어느 시간을 살고 있는 건가요. 하지만 알 수 없게도 나는 할아버지에게 그런 사실을 지적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지금은 2009년이라고 실토해서는 무언가 잘못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맞장구를 쳐주기로 합니다.
“아, 정말 잘 됐네요. 그분이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거는 국민들에게도 좋은 일이죠?”
“그럼, 그렇구말구, 이제 정말 독재가 끝나려나 봐. 참 너 상문이 보러 왔지. 올라가 보렴. 걔도 자기 방에서 지금 일주일째 안 나오고 있어.”
“응 걔는 일주일째 안 나오고 있어.”
호호 할머니가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할아버지가 한 말을 한 번 더 반복합니다. 나는 서둘러서 상문이 형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갑니다. 2층으로 이어진 목계단에서는 언제나 향긋한 향나무 냄새가 납니다. 나는 그 냄새가 참 좋습니다. 그 냄새는 사람을 어질게 하고 성내지 않으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상문이 형의 방문을 엽니다. 나는 그 방문을 열 때마다 언제나 상큼한 흥분과 설렘으로 몸이 살짝 떨리기까지 합니다. 상문이 형은 바닥에 엎드려서 무언가를 종이 위에 적고 있습니다. 방 안은 작은 주홍빛 전구 알에서 나오는 빛만 있을 뿐이어서 대체적으로 침침합니다. 방바닥에는 여기 저기 시집들이 놓여 있습니다. 어떤 시집은 펼쳐진 채로, 어떤 시집은 엎어진 채로 빛나는 언어를 품고 있습니다. 상문이 형의 시력이 안 좋은 것은 아마도 이렇게 침침한 방 안에서 책을 읽었기 때문일 겁니다.
“어, 달구 왔구나.”
형이 어둠 속에서 웃으며 인사를 합니다. 그 웃음이 조약돌처럼 맑게 빛나네요.
“잘 지냈어요? 형.”
나도 반갑게 응대를 합니다. 정말 요며칠 상문이 형이 보고 싶었거든요.
“오늘은 식당이 한가한가 보네. 이 시간에 여길 다 오고.”
“아, 형, 사실 오늘 새엄마의 아들이 제대를 해서 왔어요. 그래서 지금 식당에서 몇몇 아저씨들이랑 파티 아닌 파티가 벌어졌어요.”
나는 내가 알 수 없는 웃음이 난무하는, 그 떠들썩하고 요란한 술자리를 떠올려봅니다. 웃지 않는 자들의 침묵을 살해하는 그들의 게걸스러운 웃음소리를 생각합니다.
“아, 그렇구나. 그런데, 달구야.”
상문이 형이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봅니다.
“저기 말야. 혹시 오늘 제대하고 왔다는 그 새엄마 아들 이름이 만세 아니니? 조만세.”
앗, 상문이 형이 만세 형의 이름을 알고 있다니. 무척 신기하고 놀라워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집니다.
“어! 맞아요. 형이 어떻게 아세요? 만세 형의 이름을.”
“음, 역시 그렇구나, 아.”
형은 알 수 없게도 수심에 잠기는 표정이 됩니다.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형에게 묻습니다.
“형, 만세 형을 알아요?”
“응, 알아 잘 알지. 중학교 동창이니까.”
“형이 만세 형이랑 중학교 동창이라구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