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야, 노래 한 자락 해봐라.”
술기운이 오르는지 얼굴이 불콰해진 주씨 아저씨가 빈 소주병에 숟가락을 꽂아서 만세 형에게 들려주며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새엄마 쪽을 바라보면서 씽긋 웃음을 날립니다. 나는 도무지 그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만숙씨, 아드님에게 노래 시켜도 되죠?”
“하하 그럼요. 저도 아들 노래 들어본 게 꽤 됐네요.”
이미 술이 과해서 아래위 입술이 꽈배기처럼 삐뚤어진 만세 형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의 군복 상의의 단추는 두세 개 정도 풀려 있습니다. 그는 예비군 마크가 달린 모자를 거꾸로 씁니다. 그러곤 꽤 껄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가 부른 노래는 철지난 유행가의 가사를 외설스럽게 바꾼 노랩니다. 이쯤 되면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지경입니다.
“인천에 성냥 공장 성냥 공장 아가씨, 하루에 한 갑 두 갑 일주일에 열두 갑, 팬티 속에 감추고서 정문을 나설 때, 팬티 속에 불이 붙어 ○○털이 다 탔네, 인천에 성냥 공장 아가씨는 백○○.”
세상에 이런 노래 같지도 않은 노래도 있다는 것을 저는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만세 형은 도대체 언제 이런 노래를 배운 걸까요. 누가 만세 형에게 이런 노래를 가르친 걸까요. 그리고 만세 형은 이런 노래를 꼭 이런 자리에서 불러야 했을까요. 만세 형이 ‘노래 같지도 않은 노래’를 마치자 술자리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모두들 배꼽이 빠져라 웃습니다.
“하하하, 만세가 아주 노래를 잘 하네.”
주씨 아저씨가 그렇게 말하면서 만세 형에게 소주 한 잔을 따라줍니다. 만세 형은 금세 소줏잔을 비우고 다 마셨다는 표시로 머리 위에 소줏잔을 붓는 시늉을 합니다. 새엄마는 여전히 슬쩍슬쩍 계씨 형의 허벅지에 손을 갖다댑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주씨 아저씨는 이번에는 계씨 형에게 소주병으로 만든 마이크를 넘깁니다.
“어이 계씨, 자네도 한곡 뽑아봐. 자네가 가수 뺨칠 정도로 노래 잘한다는 소릴 들었거든.”
그러자 잠시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사양할 것 같은 자세를 취하던 계씨 형이 결심을 했다는 듯 가죽바지의 허리춤을 한번 위쪽으로 잡아당겨 추스르곤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는 주씨 아저씨로부터 빈 소주병을 건네 받고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서 두세 발짝 정도 뒤로 물러납니다. 자기만의 스테이지를 만들려는 거지요. 꽤나 거창한 곡이 나올 것 같습니다. 드디어 계시가 노래를 뽑기 시작합니다. 듣고 보니 팝송입니다.
저도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입니다. 계씨 형은 꽉 쪼인 가죽바지를 입은 다리를 외설스럽게 흔들면서 춤까지 추며 노래를 합니다. 하카하카 버닝럽! 하카하카 버닝럽! 그런 계씨 형을 넋 놓고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이들이 만숙씨라고 부르는 새엄마입니다. 새엄마는 맞잡은 두 손을 턱밑에 갖다 대고 마치 오랫동안 흠모해온 가수의 노래를 듣는 것처럼 계씨 형을 향해 그윽한 표정을 짓습니다. 계씨 형의 노래와 춤은 더욱 요란해집니다. 그러자 박씨 아저씨와 계씨 동생도 일어나 그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춥니다.
“와, 역시 우리 형 최고다!”
계씨 동생이 백댄서처럼 계씨 형 뒤에서 형이 추는 춤과 보조를 맞춥니다. 사람들이 껄껄껄 웃습니다. 네,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이들이 다시 함께 웃고 있습니다. 그들이 웃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고, 그들은 웃을 만한 일이 있어서 웃는 것입니다. 네, 그들에게는 충분히 웃을 만한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있었던 웃을 만한 일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나는 그들이 왜 웃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함께 웃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그들이 웃을 때 내가 웃지 않은 것처럼, 내가 웃을 때 그들 역시 웃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웃을 때 다른 사람이 함께 웃기를 바라지 않을 테지만, 내 생각은 그들과 다릅니다. 나는 내가 웃을 때, 모든 사람들이 함께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내가 웃는 웃음은 아무도 해치지 않고 아무도 깔보지 않는 데서 나오는 웃음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같이 웃을 수 있는 거겠지요.